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와 장미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꽃이야.
산이랑 요즘 자주 듣는 노래, ‘모두가 꽃이야’ 노랫말이다.
산이는 ‘꽃이야’라는 부분에 맞춰서 두 손으로 꽃받침을 만들며 턱 밑에 갖다대곤 한다.
그런 거 안 해도, 일부러 예쁜 표정 안 해도, ‘너는 있는 그대로 꽃이라’고 얘기해줘도 재미있는 모양이다.
꽃도 좋아하고, 나무는 더 좋아해서 잘 기르고 싶은데 똥손이라, 이사 오면서 샀던 많은 화분들을 먼저 보내고 집에는 야레카야자나무랑 보스턴고사리 정도만이 살아남았는데, 야자나무에서 새순이 두 대나 쑥쑥 돋아서 기뻐하는 요즘이다. 고사리는 처음에 살 때 그 풍성한 모양새가 되게 까다롭고 기르기 어려운 아이처럼 보였는데 웬걸, 너무도 수더분하게 잘 살아내주고 있어 고맙다. 나무보단 아무래도 절화 종류들이 오래 가지는 않아도 관상하기에 쉬워서 자주 사다가 집에 꽂아두는데 꽃을 사는 날이면 인생이 조금 행복해진다.
내가 세상 그 어떤 선물보다 꽃 선물을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우리 엄마뿐이다. 엄마 덕분에 꽃을 좋아하게 되고 많은 꽃의 이름들을 알게 되어서일까, 아니면 같은 여자라서일까. 우리 모녀는 서로의 생일에 꽃을 보낸다. 엄마 생일은 늘 목련꽃과 함께 온다.
산이는 내가 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주 분명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장난감에 꽃 비스무리한 모양이 있으면 ‘이거 예뻐서 엄마 주는거야’하면서 주거나, 꽃 스티커를 볼에 붙여주거나 한다. 자기는 해바라기 꽃이고 나는 장미란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산이랑 엄마랑 웃고 놀다가, 엄마가 문득 ‘할머니는 그럼 무슨 꽃이야?’라고 묻자, 아는 꽃이름이 바닥난 산이가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내가 ‘며느리밑씻개’라며 뜬금없는 소리를 하자 엄마가 푸아 하고 웃는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웃기는 걸 좋아한다. 한 번씩 엄마가, 내가 하는 뻘소리들에 웃으면 그게 좋다. 지금은 아들이 ‘엄마가 웃겨서’ 좋아라고 하면 가슴이 뿌듯하다. 산이와 엄마를 오래도록 웃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산이가 꽃을 좋아하고, 길을 가다 이름 없는 풀들을 어루만지며 궁금해하는 지금의 마음을 오래도록 가지고 자라길 소망한다. 그네를 타며 바라보는 하늘에게, 순한 길냥이들에게 다정한 안녕을 건네는 그 마음을 잊지 않기를. ‘엄마 나 예쁜 누나 봤어’라며 병원에서 만난 다운증후군 소녀를 가리켰던 편견 없는 그 마음이 더 넓어지기를.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꽃인 네가.
‘모두가 꽃이야’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꽃이란 노랫말이 자꾸만 ‘사랑’으로 치환되어 들렸다.
아무데다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사랑은 사랑.
고 구본형 선생님이 쓰신 글 중에서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그럭저럭 살아가는 삶은 늘 질척이게 마련이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해가 나면 햇빛 속을 걸으면 된다.
사랑이 아닌 것들이 사랑을 죽이게 하지 말기를”
그럭저럭은 정말 싫다. 대충대충만큼이나.
빗속이든, 햇살 속이든, 사랑으로, 웃음으로.
이름 지으려 하지말고, 이름이 붙기를 기다리지도 말자.
그냥 가만히 있어도 예쁜 아이의 얼굴처럼.
ps)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의 오늘이 꽃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