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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Nov 20. 2023

가능성을 알아봐 주는 것

월요일은 기다림이다.


요즘 월요일이면 마음이 급해진다.

긴긴 방학을 끝내고 다음날 개학하는 날을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과 같으려나.


화요일에 서울까지 동화 쓰기를 배우러 가고 있다. 배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매주 묵직한 과제를 한가득 안고 온다. 다음 주 수업까지 동화 한 편을 완성하는 식인데, 창작 글쓰기를 처음 해보는 나로서는 매주 과제 때문에 끙끙거린다.


그럼에도 화요일이 기다려진다. 과제는 잘 써지지 않고, 선생님과 글벗들에게 보이기에 조악한 글이 부끄럽지만, 그들과의 만남이 기대된다. 개학 날까지 밀린 숙제를 끝내기는 싫지만, 방학이 끝나고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는 아이의 심정과 비슷하지 싶다.



화요일에 만나는 글벗들은 참 다양한 이들이 모였다. 나이도 제각각이고(나와 스무 살 이상 차이나는 분도 있다), 직업도 다양하다. 치과 의사이고 약사이면서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서 온 분들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전문직을 갖고 있으면 더 이상 진로 고민은 안 할 것 같은데 이제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왔다는 고백에 나의 공고한 편견을 깨기도 했다.


자기답게 존재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말할 수 없이 큰 기쁨이 있다. 가면을 쓰지 않고 가장 자기다운 시간을 찾아온 이들과의 대화는 진지하지만 퍽 유쾌하다. 나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각자의 삶의 고뇌는 무겁지만, 그저 길목에서 마주한 길고양이를 대하듯 무심히 말하며 툴툴 털어버리는 이들의 관록을 배운다. 요즘 나를 움츠러들게 하는 문제가 사라지지 않지만, 이들과 함께 나눌 때만큼은 그것이 나를 짓누르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고민을 품고 있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된다. 다음 주에는 또 무슨 글감을 캐서 동화 한 편을 완성할 수 있을지 시름 가득하다. 그럼에도 다들 즐거워 보인다. 고민 중에는 즐겁고 행복한 고민도 있는 법이다.


평범한 아이들의 욕구가 무엇일지 고민하고, 떠오른 캐릭터의 결핍을 무엇으로 만들지, 그와 딱 어울리는 배경은 어떻게 펼쳐낼지, 모두를 집중시킬 멋진 사건은 또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한다. 한참 지나 기억이 가뭇한 자신의 어렸을 때 일을 추억해 보는 것도 큰 기쁨이다. 동화 독자의 연령을 키우고 있는 아이 엄마들에게 육아 이야기를 묻고, 아이들 처지에서 마음을 헤아리고 고민을 해결해 보고자 함께 머리를 맞대다 보면 은근슬쩍 나의 육아 고민이 해소되기도 한다.


꿈을 품은 이들에게는 가능성의 씨앗이 심겨있다. 스스로 그것을 발견하기 쉽지 않아 좌절할 때가 많지만, 함께 꿈을 꾸는 이들은 서로 그 가능성을 알아보고 감탄해 준다. 서로의 씨앗을 알아보고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매주 쓴 숙제는 미리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다. 자기 글만 쓰는 것이 아니라 글벗들의 과제를 미리 인쇄해서 꼼꼼히 읽어보고 합평하는 것도 숙제의 중요한 일부다. 각자가 품고 있던 주인공과 배경, 사건이 합쳐져서 한 편의 이야기로 막 지어진 작품은 따끈하다 못해 후끈하다. 진정 씨앗이 심겨져 한 주 만에 이토록 꽉 찬 열매를 맺게 했다는 것에 서로들 감동한다. 때로는 매서운 바람처럼 날카로운 평으로 서로의 뿌리를 단단하게 해준다.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속도와 그만의 글쓰기 감성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서로의 글을 읽고 평하면서 배운다.



첫 시간에 선생님께 들었던 말이 잊히질 않는다. 작가는 1등급부터 3등급 작가로 나뉜다고. 3등급 작가는 쉬운 걸 어렵게 쓰는 작가, 2등급 작가는 어려운 걸 어렵게 쓰는 작가, 1등급 작가는 어려운 걸 쉽게 쓰는 작가란다. 동화는 어린이들이 주된 독자이기에 더더욱 쉬운 글로 표현하는 것이 큰 과제이다. 그러나 1등급 작가란 것이 단순히 쉽게 쓰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글쓰기가 자기만족에서 그치지 않고, 타인을 위해 존재해야함을 기억하라는 의미로 와닿았다. 자기 중심주의 혹은 자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과 접속할 수 있는 마음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깊은  뜻이 있지 않을까 싶다.


함께하는 모든 글벗들이 소중하지만 반갑게도 내가 사는 지역과 가까운 곳에 살아서 오가며 더 자주 보는 분이 있다. 우리는 모두 필명으로 서로를 부른다. 그분의 필명은 당신과 꼭 어울리게 '미소'님이다. 미소님은 몇 해 전에 돌연 찾아온 죽음의 위기에서 겨우 벗어날 만큼 크게 아팠다.


오랫동안 병상에서 앓는 동안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볼 귀한 기회를 얻었다고 고백하셨다. 그때 자신이 다시 살 수 있다면 무엇을 해야할까를 고민했고, 신앙이 있던지라 하나님께 참 많이 묻고 기도했단다. 오랜 시간이 지나 비소로 답을 얻은 것이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일, 바로 글을 써보는 것이었다. 글을 써서 누군가의 마음에 따스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유쾌한 기운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으로 글쓰기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미소님의 글은 참 따숩다. 그리고 글만큼 미소와 함께 주고받는 말들도 그러하다. 나보다 한참이나 인생 선배이자 많은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자기 경험으로 남을 판단하거나 함부로 조언하지 않는다. 귀 기울여 들어주고, 상대의 말에 깊이 고민하고 또 생각한 후에 조심스레 답을 건넨다. 무엇보다 글벗들 안에 심겨진 씨앗이 얼마나 귀중한지, 그리고 각자의 모양대로 피울 근사한 열매를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격려한다.


이런저런 문제들로 마음이 스산하고 복잡한 요즘이다. 그럼에도 기다림이 있는 월요일이다. 누군가의 가능성을 알아봐 주는 이들과의 만남은 추워지는 이 계절에 봄바람을 만난 것처럼 설레는 일이다.


나도 소망한다. 누군가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옆에서 함께 기대하며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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