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륵스키와 하르트만
N잡러가 대세다. 하루가 멀다하고 발전하는 최첨단 기술과 AI와 소통하며 살아야하는 현대 시대에 N잡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버렸다. 하나의 직업으로는 100세 시대를 살기가 턱없이 부족하다. 과거에도 N잡러의 길을 걸었던 작곡가와 화가가 있었다. 그토록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 누구였을까? 해군 장교와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하급관리로 살았던 러시아 5인조의 작곡가들과 증권사 직원으로 일하다 타히티로 떠난 고갱의 삶을 들여다 보자. 물론 르네상스 시대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왕실의 그림과 커다란 부를 획득했던 루벤스도 기억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러시아 작곡가를 꼽자면 단연코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다. 러시아 음악은 크게 두 부류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전통음악을 고수하며 러시아 정서를 중요시하는 ‘러시아 5인조’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서유럽의 영향을 받은 두 명의 작곡가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 부류다. ‘러시아 5인조’였던 작곡가 무소륵스키(1839~1881)는 차이콥스키(1840~1893)보다 겨우 1살 위다. 나이는 한 살 차이지만 두 사람의 음악은 상당히 다르다. 무소륵스키의 음악이 광활한 러시아와 어울리는 남성적 음악인 데 반해, 차이콥스키 음악은 서정적이고 여성적이다. ‘러시아 5인조’는 국민주의 성향을 보인 작곡가들로, 무소륵스키, 발라키레프, 보로딘, 큐이, 림스키코르사코프 등이 함께 조직한 음악 악파이다. 그들은 서유럽 음악에 거부감이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과 견주어 볼 때 인기가 덜하다.
오늘의 주인공인 무소륵스키는 하급관리를 맡고 있던 생업형 작곡가였다. 고상하고 우아한 작곡가의 모습 대신, 술에 취한 빨간 코의 얼굴이 인상적이다. 그는 교양 있고 부유한 부모 덕택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사관 학교에서 공부했고, 그곳에서 러시아 5인조의 나머지 인물을 만나게 된다. 당시 러시아의 부자들은 아들을 사관 학교에 보내는 것이 당연했다. 무소륵스키의 집안은 원래 부자로 어린 시절에는 풍족한 삶을 누렸지만, 1861년 농노 해방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된다. 1861년의 농노 해방령은 러시아 근대사에서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사건으로, 몇백 년 동안 지속되어 오던 지주제가 무너지면서 귀족들은 토지를 기반으로 가지고 있던 특권들을 잃기 시작했다. 농노가 해방됐으니 모두 잘 살았을 것만 같은데, 오히려 지주 아래서 소작했던 시절에 비해 수확량도 적고, 농노가 그 땅을 지주들에게 빌려 경작하는 데도 큰돈이 들었기 때문에 차라리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도시로 향했다. 이후 농업 대신 산업화가 촉진되며 상당수의 중산층이 생겨났다. 무소륵스키는 1863년부터 우리나라의 교통부에 해당하는 러시아 운수성에 취직해서 하급 관리가 되었지만, 몇 년 뒤 해고되었고, 임야국에 말단 관리로 취직해 인생의 말년까지 그 일을 하게 된다. 1865년 그의 나이 26살에 어머니가 죽은 후에는 심한 음주벽과 신경쇠약으로 주위로부터 소외되어, 42살에 이른 죽음을 맞게 된다. 어쩌면 그에게 하급관리의 일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었고 진정 원했던 것은 음악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무소륵스키 작품 중 대표적인 곡으로 교향시 <민둥산의 하룻밤>은 러시아 남부 키예프의 트라고라프라 산에서 매년 6월 24일마다 열리는 성 요한제의 전설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는데, 온갖 마녀와 귀신들이 민둥산에 모여 악마를 기쁘게 하는 잔치를 벌이는 장면이 대규모의 관현악으로 연주되며 무시무시하고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19세기 관현악 작품으로서는 매우 독특한 구성이라 디즈니의 만화영화 〈판타지아>에 등장하여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모두 잠든 밤에 악마들이 산속이나 무덤에서 나타나 잔치를 벌이다 새벽 종소리와 함께 사라진다는 줄거리는 전설 속에 등장하는 흔한 이야기지만, 작곡가들은 각자의 음악적 방법으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었다. 리듬의 변화가 심해서 듣는 이로 하여금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 1867년에 처음 작곡했지만, 그 뒤로 여러 차례 바뀌었다. 무소륵스키는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운 경험은 없었기에 그의 음악에는 날 것의 느낌이 충만한 열정과 생동감이 있으며 독창적인 요소가 가득하다. 한마디로 무소륵스키의 작품은 모든 것이 예상 밖의 신선함으로 가득했던 의외의 음악이었다.
음악의 기본 요소에만 중점을 둔 채 자신의 음악 색깔을 잃지 않았던 그는 1874년에 절친했던 건축가이자 화가 하르트만의 작품을 보고 피아노 모음곡 <전람회의 그림>을 작곡했다. 빅토르 하르트만이 1873년 동맥류 파열로 갑자기 죽자, 하르트만의 친구인 블라디미르 스타소프는 하르트만의 유작 중 중요 작품을 모아 1874년에 추모 전람회를 개최했는데, 이 전시회에 참여한 무소륵스키는 전시된 10개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같은 해에 이 작품을 완성하고 스타소프에게 헌정했다. 음악을 듣다 보면 실제로 미술관에서 10개의 그림을 감상하며 걷는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전람회의 그림〉에서 첫 번째 등장하는 〈프롬나드〉는 ‘산책’이라는 뜻인데 하르트만의 작품 사이를 걷는 모습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이 〈프롬나드〉는 곡 사이를 산책하듯 매번 등장한다. 〈프롬나드〉를 시작으로 1곡 〈난쟁이〉, 2곡 〈고성〉, 3곡 〈튈르리 궁전〉, 4곡 〈비드로〉, 5곡 〈껍질을 덜 벗은 햇병아리들의 발레〉, 6곡 〈폴란드의 어느 부유한 유대인과 가난한 유대인〉, 7곡 〈리모주의 시장〉, 8곡 〈카타콤〉, 9곡 〈닭발 위의 오두막집〉, 10곡 〈키예프의 대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마지막 〈키예프의 대문〉이 웅장한 멜로디와 함께 가장 인기가 많다. 키예프는 지금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를 말한다. 원래 독주 피아노곡으로 작곡되었지만, 후에 라벨이 관현악곡으로 편곡한 음악 역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https://youtu.be/Sq7Qd9PSmR0?si=J3Eoz27xU6bTOJvh
Mussorgsky - Pictures at an Exhibition (Kurt Masur &Leipzig Gewandhaus Orchestra)
무소륵스키-전람회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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