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리 Nov 27. 2023

캠핑장의 온도

월요일은 안부묻기다.

지난 주말 이야기다.


기습적으로 찾아온 맹추위에 예상치 못한 첫눈이 내렸고,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다. 유독 좋아하는 계절이 점점 더 짧아져 서러움이 몰아치던 날, 우리는 캠핑을 떠났다. 그 날씨에 캠핑을 갔다고 하면 소위 베테랑 캠퍼로 여겨질 법도 하지만 우리는 초보도 완전 쌩초보 캠퍼다. 이번 캠핑이 고작 두 번째였던 초짜.


아주 오래전부터 캠핑은 유행하고 있었고, 주변에서도 많은 가족들이 캠핑을 떠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에 마음이 동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아주 머나먼 이야기로 들려올 뿐이었다. 주변에 캠핑에 푹 빠져 있는 이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가보면 안다고, 얼마나 좋은지. 그때도 나는 온 마음으로 방어했다. 나에게는 좋을 리가 없다고.


그들이 좋다고 하는 이유가 야외에서 먹는 맛난 음식이 있고, 마음 편히 술을 먹으며 밤에는 불멍으로 모든 근심을 잊곤 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도 그것이 어째서 좋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란 사람은 본디 끼니마다 음식을 챙겨 먹는 것이 힘들고, 술은 먹지도 않을뿐더러 불멍을 하면서 근심을 잊는 방법 이외에도 편하게 쉴 방법이 수백 가지도 더 떠올랐다. 더구나 그 좋은 것을 누리기 위해 준비 과정은 얼마나 고단할지 자세히 듣지 않아도 파노라마로 쫙 펼쳐졌다. 장을 보고 준비할 음식 재료들, 가서 씻고 먹은 후에 해야 하는 설거지, 텐트를 치고 접는 것, 불멍을 위해 준비할 준비물과 그 이후 정리할 것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무엇보다 5성급 호텔에 가도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와 남편에게 텐트 안에서의 취침이라니. 부러 고생길을 자처하는 미션이 아니라면 조금도 마음이 동할 이유가 없었다. 다행히 나보다 조금 더 예민하고 깔끔한 남편이 캠핑에 관해선 철벽 방어를 치고 있었다. 캠핑족 아내들이 강조하는 것이 캠핑은 남편이 좋아서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들 했다. 어쩔 수 없이 야외에서 힘을 쓰는 일이 많기에 남자의 역할이 많을 수밖에 없단 것이다.


그랬던 우리가 캠핑을 시작했다. 큰애가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데. 보통은 이 시기가 되면 열심히 다니던 캠퍼들도 슬슬 캠핑을 접는다고 하는 이때.



결정적인 이유는 남편의 마음이 변한 것이다.


남편이 마음을 바꾸게 된 것은 아이 학교에서 둘째와 단둘이 떠났던 '아빠와의 캠핑' 행사 때문이었다. 그런 이벤트가 아니었다면 둘째와 단둘만의 캠핑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두 아이가 올해부터 대안 학교를 다니고 있다. 공립학교와 비교하자면 나열할 것이 끝도 없지만, 아이들 입장에서 가장 좋은 것은 여행 수업이 참 많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3학년은 아빠와 단 둘이 하는 캠핑이 있었는데, 무거운 부담감을 한 아름 지고 떠난 남편은 다녀오더니 "우리도 캠핑해 보는 거 어때?"라고 먼저 제안했다.


"생각보다 훨씬 좋더라고! 밤에 야외에서 별을 보는 것도 좋고, 잠자는 것도 불편할 줄 알았는데 낮에 고생을 해서 그런지 푹 잘 잤어. 무엇보다 희서가 너무 좋아하니까 그게 좋더라."


"우리도 캠핑 시작해 볼까?"


"진짜로? 진심이야?"


남편의 마음이 캠핑으로 급 직진했다. 그는 벌써 저만치 앞서서 캠핑에 필요한 품목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와 한번 캠핑을 가보니 필요한 것이 뭔지도 보였고, 오히려 생각보다 단출하게 캠핑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단다. 그러면서 자기가 혼자 다 준비할 테니 해보자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몇 주간 당근에서 중고 물품으로 알차게 캠핑용품을 사 모았다.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마. 내가 다 준비하고 알아볼게. 애들 더 크기 전에 해보자!"


그렇게 우리는 캠핑을 시작했고, 우리끼리 떠났던 첫 캠핑은 제법 성공적이었다.



더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한 번 더 가보자고 했는데 하필 이른 겨울이 온 것이다. 일기 예보를 듣고는 취소하려고 했지만 이번 캠핑은 일행이 있었다. 우리보다 조금 더 일찍 캠핑을 시작하고 적극적으로 캠핑을 권유했던 지인 부부와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걱정 마, 이 정도 날씨는 괜찮아. 같이 가보자!"


벌벌 떨며 걱정하는 우리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호기롭게 말해주는 언니네 부부를 믿고 가기로 했다. 사실 떠날 때 내리는 눈과 매서운 추위가 너무 무서웠다. 남편에게 우리는 무리하지 말고 당일에 놀다가 바로 집으로 오자는 소리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고작 전기장판과 부실한 라디에이터 하나만을 들고 가기에는 자다가 입 돌아가는 사태를 맞이할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예정했던 2박 3일을 꽉 채워서 보내고 아쉬움을 안고 돌아왔다.


캠핑장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추웠다. 그럼에도 우리는 밤새 더워서 뒤척였고, 옆에서 자고 있던 둘째는 어느새 침낭에서 튀어나와 웃옷까지 벗은 채 자고 있었다.


밤새 따숩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은 함께 갔던 이들의 세밀한 보살핌 덕분이었다. 두려워하는 초보 캠핑러를 위해 난로를 빌려주고, 잠들기 전까지 텐트 온도를 살펴주며 지극정성으로 맛난 음식을 대접해 줬다. 함께 간 아이들이 내내 깔깔거리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가는 것을 보는 것은 무엇보다 큰 감동이었다.


늘 머물던 장소를 떠나 낯선 곳에 가면 사람들과 함께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교회에서 만나 오랫동안 깊은 교제를 나누던 이들이지만, 캠핑장에 앉아 고요히 서로의 이야기를 귀 기울이는 경험은 서로를 더 단단히 이어줬다. 마음을 열고 서로의 말에 깊이 녹아들며 살아온 인생의 곡절에 놀라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일상의 자리를 떠나고 싶은 것은 이런 감동을 맛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나만의 이야기에 함몰되지 않고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고 연결되어 더 큰 세계로 뻗어가기 위해서 말이다.


다음날도 추위는 캠핑장과 바로 이어진 산바람을 타고 더 매서웠다. 밤새 옆 텐트에서 들려온 아이 울음과 스산하게 불던 바람 소리에 비록 잠을 설쳤지만 마음은 가뿐했다.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고 함께해 주는 이들이  옆에 있었기에. 밤새 잘 잤냐는 언니의 질문에 절로 "그럼요..."가 나왔다.


새롭게 시작하는 월요일, 누군가의 안부를 걱정하고 물어봐 주는 것은 어떨까. 내 이야기 말고,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여유로 시작하는 넉넉한 월요일이기를.



캠핑장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