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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눌프 Sep 08. 2019

미칠듯한 우울감에 사로잡힐 때

나를 뿌리내릴 수 있게 하는 토양


가끔씩 참을 수 없는 우울감이 엄습할 때가 있다. 어떤 빈 공간 안에 혼자 우두커니 있기 때문에 외롭다고 느끼는 그 기분과는 사뭇 다른 감정이다. 외딴섬에 나 혼자만 존재하고 있는 것과 같은 고독함과는 다르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이지만 이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이 있는 가운데, ‘나는 어디에도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이 없다는 지극히 비관적이고 주관적인 내 관점이 데려 오는 불안함’이라고 하는 편이 가장 근접하다고 볼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경험하는 불안은 늘 외로움과 함께했다. 외로워서 불안했고 이 불안함을 누구도 알 수 없었기에 외로웠다. 여태껏 나는 외로움을 증오하지만 또 외로움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타고나길 나의 근본적인 기질이 외로움에 기반해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외로움을 지극히 싫어하지만 또 즐길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 왔다. 그런데 나는 알고 보니 외로움을 증오하는 것도 즐기는 것도 아니었다.


감정이라는 것이 인생의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있으며,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존경받을만한 사람이라고 여겨왔었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개인이 느끼는 감정은 때로는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주고 때로는 삶을 비극적으로 만드는 어떠한 수단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단은 사실상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반이고 정체성이었다. 나는 어떤 감정보다도 나라는 존재에 대한 기초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내가 누구이며 나는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기초가 없는 빈 공간을 대체할 것을 찾았고, 그게 바로 외로움이라는 감정이었다. 뿌리내릴 곳이 없는 공허함과 불안함을 ‘타고난 외로움’이라는 변명으로 대체하며 살아왔던 것이었다. 그래야 내 상황과 환경을 합리화시킬 수 있는 그럴싸한 핑곗거리가 생긴 것만 같았고 그렇게 해야만 내가 살 수 있었다.    


결국 삶이라는 것은 뿌리가 있어야만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정립하지 못하고 삶에 대한 작은 희망마저 좌절되기 시작한다면 누구라도 우울한 감정 앞에서 길을 잃고 말 것이다. 누군가가 우울함 앞에 길을 잃었다고 한들 누구도 그 사람을 탓할 수 없다. 기초가 필요하다. 기반이 없는 가운데에 감정만을 다스리고자 한다면 우리에게 남은 모든 에너지가 소진될 수밖에 없다.


우울함이 가지고 오는 공허함은 계속해서 우리의 삶이 무의미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우리의 삶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우울함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어딘가에 둘 곳 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도 내 잘못이 아니다. 정체성이 불분명한 것이 내 삶의 무의미함을 결정지을 수 없다. 인생의 튼튼한 기반을 형성하는 것도 온전히 내 자신의 몫이라는 자기희생적인 말은 하고 싶지가 않다.  


삶의 기초는 다양한 경험으로부터 형성된다. 어떤 이는 가정으로부터 기초를 제공받기도 하고 어떤 이는 친구나 동료로부터 기초를 제공받으며 어떤 이는 종교로, 또 어떤 이는 자기 스스로 그 기초를 만들어간다. 또 어떤 이는 그 기초가 없이 공허하게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인생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 매우 거창한 무언가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인간 삶의 메커니즘은 단순함과 소박함에 있다고 본다. 즉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단단하고 안전한 기초는 단순함과 소박함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들을 사랑하고 있고, 쳇바퀴 굴러가듯 반복되는 일상들을 처절하게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단순하고 소박함을 사랑하는 인간의 기초를 형성하는 가장 큰 요소는 ‘지지’라고 생각한다. 살을 부대끼며 당장 옆에 누군가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더라도 내 삶에 대한 응원과 지지를 해주는 누군가의 존재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존재와 존재의 소통이다. 맞다. 그게 인간이고 삶이다.      


맞다. 그래서 나에게 필요한 것 역시 바로 그 지지였고 응원이었다. 네 삶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은 싸늘한 시선들과 말들로 내 속에 비수가 꽂히는 그 순간에도, 내가 어떤 상황과 모습이어도 나를 이해해주고 격려해주는 그 누군가의 존재가 단 한 명이라도 떠오른다면 외줄 타기와 같이 불안하고 삐그덕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게 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지지와 격려가 필요한 사람이다. 내 외모나 성격, 어떤 개성을 넘어서서 나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과 내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이 어디인지에 대한 문제는 ‘너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내가 있고, 나는 네가 어떤 모습이어도 너를 믿는다’는 존재의 긍정에 달려있다.    


자신의 정체성과 기반에 대해서 항상 외로운 의문을 가지고 살아가는 누군가가 이 글을 본다면 꼭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처절한 우울감이 당신을 찾아온다고 해도 당신은 그 우울감을 받아들이고 또 떠나보낼 자격이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살아온 수많은 시간들을 존중하고 당신은 앞으로도 존중받을만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존재를 응원합니다. 당신의 삶은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무한합니다.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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