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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Nov 13. 2023

그리운 고향, 서울

월요일은 그리움이다.


남편은 몇 달 전부터 고향을 방문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지나가는 말로 몇 차례 비슷한 말을 했지만 흘려들었다. 남편은 그 소리를 참 질리지도 않고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었다. 자기 고향을 꼭 가봐야겠다는 말을. 그 말 뒤에는 '당신도 함께 가볼래?'란 권유가 생략되어 있음을 알았지만, 짐짓 모른 척하며 대꾸하지 않았다.


그가 고향을 가보겠다는 말이 실상 우스웠다. 그의 고향은 서울이다. 서울 강동구 천호동.


우리가 아무리 서울에 살다가 밀려서 경기도 남단에 살고 있을지언정 서울까지 광역버스를 타면 어디든 1시간 남짓이면 도착한다. 그런데 그의 말에는 마치 고향이 평소 갈 수 없는 먼 곳이라 아주 큰 다짐을 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처럼 말했으니 어이없고 우스울 수밖에 없었다. 서울을 고향이라 칭하는 것 자체가 가소로웠다.  물론 그 앞에서 그런 티를 낼 수 없었으나 괜스레 얄미웠다. 진짜 나의 고향은 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내 고향 전라북도 용담면 수천리는 오래전에 물속에 잠겨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런 내 앞에서 고향을 가고 싶다 하질 않나, 오래도록 가보질 못해서 어찌 변했나 궁금하다고 하니 실소가 나왔던 것이다.



주말에 가도 충분할 것을 그는 굳이 평일에 연차를 내서 방문하겠다고 했다. 부러 월요일을 택한 것 같았다. 주말에 이어서 쉬는 월요일이라 좋고, 서울의 복잡스러움이 덜할 것 같아서 좋고. 그는 마치 소풍날 놀이공원에 가는 것이 확정된 것처럼 설레는 티를 감추지 못했고,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출발하기 직전까지 함께 가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나에게는 월요일의 루틴이 있기에 홀로 여유롭게 다녀오라고 했다. 내가 가봐야 서울 천호동의 복잡한 서울 옛 구심으로 느끼는 게 전부일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결혼하고 얼마 있지 않아 남편이 자신이 다닌 초등학교를 보여주겠다고 함께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나의 온 세상이 남편과 그를 둘러싼 세계로 꽉 차있었으니 그가 다닌 초등학교를 가는 것은 꽤 의미 있었다. 당시 신혼집은 송파구 문정동이었고, 시댁은 강동구 성내동이었으니 천호동은 지척이었다. 매번 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도 지나가는 동네였기에 처음 가는 천호동도 낯설지 않았다. 시댁 어른들이 살고 있던 성내동과 다를 바가 내 눈에는 크게 없었다. 그럼에도 남편은 자신이 어릴 적 살았던 집과 골목을 소개하고 학교 운동장에 들어가서는 벅차오르는 감동을 자신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다는 듯이 어리둥절한 표정과  "이게 이렇게 작았네..." 하는 말로 갈음했다. 그게 벌써 10년이 넘었으니, 그의 고향 방문이 다시 이루어질 시기가 될 법했다.


고향은 장소적 의미보단 기억 속에 있는 공간을 복기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렇기에 과거에 그곳에 살아본 적이 없는 이가 그곳에 가본다 한들 절대로 고향을 기억하는 이의 감상에 닿지 못한다. 당시 그곳에 살았을 때는  그저 날마다 지지고 볶고를 반복하는 평범한 일상이었을 텐데 지나온 자리에는 그리움과 애잔한 추억만 쌓여있다. 그 자리에 가서 그것을 어루만져 주고, 부옇게 쌓인 먼지를 털어주는 것으로도 고단한 현재의 삶에 큰 위로가 될 것이다. 그곳에서 살았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비교해 보며 지금껏 열심히 살아왔다고 토닥이는 시간이 돼주면서. "이때가 참 좋았는데...."라는 말과 "와, 여기가 이렇게 변했네"라는 말들로 권태로운 오늘의 일상에 변주를 만들면서.



이른 아침에 떠나 고향을 방문한 남편은 밤늦게서야 돌아왔다. 온종일 무엇을 했냐고 물으니 그저 걷고 또 걸었다고 했다. 그리 크지도 않은 동네 어디를 그리 걸었냐고 했더니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단다. 다행히 천호동은 크게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복잡한 구도심이고 옹기종기 서민들이 모여 사는 동네이기에 재개발이 쉽지 않은 탓이다.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뻗어있는 동네 길을 걷고 또 걷다 보니 시간이 한참이나 흘렀다고. 직접 가보니 희미했던 추억이 또렷하게 살아나면서  구석 어딘가에 꼬깃하게 접혀있던 토막 기억들마저 모조리 소환이 된 것이 감격스러웠던 것 같다.


남편의 때아닌 고향 타령은 요즘 복잡한 심정과 맞닿아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부터 한 번도 쉬지 않고 일해온 사람이다. 결혼도 일찍 했고, 아이도 바로 낳았으니 성실하게 주어진 자리에서 묵묵히 책임을 다했던 남자가 요즘 회사일에 지친 모양이었다. 어느 정도 상급자 위치에 올라서 편하기는 했으나 앞으로 또 이십 년 가까운 시간을 이 회사에 다닐 수 있을지, 다니는 게 맞는지 등 여러고민을 짬짬이 토로하곤 했다. 때로는 막막하고, 때로는 지겹고, 때로는 아찔하고, 때로는 근원을 알 수 없는 그리움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마음이 가지런해지지 않을 때는 보기만 해도 후련해지고 따스해지는 그 무엇을 찾기 마련이다. 그것을 찾아 그는 정처 없이 걷고 또 걸은 모양이다.


뉴스를 틀면 날마다 새로운 이슈가 쏟아진다. 이토록 다양한 사건 사고가 날마다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세계 여러 곳에서는 끊이지 않고 전쟁의 참상이 벌어진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뉴스들이 쏟아지고 자극적인 헤드라인에 붙들려 한참을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미궁에 빠져있기도 한다. 내 주변의 산적한 문제들을 벗어나 더 큰 문제들을 마주해 잠시 그것에 빠져보지만 그러고 나면 마음이 더 산란해지고 어지럽다. 이 어지러운 세상을 벗어나 조용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주말이 지니고 새로운 월요일이 찾아온다. 속세를 떠나기는커녕 다시 생활의 최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월요일.


우리 모두에게는 고향이 필요하다. 마음의 정처를 잃어 허둥대는 이들에게 쉴 곳이 필요하다. 나처럼 장소가 사라져 갈 수 없는 고향을 품고 살고 있는 이들도 많겠지만 고향은 언제나 그리운 이름이다.  너른 품으로 안아주고  따스한 온기로 냉한한 마음을 녹여주는  그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 무언가가 간절히 그리워지는 월요일, 쏜살같이 지나온 휴일이 그립고, 오래도록 만나지 못한 그 누군가가 보고 싶고, 가지 못하는 그곳이 애달프기도 한다. 모두가 그리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어려운 상대에게도 한 뼘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텐데. 서로가 서로에게 고향 같은 존재가 돼주면 좋겠다.


그저 하루 고향 방문으로 남편의 고적한 마음에 평온이 깃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남편에게 서울 고향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무렴, 서울도 고향이 될 수 있지.


나도 고향이 그리워지는 월요일이다.




남편이 보내준 그의 고향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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