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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Sep 01. 2021

바퀴벌레 집


"엄마는 네가 제일 걱정이야. 네가 아빠를 가장 많이 닮았잖아."


아빠가 돌아가신 지 8년이 지났고, 남아있는 모든 가족들은  잘 살아가고 있다. 아빠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서로 굳이 나누지 않는다. 그저 그리워할 뿐이다. 서로에게 상처가 될 이야기는 피해 가는 것이 현명한 삶의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난 아빠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결혼하기 전 우리 가족은 총 5번의 이사를 했고, 6군데 집에서 살았다. 직업 특성상 이사를 많이 다니는 집들도 많았겠지만 우리 가족의 이사는 모두 아빠의 의지와 결단에 의해 갑작스레 결정된 것들이었다.

 

아빠는 시골 고향 농협에서  대출계 부장으로 스스로 만족을 누리며 사셨다.  살던 고향은 언젠가 댐이 되어 수몰지역이 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자신의 고향이 사라지리라는 것을  알고 아빠는 대전에 처음으로 집을 샀더랬다. 고향 집도 아빠가 산 것이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았기에 아빠가 자신의 가족을 이루고 산 첫 번째 집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고향에 살면서도 자신의 집이 대전에 있다는 사실로 그는 실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대전으로 이사 가기 훨씬 전부터도 우리 가족은 종종 대전으로 아빠 차를 타고 와서 그 집을 구경하곤 했다. 언젠가 자신의 고향이 없어진대 해도 내가 갈 곳이 있다는 것은 그에게 큰 안도감을 줬을 것이다.


우리 고향집은  대문을 딛고 넘어 서면 너른 푸른 잔디 마당이 있었다.  대문 옆에큰 감나무가 있었다. 그 감나무 옆으로 잘 가꿔진 화단이 쭉 이어지고 집 안채가 시작되는 곳에서 뒷마당과 연결되는 경계에 꽃사과 나무가 크게 있었다. 그 옆으로 살구나무 있었고, 살구나무 옆으로 장독대를 지나 뒷마당도 있었다. 뒷마당에는 아담했지만 그럴싸한 모양의 포도나무 넝쿨이 보였다. 포도를 키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거나 그 누구도 돌보지 않았기에 포도를 수확한 경험은 많이 없다. 그러나 그 누구 하나  돌보지 않아도 감나무와 꽃사과, 살구나무에서는 매년 과일들이 그득그득 맺혔다.



매년 너무나 자연스레 맺히는 과일들을 보는 것이 어린 나에게는 그저 때마다 먹을 간식거리를 얻는 기쁨 정도였다. 감수성이 유별났던 아빠는 대전 집을 살 때도 비록 작은 마당이었지만 감나무가 있다는 사실이 집을 산 큰 이유였다고 했다. 마당 규모와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감나무였다.


우리 가족 시골을 떠나서 완전히 대전에 정착한 후, 아빠는 주말부부로  시골 직장과 대전을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몇 해 후, 아빠는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며 다니던 농협을 명예퇴직한 후 완전히 시골 고향을 떠났다. 덩달아 우리도 대전 집을 떠나 갑작스레 서울로 이사를 가야 했다.




서울에서 처음 얻은 집은 19층 탑층 아파트였다. 늘 마당이 딸려있는 주택에만 살았던 우리는 처음으로 아파트, 그것도 가장 탑층 아파트에 살게 된 것이다. 어린 우리는 큰 이질감은 느끼지 못했다. 그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게 힘들었을 뿐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어디에 살고 있는지보다 내가 만날 친구들과 학교에 정신이 온통 팔려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아빠는 그 고층에서 점점 쪼그라들고 있었다. 반평생을 농협에서 규칙적인 직장인으로 살던 분이 서울에 와서 자영업자의 삶을 시작했다. 출퇴근 시간도 일정하지 않았고, 식사 시간은 더더욱 대중이 없었다. 낯선 서울 도시 한복판에서 이질감 느껴지는 젊은이들을 상대하는 pc방을 차렸다. 그들이 밤새도록 게임을 해야만 아빠는 돈을 벌었지만 도무지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들이 게임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간간히 라면과 삶은 계란을 팔고 있는 자신은 더더욱 용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동네 이웃들에게 존경 받으며, 너른 마당에서 철마다 과실이 열리고 지는 것을 보던 그곳을, 그 시절을 몹시도 그리워하셨다. 그래서 아빠는 19층 아파트에서 내려와 그 옆동네에 감나무가 있는 주택을 찾아냈다. 현재는 개발이 되어 그곳도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그 당시 그곳은 개발 직전 오래되고 정돈되지 않은 동네였다. 거기에 있었던 그 집 마당에는 고향집과 대전집에 있었던 감나무가 똑같이 자라고 있었지만 어딘가 분명 달랐다. 그 나무는 죽어가고 있었다. 나무 기둥이 아주 어두운 붉은빛을 띠고 있었고, 뻗어나간 가지들은 끝부터 말라가고 있었다. 결국 그곳에 있는 동안 그 나무에서 감이 열리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빠는 마당을 딛고 살면 다시금 이전의 삶의 의지를 회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셨지만 오히려 그의 의지는 죽은 나무처럼 더욱 시들어 갔다.


 당시 여동생이랑 같은 방을 쓰고 있었는데  밤에 자려고 누우면 천장에서 수백 마리의 바퀴벌레들이 파닥거리며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 그 소리를 듣고  둘이서 얼마나 소리를 질러댔는지 모른다. 우리가 쓰는 방 안 쪽에 작은 쪽방이 있었는데 거기를 엄마는 다용도실로 잡동사니들과 철 지난 옷들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그 문을 열면 천장에서 기어 다니는 그 바퀴벌레들이 우루르 쏟아져 나올 것 같아서 우리는 그 문을 절대로 열지 못했다. 그게 진짜 바퀴벌레인지, 쥐인지는 끝까지 확인을 못했다. 몇 개월이 지나자 그 소리에 적응이 됐고, 우리는 밤에 들려주는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래서 그 집에서 이사 나온 후,  동생들은 그곳을 ‘바퀴벌레 집’으로 부르곤 했다. 아빠는 그 집이 ‘감나무 집’으로 불리길 원했지만 그곳은 우리에게 바퀴벌레 집으로 기억될 뿐이었다.  아빠는 볕이 안 드는 서향집에서 그곳의  어둠에 완전히 잠식당했고, 한동안 일어나지 못한 채 ‘죽고 싶다’는 말만 되뇌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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