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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 Apr 23. 2019

생애 첫 연봉협상; 이 돈 받고는 일 못합니다

간호사가 괜찮은 직업이었네...

"지금 회사, 다 좋은데... 월급이 너무 적어!"


며칠 전, 친구가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스타트업에서 막 커리어를 시작한 친구의 고민은 다음과 같았다.

"회사 분위기도 좋고, 내가 하는 일도 맘에 들어. 그런데 월급이 너-무 적어."


그래? 나도 적게 받고 많이 일하는 것으로는 어디 가서 뒤지지 않지. 그래서, 너 얼마 받는데? 그렇게 오픈한 서로의 연봉.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슬퍼해야 하는 건지, 어쨌든 그녀는 나보다 많이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이상하다. 분명 좋은 마음으로 상담해주려 물어본 건데, 왜 처맞은 건 나지?


 


간호사 연봉에서, 비 간호사 연봉으로


지금 회사의 정식 사원이 되어 출근한 첫날,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을 기다렸다. 정직원 제의는 받았지만, 아직 연봉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해 궁금하던 참이었다. 심지어 나는 "돈 안 줘도 되니, 우선 뽑아만 주십쇼!"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던가.(자세한 내용은 관심 있는 스타트업에 우선 메일을 보내보겠습니다.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와 돈이 적네 어쩌네 하기도 참 멋쩍은 상태였다.


드디어 정식 계약서를 작성하러 회의실로 들어갔다. 회의실에는 인사 담당자, 나, 그리고 계약서 두 장뿐. 담당자는 내게 계약서를 건네며, 근로 조건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관심 밖. 나는 계약서를 받자마자 빠르게 아라비아 숫자를 찾았다. 그리고 곧 충격에 휩싸였다. 계약서에 적힌 월급은 최저임금에서 고작 10만 원이 더해진 184만원이었다.


나는 인턴 3개월 동안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했다. 인턴 신분이었을 때는 그 월급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나 스스로 내 노동의 가치가 어느 정도의 액수로 환산되어야 할지 기준이 서지 않았고, 무엇보다 인턴 기간은 딱 3개월이었다. 어쨌든 수습기간이 끝나면 정당한(?) 몸값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 계산이 틀렸다. 간호사 연봉에 익숙했던 나는 이 월급을 보고 과장 좀 보태 길바닥에 후려쳐진 기분까지 들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인사 담당자는 월급에 대해 회사 내규에 따랐다는 것 외에 별다른 코멘트가 없었다.


아아, 세상은 이렇게 냉정하다. 몰랐던 것도 아닌데 항상 낯선 이 느낌.




깨달음 - 간호사가 괜찮은 직업이었어


내가 처음 일했던 대학병원의 간호사 초봉은 대략 4000만 원 초반대였다.(몇 년 전 기준이며, 근무 스케줄이나 부서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사회 초년생치고 꽤 괜찮은 연봉을 받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내가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실제로 수당을 제외한 기본급은 낮았고, 이것저것 공제금이 높아 정작 손에 쥐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던 것도 한 몫했다. 거기에 일하며 감당해야 하는 육체적, 감정적 노동을 생각하면 간호사 연봉은 절대 높은 수준이 아니다.


실제로 간호사들이 탈임상하면서 가장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낮아진 연봉이다. 사실, 병원에 있던 시절 나에게 연봉은 직업 선택에 있어 최우선의 가치가 아니었다. 돈 많이 안 받아도 되니 칼퇴근 보장되고, 앉아서 일하면서, 출근이 두렵지 않은 일을 한다면 만족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월급이 세전 184만 원이라는 것을 모를 때의 이야기였지.  


우선 새로운 연봉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하지만 충격적으로 적은 월급은 계속 나를 쫓아다녔다. 얼마나 실망스러웠냐면, '간호사도 괜찮은 직업'이라고 생각하며 그때의 월급을 그리워하는데 이르렀다. 이 때가 내 인생 최초로 간호사의 이점을 인정한 전무후무한 순간이다. 자아실현이고 뭐고, 돈이 이렇게 무섭다.




연봉 협상은 정말 '협상'일까


새 연봉에 현타 맞고 잠 못 이룬 지 일주일째 되던 날, 나는 인사담당자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도저히 이 월급을 받고는 일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연봉 협상을 통해 연봉은 전보다 꽤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연봉 협상에 성공했냐고 묻는다면, 글쎄.


연봉 협상은 내 가치를 스스로 어필해 인사담당자를 설득해야 하는 자리다. 그리고 노련한 인사담당자를 설득하기는 정말, 정말 어렵다. 당시에 나는 이제 막 입사한 신입인데다, 직무도 바뀌어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는 입장이었기에 연봉 인상의 근거를 이야기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그나마 1. 직전 연봉 2. 간호사 경력 3. 회사에서 오래 일하고 싶다는 어필을 통해 담당자를 설득할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나와 인사담당자의 면담은 연봉 협상의 형태를 띄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것은 협상이라는 단어를 붙이기 굉장히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때의 면담은 '협상'이라기보다, '부탁'에 가깝지 않았을까. 연봉협상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이전에 회사에서 제시한 연봉이 있기에 한 번에 많은 금액을 올려 제시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당시 내게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난 이 회사가 마음에 들었고, 당장 다른 기회를 탐색하기에는 지쳐있었다. '협상'이란 걸 하기에 최악의 조건이었던 셈이다. 다행히 월급이 오르긴 했지만, 만약 회사가 '안 된다.'라고 일축했다면 나는 지금도 세전 184만원의 월급을 받고 있었을 거다.




다음 연봉 협상을 위한 준비


연봉협상 후 벌써 몇 개월이 지났다. 그 몇 개월동안 나는 다음 연봉 협상을 잘해보겠다고 각종 협상의 기술, 인사 전문가들의 글들을 왕창 읽었다. 하지만 남은 것은 연봉 협상의 본질이 '협상'이 아니라는 사실 뿐.


협상이란 건 서로 동등할 때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니 갑 님이 만족하시는 성과를 내야 을인 내가 연봉 협상을 협상답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절대 진리일 수 밖에. 일을 어떻게 하면 잘 할지 고민해도 모자란 시간에 나는 협상 기술 수련한다고 열심히 삽질하고 있었구나...


어쨌든, 다음 연봉 협상까지는 반년 조금 더 남았다. 오늘도 나는 연봉을 조금이라도 높여보고자 열심히 일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래서, 간호사 초봉 받으려면 얼마나 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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