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좋아하는지 왜 싫어하는지 묻지를 마라
아들에게 해준 말이 있다.
정말 사랑하는 건 이유가 없는 거라고.
엄마가 너를 왜 사랑하는지 물었을 때,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는 백만가지 아니
세헤라자데처럼 천일 밤낮으로 얘기할 수 있겠지만 결국 이유는, "그냥" 이 한 마디라고.
사랑하는 건 이유가 없는 거다. 그냥 사랑하는 거다.
네가 세탁기를 그토록 사랑하는 것을 백날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려고 노력해봤자,
아무도 너만큼 세탁기를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걸 다른 사람한테 이해시킬 필요도
이해받을 필요도 없다고.
종종 나와는 너무나 다른 세계관과 미감의 소유자인 아들과 노는 게 힘이 들 때가 있다.
좋아하지도 않는 것들에 둘러싸여 좋아하지 않고 관심 없는 것들에 대해 진정성 있게
이야기 하려다보니 저 바닥까지 내 모든 에너지를 쥐어짜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생각한다. 이해하지 못해도 사랑할 수 있다고.
결국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가르쳐주거나 배워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 속에 운명처럼 새겨진 어떤 별을 따라 가는 것이리라.
종국엔 세상에 딱 한 사람 자기 혼자만이 그 좋아함과 싫어함의 무대에 남겠지만
아직은 어린 아이인 아들의 옆에는 내가 있었야 한다고.
그 옆에서 나는 감독이나 코치가 아니라 관객이 되어야 할까.
이래라 저래라, 이거 해라 저거 하지 마라 간섭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눈을 반짝이며 ‘그래 어디 한번 니 얘기를 해봐, 어디 한 번 니 노래를 불러봐, 니 연기를 마음껏 보여줘’ 라며 응원하는 찐팬처럼.
사람들이 산이 너한테, 너는 왜 그렇게 세탁기를 좋아해? 뭐가 좋아? 다른 것 좀 갖고 놀아보지 그래... 이렇게 참견하고 뭐라고 할 때도 있을지도 몰라. 그럴 때, 아니 나는 이게 좋아. 좋아하는 건 이유가 없어. 그냥 좋아. 너무 좋아 라고 말해주라고, 눈을 용감하게 뜨고 말하라고도 알려주고 있다.
온통 거지 같고 엉망진창이고 쓰레기 같고, 개소리들만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것,
온몸을 던져 온마음을 흠뻑 적시며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건 축복이겠지.
‘개소리에 관하여’라는 희대의 명제목의 책을 보았는데.
정말 요즘은 아무나 아무 말을 하는 개소리 대잔치 같은 요지경 속이다.
품격이나 상식이나 페어플레이 같은 말들을 개소리 취급하며
스스로들이 평균 이하 임을 증명하는 언동들이 넘쳐난다. 눈을 감고만 싶다.
대놓고 수준 낮은 인간들과
교묘하게 자신의 게으름을 다른 이를 깎아내리는 것으로 가리는 얕은 수작의 인간들과
월급루팡들과 낮술 턱스크족들과 기타 등등들.
온통 거지 같은 것들 속에서 어제 나는
등운동 루틴 중에 처음으로 원암덤벨로우 15kg을 스트랩 없이 10개를 들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라디오에선 내 사연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DJ의 목소리를 타고 소개됐다.
거지 같은 인간들과 거지 같은 말들과 거지 같은 기분들 속에서
단 하나 그냥 좋아하는 것들을 하는 순간들이 나와 그대들에게 있기를.
개소리는 피하고 때로는 싫어하는 이들을 욕하며 산들 뭐 어떻겠냐.
그러니까 세탁기를 엄마와 동급으로 사랑하는 아들도 그래 이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