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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Feb 20. 2024

인생 뭐 있어? 노인의 '인생 한방'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조금만 기다리 봐라. 배 들어온다 안 카나!


아버지들은 왜 그렇게 배 타령을 했을까? 배만 들어오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란다. 꼬맹이 때 처음 들어본 말. 배는 30년이 넘게 코빼기도 안 보인다. 아부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에유? 어릴 땐 배가 지구 반대편에서 오느라 늦는 줄 알았다.


친구도 아버지에게 들었단다. 배 들어온다고. 야 너두? 야 나두! 시간이 지나자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 아버지와 친구 아버지의 배가 충돌해 바다 한가운데 가라앉은 게 아닐까 하고. 인생 한방을 노리던 아버지. 지금도 망부석 여인처럼 오지 않는 배를 기다린다. 아부지, 그 배 이미 난파된 거 아니에유. 배를 만드는 게 빠르겠슈.


"내 큰 물고기는 틀림없이 어딘가에 있을 거야." 꾀죄죄하기 그지없는 한 늙은이. 인생 한방을 노린다. 그는 84일간 한 마리의 고기도 낚지 못했다. 그런 노인을 한없이 해맑은 소년이 좋아한다. 노인은 하루 중 유일한 식사로 소년이 가져다준 커피 한 잔을 마신다. 그리고 다시 85일째 마주하는 바다로 나아간다.


"노인은 멀리 나갈 예정이었기에 대지의 향기를 뒤로 남겨 두고 깨끗한 이른 아침 대양의 향기를 향해 노를 저어 갔다."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이정서 옮김, 새움, 31쪽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 <노인과 바다>의 줄거리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게다가 헤밍웨이는 이 소설에 대해 "사람들이 말하는 모든 상징주의는 똥"이라고 못 박았다. 노인과 소년, 청새치와 상어, 바다와 낚시 등이 상징하는 바를 찾으려 애쓸 필요가 없다.


뻔한 감상 대신 '노인의 인생 한방 노하우'에 주목했다. 인생에서 잡고 싶은 큰 물고기가 있는가? 유튜브 제목으로도 딱이다. '85일 만에 인생 역전한 85세 노인의 비법 3가지'를 알아보자.(85세는 라임을 맞추기 위해 내가 임의로 부여한 나이다.)


먼저 노인은 '오직 하나만 생각'했다. 자신의 목표인 큰 물고기, 오로지 큰 놈만 생각하려고 애썼다. 역시 헤밍웨이다. 시대를 앞서 베스트셀러 <원씽>의 핵심 메시지를 노인을 통해 말하다니. "이제 오직 하나만 생각할 시간이야. 내가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가만. 저 무리 주변에 큰 놈이 있을지도 몰라."(43쪽)


또한 노인은 '인내'했다. 사흘 동안 큰 물고기와 사투하는 노인. 그의 처절함을 읽고 있노라면 어느덧 스멀스멀 피비린내가 올라온다. 그는 행여나 낚싯줄이 끊어질까 서두르지 않는다. 손이 굳고 쓸리고 너덜너덜해져도 낚싯줄을 보드랍게 쥔다. "나는 그에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과 인간이 인내한다는 것을 보여 줄 참이니까요."(70쪽)


마지막으로 노인은 '오직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일'을 했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목표를 손에 넣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상어가 기다리고 있었다. 상어는 영광과 함께 찾아오는 시기, 질투 따위의 고난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상징주의 따위의 똥 같은 생각을 하지 말라는 헤밍웨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나도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오직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일이다."(104쪽)



결국 이 세 가지 비법을 관통하는 노인의 정신은 무엇일까. 바로 "어부로 존재하기 위해 태어난" 그의 정체성이다. 노인은 어부의 삶을 소명으로 여겼다. 소명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이다. 불편하고 어렵더라도 그 길로 묵묵히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존재의 이유라고 믿기 때문이다. "자네는 물고기가 물고기로 존재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어부로 존재하기 위해 태어난 걸세."(110쪽)


노인은 어부의 소명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 주변의 조롱과 비난, 무시와 멸시에 굴복하지 않았다. 동시에 그는 인간의 소명에 충실했다. 헤밍웨이는 노인을 통해 인간의 소명을 이렇게 말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패배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어.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지는 않아."(108쪽)


인생에서 잡고 싶은 큰 물고기가 있는가? 노인이 알려준 비법대로라면 나의 정체성부터 확고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삶이 내게 요구하는 소명이 무엇인지에 귀 기울여야 한다. 가만히 들어보자. 어떤 소리가 들리는가?




[이학기 반장 연재]

월 : 이학기 스쿨의 월요일 진로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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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 이학기 스쿨의 목요일 직장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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