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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 J Sep 01. 2024

예선전_생사의 결단, 과테말라

두 번의 죽음과 마주한 과테말라에서의 기억

과테말라는 나에게 두 번의 죽음과 마주하게 한 곳이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충격으로 남아 있다. 첫 번째는 5월 23일, 과테말라 시티에서 열린 워크숍을 위해 방문했을 때였다. 회의 준비를 마치고 현지 에이전시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직원들은 슬픔과 당혹감이 서린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믿기 힘든 말, "John, 너의 나라 대통령이 자살했어." 그 순간, 나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존경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소식이었다. 서민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평등한 삶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었던 분이셨기에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내가 영어로 하는 말을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했지만, 뉴스를 확인한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 뒤로 어떻게 회의를 마쳤는지, 그 며칠을 어떻게 보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내 마음속에 깊은 슬픔과 허무함이 자리 잡았던 날들이었다.

< 출처 : nbcnews.com >

그리고 두 번째 죽음의 위기는 과테말라에서 예선전을 치르기 위해 다시 방문했을 때였다. 이전 브라질에서 면접을 통해 선발한 프로젝트 어시스턴트인 Fabi와 함께 숙소(호텔)에 도착한 직후, Fabi가 갑작스러운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처음에는 단순한 복통이라 여겼지만, 그녀의 얼굴이 급격히 창백해지고 통증으로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며 상황이 심각함을 직감했다.


낯선 도시에서 어느 병원을 가야 할지 몰라 막막했지만, 다행히 00 전자 과테말라 법인장님의 도움으로 병원을 추천받아 급히 응급실로 향했다. 그러나 병원에 도착한 후 상황은 더 긴박해졌다. Fabi는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지만, 병원 측은 기본 검사만 마친 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감이 커졌고, 나는 결국 병원에 강하게 항의했다. 그제야 알게 된 사실은, 과테말라의 병원 시스템에서는 추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검사와 치료를 위한 병동 이동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이런 제도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법인 카드를 사용해 빠르게 보증금을 걸고 Fabi를 응급 병동에서 일반 병동으로 이동시켰다. 그녀는 통증으로 거의 실신 직전이었고, 나 역시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혔다. 타지에서 그것도 의료 환경이 좋지 않은 과테말라에서 나는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혼란 속에 빠졌다.

< 출처 : Diospi Suyana >

검사가 끝난 후,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Fabi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전문 용어로 가득한 설명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담석이 폐를 막고 있어 긴급하게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Fabi는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고, 과테말라 의사는 나에게 결정을 재촉했다. 과연 내가 이 상황에서 책임질 수 있을까?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더 이상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Fabi의 비상 연락망을 통해 브라질에 있는 그녀의 주치의와 연락을 시도했고, 다행히도 연결되었다. 나는 브라질 주치의와 과테말라 의사를 연결해 상황을 해결해보려 했지만, 과테말라 의사는 통화를 거부하며 시간을 지체할 여유가 없다고 했다. Fabi는 고통 속에서 수술을 요구하며 애원했고, 나는 결국 수술 동의서에 서명했다. 내 여권에 있는 영문 이름과 여권번호를 정확히 기재하고, 법인 카드를 사용해 보증금 1,500 USD(달러)을 걸고 싸인하였다.


긴장감 속에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5시간 혹은 6시간이 지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Fabi는 무사히 회복 중이었고, 호텔로 다시 옮겨졌다. 나는 호텔 측에 특별히 요청해 Fabi가 충분히 휴식할 수 있도록 모든 배려를 다했다.


그날의 경험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의 죽음과 마주한 과테말라에서의 시간들. 그 속에서 느낀 두려움과 책임감, 그리고 결정의 무게.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두려웠지만, 그 순간 내린 결정들이 결국 Fabi의 생명을 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나를 조금은 위로해 주었다.


P.S. 프로젝트가 끝나고 몇 달 뒤, 브라질에 있는 Fabi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녀는 수술 봉합 부위의 실밥을 제거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는데, 믿기 힘든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수술 부위 안에서 거즈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말문이 막혔다. 어이가 없었지만, 이 경험을 통해 떠오른 생각은 대한민국만큼의 의료 시스템과 의료진을 갖춘 곳은 없구나. 가족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어 참 다행이다 싶었다.


그리고, 지금의 의료위기.. 잘 해결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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