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다시
한동안 마음속으로 (나도모르게 많이) 의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어쩌면 친구라는 이름으로 내가 그사람을 이용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딱히 내가 그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매달린 적이 없었기에
간간이 유지되던 그런 사이였다.
코로나 직전 뜻하지 않은 사고가 있었고,
그 일이 있고 2년이 지난 지금 그는 나를 완전 Block했다.
귀찮아서라도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밀어내거나 끊어내지 못하는 성향의
사람이라는 걸 내가 더 잘 알기 때문에 처음에 사태를 파악했을 때 나는 다소 어안이 벙벙했달까.
뭘까, 뭐 때문일까, 매번 한 번 보자는 연락에 피했던 것도 거리를 두었던 것도 그쪽인데,
그 사고가 사고가 아닌걸까.
사람이든 물건이든 어떤 상황이든 애먼 기대는 늘 실망과 상실을 준다.
기대를 말아야지, 이렇게 뇌까리면서도 또 기대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기대도 말고 상처도 안 받기는 참 어렵다.
그 친구와 폭염경보가 내린 어떤 여름날 등산을 간 적이 있다. 너무 더웠는데,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나는 선뜻 그 등산에 동반해준 친구가 고마웠다.
그 날 그 친구를 만나러 가는 그 정오의 길에서 나는
멜로망스의 '바람'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마음 속에도 바람이 불었다.
그 이후로 내게 그 노래는 언제 들어도 그날로 나를 데려간다.
아무 기대도 아무 실망도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는 채로 그저 걸으며
심지어 정상을 꼭 올라가야 한다는 그런 기대마저 없던
한 걸음 한 걸음 한 마디 한 마디가 자연스러웠던 그 날로.
산은 대충 오르고 근처 두부집에서 쏘맥을 먹고, 2차로 쏘주를 먹었던가
그 때 아들은 7시반이면 잠들었던 때라 나는 술기운에도 아들을 재운 뒤
그 옆에서 뻗었었다.
잠결에 친구에게 고맙다 라고 톡을 보내고.
어떤 실수와 실망과 기대와 상처에도 나는 그의 차단에 속상하기 보다는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나를 보기가 힘들거나, 불쾌하거나, 두렵거나 슬프거나.
하지 않은 말이 없었고, 하지 못할 말이 없었고, 언제나 편했던 친구가 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