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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riaMJ Nov 09. 2017

할머니 이야기

산이에게 

산아, 엄마는 할머니를 외할머니 친할머니라고 나눠서 부르는게 너무 싫어. 그래서 너에게도 한 번도 저 단어를 들려준 적이 없지. 할머니는 그냥 할머니니까. 

오늘 엄마는 광장동 할머니, 그러니까 아빠 엄마 말고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해. 


산이 너처럼 이른둥이들이 입원해 있는 신생아중환자실은 대개 엄마 아빠 말고는 아무리 할머니라도 면회를 안 시켜줘. 한양대병원도 마찬가지였지. 할머니가 너 태어나는 날 복도에서 30초 정도 본 것말고는 매일매일 엄마랑 함께 면회를 다니고도 단 한번도 너를 직접 보지 못한 이유지. 


근데 산아, 할머니가 얼마나 너를 보고 싶어하고 너를 안쓰러워했는지는 니가 더 잘 알지?

114일 하루 두번의 면회, 단 한번도 빼먹지 않고 개근한 엄마 곁엔 언제나 할머니가 있었다는 것 너도 알지..


할머니는 엄마를 포함해 다른 아기들의 엄마 아빠가 들어가고 나면 텅 빈 복도에서 약사여래불을 외우며 너와 엄마를 위해 기도했지. 그렇게 한결같이 니큐 복도를 지키다 보니, 선생님들과도 친해져서 산이 할머니 하면 

모두 알 정도였으니. 


장맛비가 한창이던 날, 빗줄기에 싸대기를 맞아가면 너를 보러 다닐때나 

너무 더워서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으로 샤워를 하던 팔월 어느 날이나 

엄마는 할머니가 함께여서 긴긴 너의 병원생활을 많이는 지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 


근데 그거 알아?

엄마가 할머니한테, 매번 산이한테 전할 말 있어? 하면 할머니는 

"딴 거 없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라고 해라"하시는 거야. 

매번 똑같이. 

그래서 엄마가 농담으로 어째 맨날 똑같냐고, 영혼 없다고... 하면 할머니 왈

"야 아기들한테는 그게 젤루 중요한 거다..."


그래서 엄마가 매일 너한테 잘먹고 잘자고 잘싸라고 했던거야 

근데 산이 네가 집에 와 있는 지금 할머니가 얘기했던 그 세가지보다 더 중요한게 없다는 걸 

비로소 절실히 알겠어. 


그러니까 산아, 너  무럭무럭 잘 자라서 정말로 할머니한테 잘해야 한다. 

엄마가 너를 사랑하는 거는 세상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자신 있지만 

한 번씩은 할머니가 엄마보다 너를 더 사랑하는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어. 

할머니 무릎 아파서 다리에 보호대 끼고 너 안아주고 목욕시켜주고 한다는 걸 네가 알까?

너를 안고 달래주려고 재활의학과에서 물리치료 부지런히 받으신다는 것도 네가 알까?


우리 할머니한테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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