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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Nov 06. 2023

비 오는 월요일

월요일은 일어서기다.

어김없이 아이들 등굣길에 함께 나선 월요풍경은 흩날리는 비로 뿌려지고 있다. 어제부터 내린 비가 기세 좋게 쏟아지고 있다. 아침에 몇 번이나 재난 문자가 경고음을 울리며 전송됐다. 괜스레 긴장되는 월요일이다. 창 밖으로 우산을 든 이들은 두 손으로 꽉 부여잡고 있지만, 우산은 힘없이 고꾸라져 제멋대로 바람에 날아가려는 꼴이다. 맑은 월요일을 기대했건만 날씨마저 우중충한 월요일이라니.


주말 내내 마음이 구겨져 있었다. 새로운 월요일의 화창한 풍경에 기대어 구겨진 그것을 펴보고 싶었는데. 마음이 내내 접혀 펼치지 않았던 까닭을 거슬러 올라가면 손해 보기 싫고, 양보하기 싫은 욕심 때문임을 알고 있다. 그저 꽉 부여잡은 손을 펼치면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편해질 것을 알면서도 그리되지 않을 때가 많다. 더 움켜쥐고 놓고 싶지 않은 못된 마음이 더 크다.




엄마에게 과자 하나도 양보하지 않는 둘째를 요즘 자주 혼낸다.  어릴 때는 귀엽다고 그저 오냐오냐 받아주고 욕심부리는 그 모습마저도 예뻐 보였지만 이제 열 살이 접어든 아이를 이대로 방치해 둬서는 안 된다는 날 선 자각이 들었다. 누구는 눈치 빠르게 자기 것 챙기고 남에게 함부로 뺏기지 않는 야무진 성격이라고들 하지만 살다 보니 꼴사납게 욕심부리는 모습만큼 안쓰러운 것도 없다.


아이를 통해 나를 본다.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것은 주고 싶지 않고, 내 취향이 아니고 맛없는 것은 인심 쓰는 척 주는 아이 모습에 실소가 나오지만 나도 저럴 때가 많지 않았는가를 돌아보게 된다. 가장 좋은 것을 주지 못하고 차선으로 가성비 좋은 것을 고르고 골라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인 척 선물로 건네지는 않았는지. 손해 보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사나운 욕심에 단호하게 맞서지 못해 속절없이 무너질 때가 얼마나 많은지.


인간의 본성이 본디 이기적이고 시야가 좁을 수밖에 없다고 합리화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그런 모습을 마주하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특히 아이를 키우면서 그것이 잘못됐다고 혼을 내는 나 자신이 얼마나 허위로 가득 찬 인간인지 더 처절하게 깨닫는다. 여기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기는 한 것인지, 내 욕심에 갇혀 허덕일 때는 좀처럼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한 채 어둠에 잠식당하곤 한다.


주말 내내 그렇게 어둠에 갇혀 지냈다. 누구의 요구에 말로는 그러겠노라 했지만, 기꺼이 주지 못하고 솟구치는 억울함을 스스로 이기지 못하고 홀로 어두운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어디를 향한 원망인지 알 수 없는 거센 억울함이 한없이 밀려왔다. "왜 나만...."이라는 마음은 스스로 더 굳건한 감옥으로 안내한다. 불평하고 비교하고 원망하고 억울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깊은 우울의 감옥.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잘못 인용되면 남의 불행을 보며 '다행히 나는 저 상황이 아니기에...... 감사합니다'로 변질될 수 있다. 감사를 함부로 적용하면 도리어 고통에 빠진 이들을 두 번 죽이는 잔인한 짓을 하는 것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며 함부로 감사를 내뱉지 않으려 주의한다. 그럼에도 우울과 원망의 감옥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 나의 노력과 힘만으로 얻은 것이 아님을 자각하는 것. 살아온 모든 순간마다 도움의 손길과 은총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는 것. 그렇게 감사를 되뇌면 매직이 일어난다. 우중충하고 구겨져 있던 마음에 조금씩 햇살이 비춘다. 좀처럼 메꿀 수 없을 것 같은 결핍과 비교로 생긴 구멍이 조금씩 메워지며 곧 충만함으로 가득 찬다.


하늘에서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월요일, 조금 더 울고 억울해하고 원망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며 이불 속에서 나오고 싶지 않았다. 깊은 어둠의 늪에 허우적대며 상대를 비난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것도 중독처럼 그 힘이 세다. 그러기에 가능하면 빠르게 그곳을 빠져나오는 것이 현명하다.


더 이상 이 어둠의 자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일어날 시간이다. 감사의 매직을 펼칠 월요일이다. 비 오는 월요일, 어둠의 방을 나와 환한 빛으로 충만한 자리로 들어서야겠다. 빗속을 뚫고 당당히 걸어가는 창밖의 사람들을 보며 함께 걸어가리라. 태연하게 걸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도 저마다의 사연을 뚫고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비가 그쳤다. 언제고 비는 또 쏟아질 수 있다. 글을 쓰며 빛의 자리로 들어서겠노라 다짐하지만, 나란 사람은 또 비가 내리면 어둑한 방향으로 움츠려들 수 있다. 깨달은 대로, 다짐한 대로 살아갈 내공이 아직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늘 몸을 일으켜 방향을 바꾸는 의지를 낼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누군가 그랬다. 방향을 바꾸면 보이는 풍경이 다르다고. 비가 그치니 창밖의 풍경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어둠의 자리에서 일어나 밝은 곳으로 나오면 눈이 부실 만큼 더욱 찬란한 하루가 시작되리라 믿는다.


맑은 날도, 흐린 날도, 비 오는 궂은날도 늘 그곳에서 우리를 호위하고 있는 빛이 있음을 잊지 않기를. 이 글을 읽어주는 이들에게 시작될 월요일이 비 온 뒤 선명해진 풍경처럼 새로운 날이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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