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암이었다. 다만 1기 암이어서 수술만으로 모든 치료가 끝났다. 향후 2, 3년간 항암 목적으로 호르몬제를 먹어야 하지만 이 정도면 천만다행이다. 암을 1기에 발견하는 것은 천운이라고 했다. 난 하늘이 도운 사람이다.
암이란 소식을 들었을 때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만큼 좌절스러웠다. 내 경우는 갑상선 암 중에서도 5% 정도밖에 되지 않는, 혈액으로 암세포가 옮겨 다녀 폐, 뇌, 뼈까지 전이될 수 있는, 흔히들 착한 암이라고 하는 것과는 다른, 위험한 갑상선 암의 한 종류였기 때문이다. 괜히 머리가 아프면 혹시 뇌로 전이된 게 아닐까 싶고, 척추가 불편하면 뼈로 전이되진 않았을까 걱정된다. 그러다가 가끔은 이런 걱정 속에 사느니 콱 죽어버리고 싶어 진다.
얼른 마음을 고쳐 먹고 다시 제대로 살 생각을 한다. 죽음을 앞둔 순간의 생각처럼만 살아도 충분히 좋은 삶일 것이다. 한 시간 뒤에 숨이 넘어갈 사람이, 본인의 인생을 수십, 수백 컷의 사진으로 인출해 하나하나 빠르게, 그러나 아주 세세하게 되짚어 보는 그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내가 사랑한 몇 안 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충분히 말하지 못한 것을 후회할 것이다. 그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순간의 감정으로 굳이 뱉지 않아도 될 차가운 말들을 우습게도 내뱉은 사실에 괴로울 것이다. 말들에는 그 말을 해야 할 아주 적당한 순간이 있음을 알지 못한 것에, 혹은 알았음에도 행동하지 못한 것에 안타까워할 것이다. 쓸모없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이리저리 휘둘려 산 세월을 아까워할 것이다. 인생을 좀먹는 사람을 곁에 두고 오래 끼고 산 것을 후회할 것이다. 과거와 미래만을 바라보며 살다, 정작 오늘을 제대로 산 날이 얼마 없다는 사실에 씁쓸할 것이다. 나를 진정으로 위로하고, 진정으로 행복하게 할 사람은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임을 잊고 산 날들을 후회할 것이다. 쓸 데 없는 것들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내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 것을 후회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울한 날보다 행복한 날이 더 많았음을 외면했던 것을 후회할 것이다.
자, 잘 알았으니 제대로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