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층과 나이테
운의 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바로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ㅇㅇ라고 대답하는 사람들,
대충대충,뭐든지 대충하며 비스듬히 사는 사람들
신뢰하지 않는다.
솔직히 싫어한다.
지금도 기억나는 초딩5학년 무렵의 일화.
선생님이 과제로 자기에 대해 신문같은걸 만들라고
시켰는데..나는 지면의 일부를 할애해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적었다.
선생님은 "왜 이렇게 싫어하는게 많아? 세상을 좋게보면 좋을텐데"라고 일종의 힐난의 말을 했다.
싫어하는게 많은건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무엇에 불편한지 정확하게 안다는 것이다.라고
그 시절 선생님께 말하면 한 대 맞을까?
그 신문을 보고
우리 딸은 잡지 편집자 하면 잘하겠다라고
더없이 적확하게 얘기해준 그시절 아빠가 그립다.
평생의 하루하루 속 만나고 겪은 것들을 통해
좋고싫음에 대한 각자의 필터가 생긴다.
더 촘촘해지기도 더 느슨해지기도 한다.
분명한건 각자의 필터라는것.
정답이 있는게 아니지만 마냥 참을수만도 없는것
각자의 평생동안 만든 기준들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며 다시 만드는것이 누구와 같이 산다는 걸까. 얼마나 걸릴까? 가능은 할까?
다들 불가능한 과제 속에서 사는걸까
시작부터 조금 틀어진 각도는
갈수록 걷잡을수없이 어긋나고만다.
분노도,실망도 가구위의 먼지처럼 쌓인다.
설렘도,자기효능감도,사랑도 마찬가지.
운동을 하면 이걸 가장 쉽게 체감할수있다.
내가 순간순간 한 선택ㅡ당장은 별거 아닌듯 보이는 선택ㅡ들이 플러스건 마이너스건 쌓이고 쌓인게 바로 내 몸이니까. 나는 운동이 그런 종류의 성실함을 요구하는게 좋다. 왜 비싼돈과 시간을 들여서
운동을 할까를 자문해보았는데, 내가 내 인생을
통제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느끼고 싶어서 그리고 쌓여가는 노력의 흔적을 바로 확인할수 있어서 정도의 답이 생각났다.
죽을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ㅇㅇ엄마나 직업명이 아니라 여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지않겠다는 마음도 물론 있지만.
마음 깊숙한데에 감정들이 많이 퇴적되어 있다.
툭 치면 금세 흙탕물이 인다.
때가 되면 그 퇴적물들을 파내고 개운해지리.
이 순간 당장 각도를 튼다.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내가 만들고 싶은 나이테의 모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