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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신의 이유 Oct 29. 2022

빈 유모차의 무게



3월, 아이가 어린이집 적응기간 이주 차에 들어섰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양말을 신기고 옷을 입힌   데운 빵을 뜨거운지도 모르고 작게 자른다. 급한 마음에 얇은 책을 흔들어가며 재빨리 빵을 식혀 아기 입에  밀어주곤 물병에 따스한 물을 쪼르르.


아기가 빵 하나를 다 먹은 후에야 아기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시간은 자꾸만 가는데, 유모차 안에 아기는 어디로 가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자동차 구경에 신이 났다.


도착하니 아직 10분 전, 이상하게 아쉬운 마음에 주변 공원을 조금 더 돌다가 오늘은 그냥 집에 갈까? 하는 생각이 몽실몽실.


어린이집 문 앞까지 마중 나오신 선생님 품에 아기를 배웅하고, 나를 한번 더 돌아보곤 방긋 웃는 아기의 뒷모습을 유리문 너머로 한참을 바라본다. 아이는 유리문 안에서 신발을 벗고 선생님을 따라 교실로 들어가고 나는 걸음을 떼지도 못하고 서 있다.


“괜찮겠지? 잘하겠지? 배는 안 고프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두 시간은 너무 긴 것 같은데.”


구시렁구시렁 혼잣말을 한다.


어제까지는 아기의 적응시간이 한 시간이라 문 앞에서 아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는데 오늘부터는 두 시간이라 “잠깐 집에 가볼까.” 하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가는 길.


유모차 브레이크를 밟고 앞으로 미는데

바퀴가 미끄러지듯 주욱 나아간다.


‘유모차가 이렇게 가벼웠었나.’


이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이를 태우고 나가 아이가 없는 빈유모 차로 돌아오는 일은 오늘이 처음. 손으로 전해지는 유모차의 무게만큼이나 마음이 쿵- 무겁다.


빠르게 굴러가는 유모차 바퀴를 따라가지 못하는 느릿느릿한 발걸음.


이제 막, 아이를 배웅하고 오는 길인데

아이가 보고 싶어 사진첩을 뒤적인다.


겨우 두 시간일 뿐인데, 괜찮아.

겨우 두 시간일 뿐인데,

겨우 두 시간…


도착한 집, 어색한 고요. 거실에는 아이가 놀던 장난감들이 그대로 흩어져있다. 나는 외투도 벗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 비어있는 유모차의 무게를 느낀다.


그랬구나, 그랬어.

너는 나에게.


그랬구나, 그랬어.

나는 왜 알면서도 알지 못했고

느끼면서도 느끼지 못했는지.


모든 순간순간이 동그랗게 뭉쳐져 어깨 위로 후두둑 쏟아진다.


육아를 하면서 나는 늘 제자리에 멈춰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나를 끌어당기는 너라는 중력이 있어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는 것, 그 당연한 사실을 깨닫는다.


너무나 일상적인 것이어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사랑하는 내 아이의 무게. 그 무게를 마음으로 끌어안으며 조용히 흐느낀다.


하릴없이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다

주어진 시간은 더디 흐르고


어느새 빈 유모차는 다시 달캉달캉

너를 데리러 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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