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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니스트조현영 Jan 09. 2025

새롭게, 다르게, 자세히 보기

<드뷔시와 모네> 1편

세기의 변화를 일으킨 작곡가, 전통을 파괴하고 형식을 거부한 반항아, 장면을 음악으로 풀어낸 작곡가, 시와 음악을 혼연일체 시킨 음악가. 프랑스 작곡가 끌로드 드뷔시(1862~1918)를 표현하는 수식어다. 경계를 허물고 기존의 것을 새롭게, 다르게, 자세히 봤던 그는 20세기 현대 작곡가들의 스승이다. ‘미국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는 에드거 엘렌 포를 좋아했고,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1889)에서 인도의 가믈란 (실로폰, 징, 북 등이 포함된 인도의 전통 타악기 합주)음악에 영향을 받아 오리엔탈리즘에 관심을 갖는 한편, 음악가들보다 화가나 작가들과 소통하며 새로운 음악의 탄생을 도모했다. 드뷔시는 

“음악이란 음표에 있는 게 아니라, 음표와 음표 사이의 침묵 안에 있다.”

라고 그의 음악을 설명한다.


교향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드뷔시가 상징주의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1842~1898, 프랑스)의 ‘목신의 오후’를 읽고 느낀 영감을 음악으로 만든 곡이다. 하지만 드뷔시의 앞선 음악 세계를 이해하지 못했던 비평가들은 드뷔시의 곡을 듣고 신문에 이렇게 썼다.

 

아름답지만 형식이 없으며 하모니(화음)가 명확하지 못해 음악이라고 할 수 없다또한 기이한 음계를 사용했으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 작품이 모든 규칙을 어기고 있다는 사실이다이런 식으로 작곡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


 신문에 실린 그들의 말은 완전 틀린 말은 아니다. 드뷔시의 음악은 전통과 형식 파괴, 지금까지 우리가 알았던 모든 음악에 관한 규칙을 완벽 타파라도 하는 듯 우리 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한번 듣고는 무슨 음악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어떤 부분을 들어내야 하는지도 몰라 당황스럽다. 바흐로 대표되는 바로크부터 시작해서 슈만, 쇼팽의 낭만까지, 기존의 듣는 법에 익숙한 우리에게 ‘낯설음’이란 형용사를 확 안겨주는 작곡가 드뷔시. 그런데 비평가들의 날카로운 귀로 잡아낸 단 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바로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적한 대로라면 드뷔시의 음악에서 문제가 되는 건 형식이 없다는 것, 새로운 음계를 사용하고, 규칙을 파괴했다는 게 문제일 뿐 ‘아름답다’라는 것에는 반기를 들지 않는다. 드뷔시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아름다움이다. 자유롭고 아름답게 흐르는 음악, 이게 바로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드뷔시의 음악이다.


 드뷔시에게 가장 많이 영감을 준 뮤즈들은 당시 프랑스의 새로운 예술 조류를 이끈 상징주의 시인과 인상주의 화가들이었다. 그리고 1889년 파리만국박람회를 통해 접한 동양의 음악, 동양의 악기였다. 그의 음악에 동양적인 음계와 일본풍의 그림, 캄보디아의 사원이나 탑 등이 그려지는 것은 바로 그런 영향 때문이다. (모네도 자포니즘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또한 매주 화요일마다 열렸던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인 ‘화요모임’에서도 다양한 생각을 접한다. 상징주의 대표 시인 말라르메가 파리 시내의 자기 집에서 화요일 저녁마다 열었던 이 모임에는 시인 베를렌, 화가 고갱, 모네, 마네, 피사로, 르누아르 등이 자주 참석했다. 이들을 잇는 공통점은 바로 기존의 전통을 탈피하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물감을 풀 듯이 음표를 푸는 작곡가


  드뷔시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워낙 그의 음악이 인상주의 미술과 연관돼서 이야기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 선입견을 차치하고라도 그의 음악은 우리 눈 앞에 그림을 그려준다. 음악을 듣기만 했을 뿐인데 장면이 그려진다는 건 특별한 능력이다. 이상한 우연이겠지만 그림을 좋아하는 이들 중엔 드뷔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모네, 마네, 르누아르, 로트렉 같은 인상주의 그림과 더불어 그런 그림을 연상시키는 드뷔시의 음악은 바늘과 실처럼 찰떡 궁합이다. 드뷔시는 청각의 시각화를 이룩해내는 공감각의 작곡가였다. 화려한 색깔의 물감을 입고 흰 도화지 위를 자유롭게 움직이는 화가의 붓처럼, 드뷔시의 음표들은 악기 위에서 자유롭게 춤을 춘다.


 드뷔시는 20살이 되기 전 한창 남자다움으로 가득했던 시기에 네 살 연상의 바니에 부인에 대해 사랑을 느낀다. “이 열정이 미친 짓이라는 것을 알아. 그러나 나의 이성은 마비되었고 감정은 점점 더 예민해지고 있어. 나는 이 사랑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다 바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지곤 해.” 19살 청년의 마음 속엔 그녀 뿐이었다. 드뷔시가 그녀를 위해 작곡한 가곡이 무려 25곡이나 되는데, 그중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노래는 바로 <아름다운 저녁 L 6>이다. 드뷔시의 작품번호는 프랑스의 음악학자이자 드뷔시 연구가인 프랑수아 르쉬르가 1977년에 정리했기에, 그의 이름 이니셜을 따서 보통 L번호로 표기한다. 

 

이 곡은 동시대 함께 했던 시인 폴 부르제(1852~1935, 프랑스)의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곡 처음에 등장하는 PP(아주 아주 여리게)선율과 아르페지오(Arpeggio, 펼침화음) 반주로 인해 아름다운 황혼의 장면이 그려지는 곡이다. 드뷔시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흘러가는 인생에 비유하며, 젊고 아름다운 시절을 마음껏 즐기라는 내용의 이 시에 그의 인생철학을 고스란히 담아 들려준다. 원래 가사가 붙은 가곡이지만 멜로디가 아름다워 바이올린이나 첼로 독주곡으로 연주되기도 한다. 황혼녁에 이 곡을 들으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매력에 빠져든다. 하늘을 도화지 삼아 빨갛게 풀어지는 석양이 그렇게 음악과 잘 어울릴수가 없다. 

 드뷔시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곡으로는 <달빛>을 꼽을 수 있다. 광고나 드라마에서도 자주 흐른다. 원래 이 곡은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이라는 제목으로 4곡으로 구성된 모음곡이다. 1곡 <전주곡>, 2곡 <미뉴에트>, 3곡 <달빛>, 4곡 <파스피에 Passepied, 프랑스 선원들 사이에서 발생한 빠른 춤곡>로 각각 다른 느낌으로 작곡되어 있어서, 한 곡 안에서 다양한 색채감을 느낄 수 있다. 몽환적이고 신비로우며 형식을 탈피하고 새로운 제 3의 것을 지향했기에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SF 영화나 뱀파이어처럼 현실에 없는 존재의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 ‘트와일라잇’에서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


모네를 떠올리게 하는 작곡가


 1903년에 작곡하기 시작한 교향시 <바다>는 웅장한 파도의 모습을 표현한 곡으로, 일본의 판화가 호쿠사이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노 젓는 뱃사람들은 아주 작게 표현되고 큰 파도를 일으키는 물결은 아주 거대하고 웅장하게 그려져 있다. 음악 역시 거대한 느낌이다. 드뷔시는 <바다>에서 모네가 시시각각 변하는 <루앙 대성당>을 그렸듯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모습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1악장 <바다 위의 새벽부터 정오까지>, 2악장 <파도의 희롱>, 3악장 <바람과 바다의 대화>까지 음악이 아니라 그림 또는 문학 작품의 제목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드뷔시가 음악으로 그려낸 바다는 작은 물결에서부터 큰 파도와 광풍까지 모두 느껴지면서, 하루 동안의 빛의 변화를 묘사했던 모네의 연작을 떠올리게 한다.


어쩐지 운명인듯한 두 명의 끌로드

 드뷔시와 함께 자주 언급되는 화가 끌로드 모네(1840~1926)다. 이런 걸 두고 운명이라고 하는 걸까? 작곡가와 화가, 이름이 같은 두 명의 끌로드는 19세기 벨 에포크 시대 프랑스 뿐만 아니라 전 유럽의 예술을 이끌었다.

 드뷔시는 인상주의라는 미술 용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인상주의하면 미술에서 마네, 모네, 음악에서는 드뷔시를 떠올린다. (어릴 때 항상 마네와 모네를 헷갈렸다. 화풍도 비슷해서 작품을 구분하는 것도 쉽진 않았는데, 마네는 모네에게 많은 영향을 줬던 8살 연상의 화가다.) 밝은 야외 광선을 좋아했던 모네는 마네, 르느와르, 드가, 세잔 등과 함께 새로운 예술에 대한 갈등을 비췄다. 특히 런던에서 즐겨봤던 윌리엄 터너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 밝은 화풍에 관심을 가졌다. 이전의 사실주의와는 시선이 달랐다. 선명하고 구체적인 그림 대신 시간의 변화에 따른 빛의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대상의 원래 색이 아닌 빛의 변화에 의한 그림은 평단에서 ‘인상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어느 시대건 낮선 것에 대한 편견은 비하로부터 시작된다. 음악에서 ‘바로크’가 찌그러진 진주라는 뜻으로 시작했듯이 말이다.

 드뷔시는 기존의 분명한 조성에서 탈피해 조성체계를 흔들었고, 딱딱 떨어지는 리듬이나 박자 대신 물처럼 흘러가는 음악을 만들었다. 구체적이고 형식적인 음악이 아닌 추상적이고 모호한 음악의 탄생이다. 모네는 뚜렷하고 명확하게 표현하는 전통 회화 기법 대신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변화를 포착하며 순간의 인상에 중심을 뒀다.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이고, 대상 자체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다는 혹독한 비평에 고개를 떨구고 회귀하는 화가들이 많았을 때도 모네는 끝까지 인상주의를 고집했다. 

 모네는 1892년과 1894년 사이에 시간의 변화에 따라 다른 모습을 가진 루앙 성당의 모습에 푹 빠져 30여 작품의 이르는 연작 <루앙 대성당>을 그렸다. 그 시기 드뷔시도 교향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을 완성했는데, 두 명의 천재가 비슷한 시기에 이런 작품을 탄생시켰다는 것이 또한 놀랍다. 드뷔시는 작곡가지만 음악에서 색을 아주 중요시했고, 모네는 화가지만 그림에서 흐름과 변화를 중시했다. 


“대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바라보는 대상의 이름을 잊어야 한다.”

모네가 했던 유명한 말이다. 당신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을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새롭게 보지 못한다면, 더 이상 들여다봐야할 대상이 궁금하지 않을 테다. 새롭게, 다르게, 자세히 보는 법은 예술 작품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중요하다.



드뷔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https://youtu.be/kgxqODk3ZNk?si=lZdkavbcwSWqjE6G

드뷔시 교향시 <바다중 1악장 C. Debussy | Symphonic poem ‘La mer’ 1st mov (정명훈 지휘)

https://youtu.be/MABJ7g9W4Gs?si=f_QEUkiVCRPlzI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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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 <> Claude Debussy - Rêverie pour Hautbois et Harpe

https://youtu.be/TayOQwKFYUo?si=FezTk2cMhEPYpDIg

드뷔시 <달빛>Claude Debussy- Claire de lune (조성진 연주)

https://youtu.be/97_VJve7UVc?si=dprUxeAGaX-BZOUB

드뷔시 <아름다운 저녁> Debussy- Beau soir (양인모 연주)

https://youtu.be/WPkYx09ViYE?si=vSYQpERLdQGVIa6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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