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얼마나 유치한 생각이란말인가
아빠야 있다. 아직 살아계시지.67살, 머리를두번 열고
가슴도두번열고 팔다리 감각은 절반만 남아서
미라처럼 바짝 말라버렸지만
그의 육신은 여기 지상에 계신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지상에 없다.
아빠의 영혼은 아주 가끔만 그의 육신에 있다.
아버지를 아주 오랫동안 혐오했다.
마초적인 열등감덩어리에
가정폭력을 일삼았고
국정원이 안기부인 시절 그의직업과 정치의식도
싫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반면교사로서만 존재했다.
내가 생각하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자각과
돈벌이에대한 의미부여는 모두 그로부터 말미암았다.
오랫동안 식탁에 앉아서 나는 그의 눈을 쳐다보지 않았다. 투명인간취급을 한거다. 그건 미움이나 혐오보다 더 깊은 골인데 이따금 나는 치매에 걸려 또래보다
이십년은 더 늙은 그를보면 그때의 내 무시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근거없는 죄책감을 느낄때가있다.
그런 그는 지금도 짜증난다.
짜증나는 아빠는 내가 첫 생리를 한 날
퇴근길에 엄마한테도 한번 사준적 없는
아주 커다란 꽃다발을 사서 왔다.
여자가된걸 축하한다고.
글쓰는걸 좋아하는 나랑 같이 신문을 만들고
영어단어의 철자를 알려주었다.
아빠의 질병은 그에게서 남자다움과 직업과 자존감을 앗아갔고
내게선 아빠를 앗아갔다.
마흔이 거의 다돼가는 나이가 되어서야
내 미움이 사실은 결핍이었단 걸 깨달았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예쁘고
내가 제일 소중하고
하고싶은거 갖고싶은거 뭐든지 말하면 된다고 했던
그 그늘같았던 존재의 부재가 내 인생을
너무 일찍 결정지었다.
살면서 아빠말고 단 한번도 예쁘다는 소리를 들어본적이 없는 나는 쓰레기들을 잘 거르지 못했고
하여 내게
남자란 존재는 늘 호르몬 탓에 욕정에 시달리는자들이었고
결혼은 클리셰처럼 불행했다.
자유를 갈망하지만 늘 기댈사람을 찾고.
실은 다 의미없는것들에 의미부여를 한다.
사는것도 사랑하는것도 버티는것도
잘 모르겠다.
아빠가 있었다면
내가 어른이 되는 과정속에
조금만 더 있었다면
지금 내 어둠이 조금은 덜 짙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