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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눌프 Oct 27. 2019

안주를 위한 나태와 만족 그 어딘가

머무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안주하는 것, 현재의 상황과 처지에 만족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만족은 감사를 만든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은 감사의 공간 안에서만 머물지 못하는 것이 특징이다. 만족이 시작되는 순간 인간은 더 큰 만족을 위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제어하지 못할 모험을 시작한다. 이 모험은 막장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된다. 막장이라 욕을 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막장 드라마에 열광한다. 왜? 제삼자가 볼 때는 매우 비정상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결국엔 우리가 사는 이 현실 속 이야기와 별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비정상인 것 같지만 지극히 정상적인 스토리이다. 물론 잘못된 행위가 정당하다는 의미의 정상이 아니라,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이라는 본능의 모험이 정상적인 과정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사람의 본능이 오늘날에는 정체되어 있다. 물질적으로 가진 게 많고 풍요로워서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에 대한 무력한 순응이다. 더 나아질 것도 더 나빠질 것도 없다는 순응으로 인하여 무기력함이 삶을 지배한다.


‘안주하다’라는 말은 대체적으로 부정적 느낌으로 많이 사용된다. 사실상 부정적으로 사용될 이유가 전혀 없는데 부정적으로 여겨진다. 세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오늘날엔 이 ‘머물러 있는 것’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무언가 손에 잡히는 결과물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것은 비생산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취급하는 이 사회의 모습이다.  

  

개인적으로 요즘 유행하는 ‘소확행’이라는 단어도 어찌 보면 머무르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으로 인해 파생된 단어가 아닐까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작은 것에서 느낄 수 있는 만족과 행복을 뜻하지만 사실 소확행이라 이름 붙이는 많은 것들을 보면 유명세로 핫한 카페에 가서 인증 사진을 남기는 것, 유명한 휴양지에 가는 것, 쇼핑을 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SNS에 기록하는 것 등이 대다수이다. 물론 이와 같은 사례가 우리에게 작게 혹은 크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무언가 물질적 투자와 보여주기 식 삶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인하여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고 머무는 이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한 쉼의 시간으로 보내지 못한다. 소확행이라는 단어도 가만히 머물기보다는 투자를 통해 무언가를 계속 얻어야만 붙여지는 이름이 되었다. 그렇기에 ‘안주하는 삶’은 소확행의 영역에 들어갈 수 없는 삶이 되었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소확행 족보의 시작은 노자가 주장한 무위자연인데도 말이다.

 

개인이 가만히 머물러 있는 시간의 흐름 안에서도 불안해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타인의 삶과 내 삶을 비교하는 열등감과 박탈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현대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삶의 모습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부지런한 사람들을 동경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잠을 줄여야 한다는 생체리듬의 파괴까지 불러오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우리의 몸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말이다.  

 

회사원인 나는 어느 순간부터 주말에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음에 대해서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평일 내내 열심히 일을 하고서도 주말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가만히 누워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한심하다 여겨졌다. 남들은 주말도 알차고 활기차게 보내는 것 같은데 나 혼자서만 정체되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괴감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이 오만가지 걱정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내 몸은 핸드폰을 손에 쥔 채로 그대로 누워서 꿈쩍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득, ‘이런 걱정 해봤자 뭘 하겠나, 어차피 누워만 있는데. 이왕 쉬는 거 아무 생각하지 말고 잘 쉬자.’ 하고 핸드폰을 내려두고 내가 원하는 만큼 수면 시간을 가졌다. 걱정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차라리 걱정 없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나에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내 주말의 시간은 수면 보충으로 다 지나가버렸지만 대신 일주일의 생체 리듬이 전 주보다 비교적 훨씬 좋았다. 오히려 활기찬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말은 맞지만 육신이 정신을 지배하기도 하니 내 몸이 너무 힘들 때는 몸을 위한 휴식을 주자는 마음이었다. 몸과 마음을 하나로 보기로 보다는 분리된 것으로 보아서 몸을 위한 휴식과 마음을 위한 휴식을 개별적으로 주어야 하는 것이 분명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분명 알고 있던 부분이었지만 그동안 잊고 살아왔었다. 이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사실을 다시 되새기고서 나는 주말에 몸과 마음을 조금 더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


삶의 현실이 각박하여 내가 분주히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한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은 몸과 마음은 인간이 만들어낸, 듣기만 해도 바쁜 초침 소리의 시계에 맞추어 지어진 것이 아닌 변함없는 자연의 시간에 맞추어 지어진 것이므로 조금이라도 나를 위한 쉼과 머묾이 필요한 것이다.


때로는 나 자신이 나태하게 느껴지고 무기력하게 느껴질지라도 머무는 것은 필요하다. 물론 이 나태함과 무력함이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것이라면 지양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타인을 의식하는 삶과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삶은 분명 다른 이야기이다. 내 시간을 나를 위해 온전히 보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내 행위에 대한 책임은 분명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에게 때로는 머묾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기력하고 나태하다고 자신을 자책할 필요는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고 반드시 거쳐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편안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무기력함과 나태한 삶에 대해 불안함과 죄책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편안한 것이 아니다. 이왕 게으름 부릴 것 아무 생각 없이 맘 편히 게으름을 부린다면 오히려 유익할 수 있겠지만 이 사회에서 사실상 ‘의식된 게으름’을 부리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게으름이 의식되기 시작한 순간부터 불안함을 경험하는 것이 현대인들의 고충이기 때문이다.


내 삶에 만족하는 것, 쉽지 않다.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더 쉽지 않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만족스러울 거라는 게 우리의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 오히려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때로는 나에게 유익함이 될 수 있다. 자기 계발은 누군가의 강의를 듣고, 무언가를 행하는 것으로부터만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어두운 방 안에서, 때로는 아침 햇살을 맞이하며, 때로는 따뜻한 이불속에서 떠올리는 생각 속에서도 실현될 수 있다. 나의 정체기를 자괴감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아가지 말자. 누구에게나 올 수 있으며 누구에게나 떠나갈 수 있다. 멈춰있기 때문에 갈 수 있는 곳이 있고, 또 멈춰있기 때문에 점검할 수 있다.


- 안주를 위한 나태와 만족 그 어딘가에서 헤매는 누군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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