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감기로 가정보육을 한지 일주일이 넘었다. 아기는 가만히 있어도 코가 줄줄 나는 감기에 걸렸지만 여전히 대단한 체력을 자랑했고, 집안을 종횡무진 활보하고 다녔다. 와장창! 하는 소리에 돌아보니 어머님이 선물해주신 참기름병이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었고 집은 온통 고소한 참기름 냄새로 가득했다. 신혼 때보다 더 깨 볶는 냄새 (남편의 말) 그것은 가정보육의 냄새였다.
지금까지 아기와 함께 24시간 붙어 있었고, 그것이 곧 가정보육이었다. 아기가 어린이집을 다닌 뒤에도 부러 낮잠을 재우지 않았고, 아기는 키즈카페처럼 3시간 정도 놀다가 내 품으로 돌아와 낮잠을 잤다.
3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아주 오랜만에 나만의 시간이 생긴 것이 어색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조금의 그 시간이 기쁘기도 했다. 아침 운동을 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아기가 돌아올 시간, 간식을 챙겨 아기를 데리러 가는 길은 마음은 늘 기쁘고 바빴다.
하지만 최근 어린이집 임시 이전으로 갑자기 운행하는 차량을 타야 했고, 보도블록에 바퀴도 올리는 기가 막힌 운전 솜씨를 가진 나는 하루에 단 한번 운행하는 어린이집 버스 시간에 맞춰 아기 낮잠을 재울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없었다. 아기는 낮잠 적응도 잘해주었고 나는 대리운전기사처럼 내내 전화기만 붙잡고 기다렸지만 어린이집으로부터 전화는 결국, 걸려오지 않았다. 때문에 갑자기 생긴 오후라는 시간. 나는 어린이집에서의 아기의 낮잠이 여전히 달갑지 않은 상태였고, 아기가 왠지 충분한 낮잠을 자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가 찾아온 장마, 그것보다 먼저 찾아온 감기. 감기는 늘 스치듯 지나갔으나 이번 감기는 달랐다. 아기는 안 하던 기침을 하고 가만히 있어도 콧물이 줄줄 났으며 밤에도 가래 섞인 기침을 컹컹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할 수 있는 건 소아과에 가는 것뿐, 잘 먹고 잘 자고 약도 잘 먹었지만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어린이집에서 시작된 감기는 벌써 네 번째 그리고 또 언제 코감기나 기타 다른 질병에 노출될지 몰라 마음이 불안해졌다. 내 잠깐의 시간을 위해 아기가 아픈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나는 어린이집에 불편함을 느꼈다.
그렇게 시작된 가정보육 솔직히 힘이 들었다. 어떻게 아기를 하루 종일 돌본 건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순간도 많았고, 체력이 방전돼서 낮잠 자는 아기보다 더 곤히 잠들어 아기가 나를 흔들어 깨우기도 했다. 그 세 시간이 뭐라고, 나는 이미 어린이집 시곗바늘 소리에 몸을 맞추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정보육의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나는 가정보육 그 소소한 매력에 풍덩 빠지기도 했는데 그건 아기와 24시간을 함께 하며 내가 놓치는 순간이 없다는 점이었다.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잠시 입을 삐죽이는 귀여운 얼굴, 아기 입에서 나오는 처음 드는 단어, 미끄럼틀을 붙잡고 추는 엉덩이춤, 뒤로 걸어가는 문워크, 무엇보다 엄마!라고 부르는 음성 속에 섞인 다양한 감정, 그 감정은 나를 바라보는 얼굴에도 그대로 녹아있어 때로는 눈물이 났다. 비록 힘겹지만 놓치면 후회했을, 아니 몰라서 후회도 하지 못했을 이 모든 순간을 나는 눈으로 마음으로 담아낼 수 있었다.
긴 장마가 끝나고 햇빛이 쏟아졌다. 아기를 안고 창가에 서서 오랜만에 나타난 해님과 인사하고, 구름을 기쁨으로 맞이한다.
아기는 해님에게도 구름에게도 오랫동안 안녕! 하며 손을 흔들어주었고, 해님! 구름!이라고 말하는 그 어여쁜 목소리가 좋아 마음에도 해가 들던 아침.
아기가 어린이집에 등원했다면
내게는 없었을 그 아침을 만났다.
계속해서 미뤄지던 복직은 이번에도 미뤄졌다. 연장 가능한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아 이번에도 복직 연장을 신청했다. 고민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렇게 복직을 미루자 이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막상 일이 시작되면 습관이 무섭다고 일이야 하겠으나 여전히 엄마 무릎에 앉는 게 더 좋은 18개월 아기를 떼어두고 다시 전쟁터로 나갈 자신이 없었다.
이번에도 나는 선택을 했고 낮잠에 든 아기의 귀여운 얼굴을 바라보며 그건 아이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나를 위한 선택임을 깨달았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체력은 아마 더 부족할 것이고 어느 날은 힘이 들어 어느 날은 감정에 매몰되서 발버둥을 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의 존재를 이길 수 있는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완전히 구름을 벗어나지 못한 해, 하지만 그것만으로 반가운 해를 마중하러 아이와 나선 길. 어른이나 아이나 바깥에 대한 동경은 같은 것이어서 아이는 이제 산책이라는 단어를 말하며 스스로 유모차에 오른다. 아직도 비에 젖은 은은한 풀냄새를 맡으며 아파트 단지를 나서는 그 신나는 길.
기다랗게 늘어진 내 그림자와 아이가 그 여름을 향해 손을 흔든다. 아이는 누구보다 오랜만에 하는 산책을 즐겼고, 좋아하는 자동차도 버스도 그리고 총총총 길을 지나는 강아지까지 꽤 오래 눈에 담았다. 연신 유모차 밖으로 삐져나오는 작은 손가락 그 끝은 이것저것 가리키기 바쁘다. 신나서 동동 구르는 발에 나도 덩달아 동동.
사랑하는 내 아기야, 오늘의 그 마음을 잊지 마. 우리 산책하는 마음으로 살자. 살다 보면 해는 구름에 가려져 캄캄할 때도 일주일 내내 비가 쏟아질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언젠가 오늘처럼 이렇게 햇빛은 쏟아질 거야.
그때는 굳게 닫혔던 문을 박차고 나가 나무 냄새 풀냄새를 맡으며 산책을 하자. 마냥 걸으면서 마음의 짐은 톡톡 떨구고 그렇게 산책을 하자. 부디 산책하는 마음으로 살자. 엄마도 노력할게.
아픈 너를 바라보면서 그게 다 내 탓인 것만 같아 마음이 어려웠어. 너무나도 부족하고 아직도 감정에 쉽게 빠지고 꽤 오래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는 사람을 그 어떤 이유도 없이 사랑해주어 고맙다. 너의 이 빛나는 순간들을 놓치지 않아 참 다행이야, 다행이야.
가정보육! 분명 힘들다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투덜투덜 엄마에게 늘어놓은 푸념이 베란다에 쌓인 생수병보다 많지만, 곧 다가오는 어린이집 등원이 망설여지는 이유.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산책을 마치고 들어선 집.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여전하다. 아기를 품에 꼭 안고 코를 킁킁거린다.
그 냄새를 오랫동안 들이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