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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Dec 04. 2023

오늘은 어떤 옷을 입을까

월요일은 나다움이다.

기억이 존재하는 한, 아주 어릴 적  소녀였던  그 시절부터 예쁜 옷을 좋아했다.


한 시간 간격으로 읍내에 나가는 버스가 있던 두메산골에 살았음에도 예쁜 옷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다. 두 딸을 키워보니 취향과 감각은 본디 타고난 천성의 영역임을 느낀다. 자신의 패션 취향이 확실한 둘째와 사춘기에 돌입했음에도 옷만큼은 그저 엄마가 골라주는 대로 입는 무심한 첫째의 극적인 거리는 앞으로도 평행선일 듯하다. 심미안은 후천적으로 길러질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에 관심을 두게 되는 것은 어느 정도 타고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오래된 앨범 속에 7살도 채 안 된 아이는 엄마의 빨간 립스틱을 곱게 바르고 진녹색 원피스를 입고는  뾰족구두 위에서 한껏 포즈를 잡고 있다. 엄마의 화장대를 뒤지는 것도, 엄마의 하이힐을 신는 것도 어색하지 않고 너무도 당연했던 나의 어린 시절 한 페이지다. 딸의 감각을 존중했던 엄마는 한술 더 떠서 당신의 맏딸에게 고가의 브랜드 옷을 백화점에서 철마다 사다 주셨다.  우리 집이 가장 풍족했던 그 시절, 고작 20명 남짓 되는 한 반이 전부였던 작은 시골 학교에서 자기 딸이 최고로 돋보이길 바랐을 것이고 딸은 그 기대에 기꺼이 응하며 날마다 무엇을 입을지를 고민하며 취향을 마음껏 뽐내곤 했다. 그 뒤로 도시로 이사를 오고 서울에 정착해 살면서 가세는 계속 기울었지만, 나의 옷 욕심은 그것과 반비례하며 가파르게 올라갔다.



패션에 관한 관심이 정점에 오르고, 그 관심에 기꺼이 따라 입고 싶은 옷을 마음껏 입을 수 있는 자유까지 정확히 맞아떨어지던 시기는 역시 대학 시절이다. 여대를 다녔던지라 누구보다 예쁜 옷을 입고 싶은 갈망이 불타올라 무엇을 먹을까란 생각보단 ‘무엇을 입을까’란 생각이 온통 나를 사로잡았던 때이기도 하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명품'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진정 순진하게 '예쁜'옷을 좋아했을 뿐, 자본주의로 철저하게 계급화되어 나뉜 패션 사업에 관해서는 무지했다. 친구들과 동대문이나 명동에 가서 엄마에게 문제집 산다고 거짓말로 받은 몇 만 원으로 살 수 있는 옷을 사려고 보세 상점 골목에서 발품을 팔았던 내가 명품의 세계를 몰랐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대학 OT에서 만났던 친구를 캠퍼스에서 처음 만난 날이 기억난다. 그 친구는 OT에서도 유독 자신이 사는 동네를 강조하며 말하곤 했다.


"나는 청담동에 살아. 청담동."


애석하게도 당시 내 머릿속에 서울 동네 구분은 그저 내가 사는 대방동과 고등학교가 있던 봉천동, 그리고 친구들과 종종 놀러 가는 명동과 종로, 압구정동이 전부였다. 물론 압구정동에 부자들이 살고 있다는 정도야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나와 완전히 무관한 정보였다. 당연히 청담동에 대한 또렷한 이미지가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 그 친구가 '청담동'에 방점을 찍으며 말할 때 그 의도를 알아채고 놀란 척하며 부러운 기색을 보였어야 했지만 나는 미처 그러지 못했다. 친구는 내 반응이 답답했던지 자신이 매고 있는 가방을 엄마가 입학 선물이라고 사줬다면서 보여줬다. 진정 무지했던 나는 당시 구찌와 루이비통도 알지 못했다.


그 친구가 산다는 청담동과 들고 다녔던 명품 가방의 실체를 알고, 친구의 노골적인 자랑이 꼴사나웠던 나는 그것을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에서 말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늘 어울려 다니던 친구 하나가 어이없어하면서 대꾸했다.


"야, 내가 우리 언니가 루이비통 매장에서 매니저 한다고 맨날 말했잖아. 그때 명품 얘기 해줬는데 기억 안 나? 여태 루이비통이 명품인지도 몰랐단 말이야?!"


그렇다. 친구의 언니가 명품 매장에서 일한다고 몇몇 에피소드를 말해주곤 했었는데 난 그 이야기와 명품을 제대로 연결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로도 난 딱히 명품과 청담동의 세계를 동경하지 않았다. 그것은 동화 속 판타지 세계를 동경하는 것만큼 어리석다고 생각한 신념이었는지, TV에 가끔 등장하는 재벌들의 세계처럼 나의 세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으로 여겨져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다. 당시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와 내가 살아갈 세계를 구축하는 것으로도 버거웠으니까.


물론 지금은 명품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고, 청담동이 나와 얼마나 동떨어진 동네인지도 알고 있다. 이전과 달라진 것은 이제는 아주 가끔씩, 이것들과 나의 현실을 견주며 비탄에 빠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비교의식에 휩싸이게 하는 것은 멀지 않게 느껴지는 SNS를 볼 때, 혹은 모임에 나가서 보게 된 누군가의 고급스러운 가방과 우아한 옷차림에서 밀려오는 것이다.


명품을 알지 못했을 때도, 명품을 알고 있는 현재도 나에게 늘 밀려오는 강력한 유혹은 나의 존재를 분명하게 증명하고 싶다는 것이다.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소유한 그 무엇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명품이나 비싼 동네에 산다는 것이 가장 극적인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명품을 갖고 싶다는 가장 강렬한 유혹이 밀려올 때는 나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그 무엇도 없다는 무력감이 가장 강력할 때다.




글을 쓰면서부터는 '나'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여유가 생긴다. 여전히  타인과 비교하고 나의 세상보다 화려한 그곳을 동경할 때도 있지만 이제는 거리 두기를 할 수 있는 내공이 조금은 쌓인 것일까. 그 여백에 타인을 향한 관심과 사랑으로 채워지길 기도한다.



엄마가 되고 살림을 꾸리는 주부로서 자연스레 옷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게 된다. 여전히 예쁜 옷을 좋아하고 나를 가꾸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그것으로만 나를 증명할 수 있다는 마음은 내려놓으려 애쓴다.


 그럼에도 오늘은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는 그 시간은 필요하다. 이제는 많은 옷을 갖고 있지 않지만 고심하며 남겨둔 옷 중에서 가장 나답게 해주는 옷을 골라 이리저리 매치해 보는 것은 또 하나의 기쁨이다.


월요일이 되면 가장 편한 트레이닝복에 좋아하는 모자를 눌러쓰고 밖으로 나온다. 누군가의 눈에는 후줄근한 아줌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월요일을 시작하게 해주는 가장 나다운 모습이다.


어느덧 올해의 마지막 페이지만 남았다.

12월 첫 월요일, 가장 나다움으로 무장한 하루를 시작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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