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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눌프 Nov 10. 2019

나를 보며 웃는 사람들

  웃음과 진실


사람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것, 나를 향한 타인의 평가. 타인의 평가로부터 이 세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과 단절되어 외딴섬에서 살아가지 않는 이상,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주제는 우리 삶에 굉장히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평가는 때론 긍정적이기도 하며 때론 부정적이기도 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기대하지만 한 인물을 생각하는 저마다의 평가는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예상치 못한 부정적 평가를 들었을 때 사람들은 우울감과 좌절감에 사로잡힌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평가라는 것은 긍정적인 부분보다 부정적 면모가 더 강하다. 그럴싸하게 포장하면 평가, 현실적으로 이야기하면 험담. 험담은 인간에게 쾌감을 심어준다. 누군가를 짓밟고 깎아내릴 때에 내가 잘난 사람이 된 것 같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본능이다.


사람들은 타인을 험담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드러난 잘못이 험담의 시작이 되는 경우보다 모두가 알지 못하는 잘못이 험담의  시작이 되는 것이 대다수이다. 즉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근거 없는 소문이 험담의 대표 손님이 되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험담을 늘어놓는 이들은 익명성을 보장에 굉장히 민감하다. 험담의 대상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는 내가 나쁜 사람으로 보이는 부정적 평가가 두려워지는 것이다.  


살면서 자신에 대한 험담을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직접적이든 직접적이지 않든 어디에서든지 나에 대한 부정적 이야기기가 오고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한 사람이 느끼는 배신감과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무심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평가에 대하여 그다지 큰 영향을 받지 않을지는 몰라도 반드시 한 번씩은 다시 그것을 곱씹는다.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인가?’


비극적인 것은 그것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일지라도 사람들은 타인의 험담 속 내가 너무나도 그럴싸해 보여서 자신이 정말 험담 속 그런 사람이 맞는 것과 같은 착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는 것이다. 내 존재와 정체성의 기반을 흔들어 놓기도 한다.

  

나를 험담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또렷하게 알 수 있다면 커다란 배신감과 상처는 있겠지만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여기고 그 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명백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또렷한 주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에 대한 험담이 오르내리는 것을 알기 시작한다면 내면의 분열이 오기 시작한다.


모두가 나를 보며 웃고 있지만 이들 중에서 누군가는 뒤에 칼을 숨겨두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연예인들이 악플에 심각한 고통을 호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앞에선 모두가 나를 칭찬하고, 나를 웃으며 반기지만 그 뒤에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 그래서 내 삶과 모든 관계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분별할 수 없게 되는 순간,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인가?’라는 분열이 오기 시작할 때.       


때로는 나를 보며 웃는 이 사람의 마음이 진심인지에 대해 어느 날 문득 의심이 들 때가 있다. 웃음이라는 것은 그렇다. 웃음은 누군가가 행복하다는 증거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가장 악한 행위 중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웃는 얼굴 뒤에 감추어진 거짓을 알게 되는 것만큼 인간이 처절한 배신감을 경험할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나를 보며 웃는 그 얼굴이 매번 진심일 수는 없겠지만 진심이길 바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이다.


나를 보며 웃는 얼굴이 진심이길 바라는 마음, 나를 보며 웃는 그 얼굴이 매번 진심일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 나를 보며 진심으로 웃는 사람들이 존재함에 대한 감사함, 나를 보며 거짓으로 웃는 사람들에게 연연하지 않는 마음, 가장 중요한 나의 마음.  


우리의 삶은 매 순간이 풀리지 않는 숙제와도 같다. 우리가 생각하고 돌보아야 할 수많은 마음들이 끊임없이 존재한다. 생각보다 우리 마음속 감정의 갈래는 수없이 많으며 그 감정으로부터 시작되는 삶의 이치도 수없이 많다.


우리는 모두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된 존재이다. 수많은 지식들과 수많은 책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우리 마음을 거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 삶의 모든 고민의 시작은 결국 우리 마음으로부터 시작된 감정의 문제들이다. 더 행복해지고자 하는 감정, 더 기쁘고 싶은 감정, 더 따뜻하고 싶은 마음, 더 많이 웃고 싶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웃음은 늘 그렇다. 항상 행복하고 싶지만 항상 행복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웃음을 갈망한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있듯이  힘들어도 억지스럽게라도 웃길 원하며 그 웃음이  행복을 가져다주길 소망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웃음은 나와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찾을 때 더 효과적이라 느낀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 같은 웃음을 갈망하는 사람들이며, 내가 원하는 진실된 웃음은 누군가도 바라는 웃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웃는 얼굴을 보이며 언제든 꺼내들 수 있는 칼을 숨기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질문은 우리에게 딜레마를 가져다준다. 인간사의 모든 관계의 법칙이 그러하듯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웃으며 좋은 척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 그렇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나는 나 자신에게 진실된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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