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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신의 이유 Oct 29. 2022

가정보육, 아이가 달라졌다.

나는 어린이집이 무섭다




가정보육 3주 차 비가 시원하게 내린다. 삼주 동안 벌써 두 번째 장마가 찾아들었다. 가정보육 시작은 아기의 첫 중이염, 콧물이 멎고 가래가 사라지고 숨소리도 편안해졌지만 나는 아직 아이를 보내지 않는다.


집에서 엄마 얼굴만 바라보던 아기는 어린이집에 하루 만에 적응해 문 앞에서 손까지 흔들어가며 나를 배웅했다. 어린이집 등원 거부도 많고 적응기간도 오래 걸린다던데 아무렇지 않게 적응한 아기가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허전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아기를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와 아기가 흩어놓은 장난감을 눈으로 쓰다듬어보기도 하고, 정적이 흐르는 집안 공기가 어색해 음악을 틀어보기도 했다. 아기에 이어 내가 어린이집에 서서히 적응할 무렵 아기가 첫 번째 감기에 걸렸다.


15개월 동안 한 번도 아프지 않던 녀석의 인생 첫 감기. 마음이 쓰이는 건 당연했으나 며칠 코만 흘리고 가볍게 지나가기도 했고, 기관에 다니면 다 그렇다더라 하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 나 역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벌써 네 번째 그것도 이번엔 중이염, 열나는 것도 처음, 귀에 물이 차는 것도 처음, 모든 게 처음인 아기가 축 늘어져 엄마품만 찾았다. 활기가 넘치다 못해 줄줄 흘러 물티슈를 들고 따라다니며 닦아내기 바빴는데, 그 많던 생기가 바짝 말랐다. 단체생활이 다 그런 거라고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열은 하루 만에 내렸고 다시 아기도 잘 놀고, 잘 먹는 일상으로 돌아왔으나 나는 이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게 아기는 어린이집에서 집으로,

다시 내 품으로 돌아왔다.


어린이집에서는 한주에 두세 번씩 꼬박꼬박 전화가 왔다 아기 상태는 어떤지, 언제쯤 등원이 가능한지 묻는 전화. 한주는 꼬박꼬박 받다가 이주 차에는 아기를 보낼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먼저 연락을 드리겠다고 정중히 말씀드리곤,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사실, 아기는 준비가 됐는데 나는 마음의 준비가 안됐다. 겨우 중이염을 털어냈는데 또다시 가서 감기라도 걸려와 중이염이 재발하면 어쩌지? 요즘 수족구나 장염이 유행한다는데 이번엔 그 질병에 걸리면 어쩌지? 나는 요즘 어린이집이 무섭다.


순하디 순한 아기가 짜증을 부리기 시작한 건, 어린이집 낮잠 적응 이후였다. 늘 낮시간에만 어린이집에서 놀다 오던 아기가 어린이집 이전으로 어쩔 수 없이 낮잠을 자게 된 것이다. 임시 이전한 어린이집은 너무 멀었고 운전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매번 택시를 타고 아기를 데리고 갈 수 없는 노릇이라 집 근처로 데려다주는 버스시간에 맞춰 낮잠을 자기 시작했던 것.


어린이집에서 오전 시간만 보내고 와서 늘 내 품 안에서 함께 낮잠을 푹 자고 기분 좋게 오후를 시작하던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잔 이후부터 이유 없는 짜증을 부렸다. 좋아하는 작은 자동차들을 던지기도 하고, 발을 구르는 등의 이전에 보지 못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낮잠 부족 혹은 어린이집에서의 첫 사회생활 스트레스라고 조심스럽게 짐작했으나 이앓이 혹은 재접 근기 등 다양한 원인들이 더해졌을 거라 여겨 아이가 다녀오면 최대한 즐겁게 놀아주려 애썼다. 하지만 자잘하게 부리는 짜증은 줄지 않았고 늘어만 갔다. 어떤 날은 자다가 깨서 엉엉 울기도 했다.


나는 걱정이 되어 어린이집 선생님께도 두어 번 상담을 했지만 아이는 여전했다. 나를 당황스럽게 했던 건 아이는 그런 와중에도 여전히 내게 손을 흔들고 즐겁게 등원했으며 어린이집에서도 잘 먹고 잘 놀뿐 특이사항이 없었다는 것이다. (직접 가서 보기도 했다.)


그런데 가정보육을 시작한 뒤 아기가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놀고 싶을 때 놀고먹고 싶을 때 먹으며 스케줄로부터 자유로워지자 아이의 표정부터 밝아지기 시작했고, 이전처럼 낮잠을 자고 나면 기분 좋게 웃으면서 일어나 신나게 놀았다.


그렇다고 생활이 불규칙해진 것도 아니었다. 낮잠이 조금 들쑥날쑥 해진 것을 제외하면 규칙적으로 밤잠을 푹 잤다. 나와 함께 있을 때도 수시로 부리던 짜증은 어느새 사라지고 엄마와 같은 공간에만 있으면 그저 행복한 18개월 아기가 되었다.


과일 먹으러 갈까? 하면 자두! 하고 외치면서 냉장고로 달려가고 산책 갈까? 하면 유모차에 덥석 올라타고 엄마가 책 읽어줄까? 하면 신중하게 책을 고르며 하루 종일 작은집을 헤집고 다닌다. 가정보육 3주째, 아기는 집, 그리고 엄마를 만끽하고 있다.


지금은 육아휴직을 내서 쉬고 있지만, 나는 직장인이다. 그것도 일중독이라고 불렸던 열혈(?) 직장인이었다. 승진도 빨랐고 성과도 만족스러웠다. 또 한 번의 승진시기에 놓여있었고 그 기회도 없지 않았으나, 그것은 모두 지나간 일, 나는 육아휴직 중이다.


아기가 어리니 육아휴직은 자꾸만 길어지고 길어질수록 직장으로 얼른 돌아가야지 하는 마음보다는 가게라도 해서 아기 곁에 있어야 하나 하는 어쭙잖은 생각까지. 그렇게 일일일! 하던 직장인이 집에서 길을 잃었다.


경제활동이라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것이어서, 나는 언젠가 돌아가야만 한다. 돈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니까, 아기를 키우며 해주고 싶은 것은 점점 늘어가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돈이 필요하다.


얼마 전, 마트에서 무료로 아기 책을 나누어주는 이벤트를 했는데 책을 좋아하는 아기를 위해 나도 참여했다. 그런데 내 앞에서 24개월 이전 연령 책이 다 떨어져 나는 글밥이 더 많은 어린이 그림책을 받게 됐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그 책이 18개월 아기를 사로잡았다.


어느 작곡가의 이야기를 그린 그 책을 보며 아기는 바이올린에 관심을 보였다. 악기!라고 가르쳐주며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려주니 넋을 놓고 귀를 여는 녀석, 그때 이후로 악기! 악기 하며 바이올린 그림을 보면 몸을 흔들고 연주하는 시늉도 낸다. 심지어 집에 있는 대나무 전등을 손으로 긁어 소리를 내며 연주!라고 말했다.


갑자기 뜬금없이 바이올린 이야기라고 의아해하겠지만, 이것도 다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시간, 교재(비용), 엄마의 관심 이 삼박자가 맞아떨어질 때 아이에게 나타나는 변화는 내가 짐작할 수 없는 수준, 특히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유아시절에는 더 그렇다.


이럴 때 집에 바이올린이 하나 있었으면 아기가 얼마나 좋아했을까, 내가 연주할 수 있었다면 더 좋고, 이렇게 자꾸 욕심의 성을 쌓아 올리는 것이다. 아기를 정해진 틀에 넣고 꾹 찍어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나 아기가 무언가 궁금해할 때 좀 더 다양하고 큰 세상을 만나게 해주고 싶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했던 나에게 그 세상은 오직 책이었으나, 아이는 그 세상과 직접 살을 맞대었으면 하는 욕심.


복직을 위해서는 언제까지 가정 보육할 수는 없다. 그것을 안다. 아기가 기관을 다니며 또래 아기들과 함께 감자도 따고, 엄마 아빠가 아닌 어른, 선생님도 만나고 집에서는 할 수 없는 다양한 활동도 하며 배우는 것도 많다는 걸 그것도 안다. 다만 아직도 나만 바라보는 18개월 아기는 아직 너무 어리다.


친구와의 놀이가 가능한 월령도 아니고, 우정을 만들어가는 단계는 더더욱 아니며 무엇보다 언어발달이 제법 빠른 이 녀석도 아직 의사표현을 온전히 해내지 못하니, 아이의 정확한 마음을 알 길이 없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며 느끼는 감정도 스트레스도, 고민도 다 들어주고 싶은데 들을 길이 없는 것이다.


또한, 나를 닮아 소리에 예민한 아이가 정해진 시간에만 자야 하니 낮잠 부족에 시달리고, 그 피로가 계속 누적되어 부리는 짜증까지는 참아주겠으나, 아기가 계속해서 아픈 것만은 쉬이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가정보육 역시 쉬운 일은 아니나 (아니,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나) 눈에 띄게 밝아지고 건강해진 아기를 보니 도저히 다시 보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오고 며칠만 더 데리고 있어야지 중얼거리며 옆에서 곤히 잠든 아기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다.


며칠이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삼주가 되는 동안, 아이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오래 바라보고 싶은 아름다운 꽃이 피어난다.


힘내자,

나와 아이에게 주어진 시간이 빠르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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