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학기 반장 Feb 13. 2024

나쁜 남자의 끝판왕, 뫼르소의 '정다운 무관심'

<이방인>, 알베르 카뮈


야! 너 제정신이냐? 회사 밖은 지옥이야. 회사 다니면서 사이드로 하고 싶은 걸 해야지!


나의 퇴사 결심을 들은 지인이 급발진했다. 이유를 말할 새도 없었다. 나는 이미 정신 나간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찌 그리 단정하는지 의아했다. 나만큼이나 내 인생을 고민해 본 것도 아니면서. 물론 지인은 선한 의도로 나를 걱정하며 말했을 것이다. 어딘가 익숙한 모습 아닌가. 나도 상대를 알려고 애쓰고 이해하기보다는 내가 아는 것을 이해시키려 애쓴 적이 더 많았다.


신입 사원 때 겪었던 일이다. "지난해 입사자들은 무지개색이라 종잡을 수 없었는데 올해 입사자들은 다들 죄다 회색이네." 인사팀 교관은 50명이 넘는 동기들을 회색 인간으로 싸잡아 분류했다. 쌍둥이조차도 서로 다른 존재이거늘. 전 세계 80억 인구는 각기 다른 80억 개의 빛깔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인간은 나와 다른 상대를 깊이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자기 기준에서 자기 수준만큼 상대를 쉽게 판단할 뿐이다.


마흔에 소설 <이방인>을 다시 읽으며 느낀 한 줄. '인간은 인간의 생각 밖에 존재한다.'


"그때 나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어머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 <이방인>, 알베르 카뮈, 책세상, 45쪽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특이하다. 그를 깊이 이해하려 할수록 그는 더 멀어진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 "평소와 다름없이" 초연한 태도를 보인다. 강한 멘탈, 깊은 신앙과는 무관하다. 그저 자기감정 외에는 무신경할 뿐이다. 인위적인 관습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뫼르소는 자연스레 느껴지는 태양에 주목한다. 햇살의 눈부심을 느끼며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려보는 한편, 햇볕의 뜨거움을 느끼며 어머니의 장례를 성가시게 생각한다. 이런 정답고도 무관심한 인간을 봤나!





어머니 장례식에 이렇게 밥 잘 먹는 상주는 처음 본다!


9년 전 어머니 장례식장. 동정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문상객들이 놀라며 말했다. 실감이 안 나서였을까. 아니면 진짜 슬프지 않았을까. 나는 배가 고팠고 밥은 맛있었다. 문상객들은 나를 뫼르소 같다고 생각했을까?


아랍인을 총으로 쏜 뫼르소. 그는 사형집행을 앞두고 죽음이 "나에게 영원히 관계가 없게 된 한 세계로의 출발"임을 깨닫는다. 그로 인해 어머니가 왜 인생 끝에 약혼자를 만들었는지 이해되자 "아무도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나 역시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상주가 되고 싶었다. "내가 죽으면 천국에 가는 것이다. 그러니 내 장례식은 천국 잔치처럼 즐거웠으면 좋겠다." 어머니가 평상시에 유언처럼 했던 말을 나는 되뇌고 있었다.


장례를 마친 바로 다음 날. 뫼르소는 직장 동료였던 마리와 해수욕을 즐기고 사랑을 나눈다. 연인이 된 그들. 마리는 좀 더 확신을 얻고자 뫼르소에게 묻는다. 자기와 결혼하고 싶은지, 자기를 사랑하는지. 이에 뫼르소는 답한다. '아무 중요성도 없는 것이지만' 원한다면 결혼해도 좋고,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아마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잠시 침묵이 흐르고 마리는 입을 연다.


"그녀는 말하기를, 나는 이상스러운 사람이라고, 아마 그 때문에 자기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 테지만, 바로 그 같은 이유로 내가 싫어질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더 할 말이 없어 잠자코 있노라니까, 마리는 웃으면서 나의 팔을 붙들고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 <이방인>, 알베르 카뮈,책세상, 69쪽


진정 나쁜 남자의 끝판왕 아닌가. 결혼은 속고 속여야 이뤄진다는 말이 있지만, 뫼르소는 속이지 않는다. 가엾은 마리. 한없이 솔직해서 더없이 나쁜 놈에게 푹 빠져버렸다. 뫼르소는 여자만 후린 게 아니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거친 남자 레몽과 괴팍한 살라마노 영감도 뫼르소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게 만든다. 도대체 그의 매력은 무엇인가? 그는 상대를 판단하지 않는다.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상대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 정다움을 보여준다. 그를 찾는 이들은 마치 고슴도치처럼 상대의 가시에 찔리지 않는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온기를 느끼려는 듯이 보인다.


코흘리개 시절 동네에서 함께 자란 불알친구가 있다. 10살 때 해외로 떠난 그는 지금까지 여러 나라를 돌며 해외 생활을 이어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을 스펙으로 판단하잖아. 무슨 대학을 나왔고 어느 직장에 다니며 어떤 차를 타는지 너무 관심이 많아. 스페인에서는 사람을 만날 때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해야 할까? 다른 관심은 없고 오로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만 알고 싶어 해." 그는 이제 완전히 스페인에 정착하려 한다. 그곳 사람들의 정다운 무관심을 느끼면서.





며칠 전에 6살 아들이 퀴즈를 냈다. "생일에 죽는 것은?" 침묵하는 내게 아들이 알려준 답, 하루살이란다. 모든 생명에는 죽음이 공존한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생명이라니 이런 부조리가 또 어디 있는가. 이것을 자각하는 인간 또한 부조리의 존재이다. 인간이 만든 사회 또한 부조리의 세계이다. 부조리는 필연인 것이다.


가수 비가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라도 알려줬으면 좋으련만. 뫼르소는 '태양 때문에' 한 방, 다시 네 방의 총을 쏘았다. 처음 한 방은 태양 때문에 우발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고 치자. 그런데 다시 쏜 네 방은 어떻게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뫼르소를 조금 알 것 같은 희망이 보이다가도 이 대목에만 이르면 번번이 좌절을 맛본다. 이를 통해 카뮈는 관념 안에 존재가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 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 중에서


인간은 아는 만큼 보고 보는 만큼 믿는다. 상대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존재의 중심부에 무엇이 있는지 고찰하지 않은 채 주변부만 보고 상대를 자기식대로 규정한다. 자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본질을 모르는 나는 지금 '위험한 짐승'이다. 타인을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은 거짓이다. 거짓으로 타인에게 다가가는 순간, 그 존재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빛'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많이 등장하는 소설이 또 있을까. 빛 속에서도 뫼르소는 어두워 보였다. 그러나 그는 짙은 어둠 속에서 유난히 빛나는 진실이라는 별을 끝까지 따라갔다. 부조리라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거짓에 편승하지 않고 영원한 어둠의 빛이 되었다. 우리는 지금 소통이 단절되고 관계가 분리되는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형용모순처럼 보이지만, '정다운 무관심'의 진실을 지켜낸 뫼르소에게 한 수 배워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부조리는 필연이니까.


이 남자, 묘하게 계속 끌린다. 나쁜 남자가 확실하다.




[이학기 반장 연재]

월 : 이학기 스쿨의 월요일 진로반
화 : 이학기 스쿨의 화요일 독서반
수 : 이학기 스쿨의 수요일 작가반
목 : 이학기 스쿨의 목요일 직장반
금 : 이학기 스쿨의 금요일 고민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