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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Mar 05. 2024

미하일의 통찰, 사람은 왜 미래를 알 수 없을까?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1년 후 나의 미래를 알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이 질문에 머릿속 계산기가 바빠진다. 우선 나는 1년 후의 수익과 손실을 따져볼 것이다. 수익이 났다는 것은 시장에 대한 적중률이 높았다는 뜻이다. 지금부터 1년간 이 수익을 더 극대화하기 위해 집중할 것이다. 예를 들어 투자 수익률이 높은 쪽으로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한다, 수익을 창출하는 콘텐츠의 양을 늘리고 질을 높인다 등의 계획이 나올 수 있다. 


손실이 난 영역은 솔루션이 있다면 오늘부터 보완해갈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당장 포기할 것이다. 예를 들어 반응 없는 콘텐츠의 원인을 분석하여 개선해 본다, 스트레스만 가중되는 인간관계를 정리한다 등이 있을 수 있다. 이보다 효율적인 삶이 어디 있겠는가. 보장된 미래를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안정감을 느낀다.


하지만 인생은 효율과는 거리가 멀다. '한블리'라는 자동차 블랙박스 영상 리뷰 방송이 있다. 사고 영상을 몇 편만 봐도 사람은 1년 후는커녕, 바로 1초 뒤의 자기 미래조차 모르는 존재라는 씁쓸한 현실을 마주한다. 사람은 오직 현재에만 살 수 있다. 그래서 연초만 되면 점 보러 줄 서고, 사주팔자에 귀 기울이며 운명을 믿으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지도 모른다. 미래를 알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은 왜 미래를 알 수 없는 걸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주인공 미하일은 구둣방에서 일했다. 하루는 한 건장한 신사가 거드름을 피우며 고급 가죽으로 1년 동안 튼튼하게 신을 장화를 만들어놓으라고 주문한다. '이 사람은 날이 저물기 전에 죽을 거라는 것을 모르고 1년을 준비하는구나.'라고 생각한 미하일. 그는 장화 대신 죽은 사람에게 신길 슬리퍼를 제작한다. 


사실 미하일의 정체는 천사였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죄로 인간 세상으로 쫓겨났다. 천국으로 돌아가려면 인간 세상에서 하나님이 내준 세 가지 질문의 답을 찾아야만 했다. 구두장이 세몬과 그의 부인 마트료나의 배려로 미하일은 구둣방 직공이 되었다. 6년이 지나 마침내 미하일은 세 가지 질문의 답을 모두 찾게 된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떨어져 사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각자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능력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이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염려하고 돌봄으로 살 수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오직 사랑으로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습니다. 사랑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사는 것이며, 하나님은 그 사람 안에 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곧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문예출판사, 43쪽


세 가지 질문은 이러했다.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세 번째 읽는 소설인데 읽을 때마다 세 가지 중에 유독 시선이 가는 질문이 있다. 오늘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라는 주제에 꽂혔다. 건장한 신사는 자신이 그날 밤에 죽을지도 모르고 1년 동안 신을 장화를 만들려고 했다. 정작 필요한 것은 죽었을 때 신을 슬리퍼였는데 말이다. 


어쩌면 나도 이렇게 살고 있지는 않았을까? 천년만년 살 것처럼 인생을 고민하며 흘려보낸 시간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미하일이 찾은 답처럼 사람에게는 '각자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능력'이 허락되지 않았다. 사람이 모두 자기 미래를 안다면 관계에서 오는 기대와 소망을 잃어버릴 것이다. 어차피 정해진 결말을 아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느낄 사람은 없으니까.

 


미하일은 깨달았다. 하나님은 사랑이기에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길 원한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존재가 인생을 염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15년에 가까운 회사 생활을 뒤로하고 퇴사한 지 3개월이 되었다. 가장의 무게로 자신을 염려하고 돌보려는 생각으로 가득 찬 시간을 보냈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으며 평안을 찾게 되었다. 


아이 둘의 네 식구 외벌이 가장의 퇴사를 종용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아내였다. 한석봉 어머니도 아니면서 "당신은 글을 쓰세요. 저는 돈을 벌 테니."라며 나의 퇴사를 지지했다. 아내의 사랑으로 나는 숨을 쉰다. 둘 다 백수지만, 인생은 염려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산다는 것의 증인이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사람은 전지전능하지 못하다. 그 한계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사람은 한 치 앞도 모른다. 그 연약함이 우리를 서로에게 기대도록 해준다. 사람의 한계와 연약함은 존재에 대한 연민을 자아낸다. 우리의 삶은 제한된 나와 연약한 너가 만나 서로를 향한 연민의 사랑으로 연대하는 것이 아닐까.




[이학기 반장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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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 이학기 스쿨의 화요일 독서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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