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은 충전하다.
책을 읽다 보면 무릎을 치고 엉덩이가 들썩여질 때가 있다. 책이 좋아서도 있지만, 나도 이런 책을 쓰고 싶다는 부러움 가득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권남희 작가의 <스타벅스 일기>를 읽을 때 그랬다.
혼자 박장대소하면서 이렇게나 재미있는 산문집을 읽을 수 있다는 행복감이 밀려들면서도 나도 이러한 행복함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는 간절함과 부러움이 일시에 들게 하는 책이었다.
그럴 때는 따라 해본다.
나도 진짜 그런 글을 쓸 수 있는지.
보통은 냅다 꼬리를 내리며 나의 실력과 현실을 파악하는 수준이지만, 그러면 또 어떠랴. 한번 해보는 거지.
<나의 스타벅스 일기>
토요일 오전, 셋은 마음껏 늦잠을 자도록 허락하고 나는 서둘러 백팩을 짊어지고 스타벅스로 나온다.
보통 글을 쓸 때, 오천 원 아메리카노 한 잔이면 충분하지만, 토요일에는 사치를 하나 더 부린다.
에그에그 샌드위치를 하다 더 주문한다. 샌드 위치 중에 가장 저렴하지만 좋아하는 에그샐러드가 가득 들어있고, 포만감도 좋다.
주로 가는 스타벅스는 아이들 학교 바로 옆에 있는 곳이지만, 토요일에는 집 앞 스타벅스로 나온다.
토요일만 오는데도 늘 앉는 스터디존에 자리 잡은 이들이 비슷하다. 단기에 끝나지 않는 공부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저씨, 교복처럼 검은 트레이닝복을 세트로 입고 부지런히 노트북에 손을 놀리는 대학생, 그리고 늘 아빠와 함께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는 중학생 여학생이 있다. 노트북 배터리 충전을 위해 앉을 수 있는 스터디존은 한정적이라 비슷한 목적을 지닌 이들과 한 테이블을 쓰는 것은 편하고 좋다. 부지런한 그들 사이에 자리 잡고 앉으면 한껏 의욕에 들뜬다.
스타벅스에서 글을 쓰면 놀라운 집중력이 발휘된다. 참 신기하지, 공간이 주는 에너지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토요일 오전에는 다음 주 화요일 동화 쓰기 숙제를 반드시 마쳐야 한다는 부담감에 절로 집중력 업이다. 주일에는 온종일 교회에 있기에 시간이 없다. 월요일은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로 약속한 날이고, 하루 전에 숙제하는 것은 집중력은 높아질지 모르지만 완성도는 빈약하기 그지없음을 경험으로 안다. 토요일 오전이 최적이다.
몇 시간을 손가락 끝에 달린 뇌가 풀가동되면서 열심히 달렸다. 어깨와 눈이 뻐근해 올 때쯤 주변 풍경을 돌아본다. 대각선 앞에서 수학 문제집을 열심히 풀고 있는 중학생 딸에게 아빠가 말을 건다. 마침 이어폰을 빼고 자세를 곧추세우는 동안 들려온 소리다.
"너 이거 이해했어? 이건 왜 0으로 수렴하는데?"
음, 수학 이야기는 건너편에서 들어도 머리 아프다.
딸은 분명 문제없이 잘 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빠가 괜스레 트집 잡는 것 같다. 그래도 아빠의 기습적인 질문이 익숙한지 딸은 종알종알 뭐라고 응수한다. 딸의 대답이 마뜩잖았는지 아빠는 추가로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우리 집 아빠와 딸과 오버랩된다.
큰아이가 4학년 때 수학문제를 풀다 어려워서 아빠에게 질문을 했다. 방에서 아빠 설명을 한참 듣던 딸이 울음을 터뜨렸다. 어지간해서는 그 아이의 울음을 보기 힘든데 깜짝 놀라 달려가서 이유를 물었더니
"아빠가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왜 방정식을 알려줘? 나 그런 거 배운 적 없는데...."
이러면서 울고 있었다.
남편 말로는 4학년 수학이지만 방정식으로 풀면 금방 해결되는 거라 알려줬단다. 아이고, 이 사람아. 4학년 수학을 아이가 설명할 수 있게 설명해 주는 것이 진짜 실력이거늘. 그 뒤로 얼마 안 있어 큰 아이가 생애 최초 수학학원을 갔었는데 첫날 다녀와서 했던 말이 잊히질 않는다.
"와, 엄마, 학원 선생님 설명은 귀에 쏙쏙 들어와. 어려운 문제도 엄청 쉽게 설명해 줘...."
역시 전문가는 다르다 싶었다.
내 앞에 있는 아이도 수학은 전문가 선생님을 찾아가면 편하겠지만 각자 다 사연이 있겠지.
우리 집 아이도 그 좋다던 수학학원을 이제 안 다니고 혼자 낑낑대면서 공부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빠가 저렇게 꼰대처럼 설명해 줘도 싫다는 내색 없이 함께 카페에서 공부하고 있으니 얼마나 이쁘던지.
그러다 잠시 후, 그 이쁜 중학생(진짜로 외모까지 이쁘다는 설명을 못했네)과 똑 닮은 미니미 두 명이 들어왔다. 조금 더 큰 미니미와 완전 꼬맹이 미니미였다. 중학생 딸에게는 남동생 둘이 있었던 것이다. 막내는 이제 막 5살쯤 돼 보이고, 둘째는 3학년쯤 돼 보였다.
이쯤 되면 왜 아빠를 따라 토요일 아침에 스타벅스에 나왔는지 이해된다. 두 남동생과 토요일 아침을 시달리느니 카페에서 아빠에게 시달리는 게 그나마 나은 선택이었겠지.
아빠 말도 귀담아 잘 듣더니, 두 동생의 "음료수 먹고 싶어 누나" 소리에 또 얼마나 예쁘게 반응하던지.
진짜 다 컸네.
집에서 귀찮게 구는 세 명 피해 도망온 이 아줌마보다 네가 어른이다.
지난 토요일 스타벅스 풍경이었다.
그날 <스타벅스 일기>를 읽고 중학생 아이를 보며 기록했던 것이다.
월요일에 다시 열어 그날을 복기해 본다.
월요일에 오는 스타벅스는 토요일에 갔던 곳과 다르다. 혼자 앉아서 할 수 있는 키다리 책상 스터디존에 앉아 있다. 주변을 관찰하기 어렵지만 토요일에 봤던 풍경을 배경 삼아 글을 써본다.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기는 역시 부러움인가 보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 아니라, 부러우면 따라 해보면 된다. 권남희 작가님의 <스타벅스 일기>가 배 아프게 부러워서 그분처럼 나의 스타벅스 일기를 작성해 본다.
좋아하는 누군가를 롤모델 삼아 따라 시작해 보는 월요일도 나쁘지 않으니까! 그렇게 청출어람을 꿈꿔보는 것이지 뭐.
그날을 위해 이번 월요일은 스타벅스 기프트 카드를 충전한다. 요즘 내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일.
이렇게 오늘도 월요 풍경을 마무리합니다.
이 글을 읽어주는 모두의 한 주가 좋아하는 그 무엇으로 가득 충전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