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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Feb 27. 2024

바보 이반에게 묻는다, 진짜 바보는 누구인가?

톨스토이, <바보 이반>


바보, 멍청이, 똥개, 해삼, 멍게, 말미잘!

바보 6종 풀세트 욕을 들어봤는가? 약식으로 '바보, 멍청이, 똥개' 3종 세트도 있다. 얼핏 귀엽게 들리지만, 실은 상대가 얼마나 하등한지를 드러내는 무시무시한 욕이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을 해면동물과 자포동물로까지 취급할 정도면 말 다 했지 뭐. 그런데 이런 바보 6종 세트가 모여 사는 바보 나라가 있어 소개한다.


바보 이반이 왕이 되자 똑똑한 사람들은 모두 나라를 떠났다. 바보들만 남았고 돈을 가진 자도 없었다. 바보들은 스스로 일해서 먹고살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도 먹여 살렸다. 바보 나라에는 한 가지 관습이 생겼다.


"손에 굳은살이 박인 사람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지만, 굳은살이 없는 사람은 남이 먹고 남긴 음식을 먹어야 한다."

- 톨스토이 단편선, <바보 이반>, 문예출판사, 155쪽


적군이 침입해도 바보들은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 약탈해가는 것을 순순히 내어주고 심지어 적군에게 함께 살자고 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적군은 바보 나라를 무자비하게 짓밟기 시작했다. 바보들은 울기만 할 뿐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 도무지 싸움이 되질 않았다. 이게 바로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주의가 아닌가. 바보들은 간디의 스승이었다.


적군이 물러가자 이번에는 큰 도깨비가 나타났다. 돈으로 바보 나라를 무너트리기 위해 돈을 뿌려댔다. 하지만 바보들은 돈에 관심이 없었다. 큰 도깨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돈을 주겠다는데 왜 싫다는 거요? 돈만 있으면 뭐든 살 수 있고 일꾼도 얼마든지 부릴 수가 있는데 말이오."(150쪽) 바보들이 답했다. "돈은 필요 없다니까요. 돈 쓸 일도 없고 내야 할 세금도 없으니 대체 돈이 무슨 소용 있어요?"(150쪽)


팀 페리스가 <나는 4시간만 일한다>에서 들려줬던 '멕시코 어부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 미국인 사업가가 멕시코의 작은 어촌에 휴양을 하러 갔다. 그는 한 멕시코 어부가 물고기 몇 마리를 잡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다. 직업병이 발동한 사업가는 어부에게 다짜고짜 컨설팅을 해주었다.


물고기를 더 많이 잡아서 큰 배를 사고 그 배로 훨씬 더 많은 물고기를 잡아라, 그리고 배를 여러 척으로 늘려 고기잡이 사업을 해라, 그러면 통조림 공장을 차려 뉴욕까지 진출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어부는 그렇게 되면 뭐가 좋은지 물었다. 사업가가 웃으며 답했다. 엄청난 부자가 되면 은퇴한 후에 작은 어촌 마을에서 늦잠도 자고 가족들과 시간도 많이 보내면서 여유롭게 살 수 있다고 말이다. 이번엔 어부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부자가 아니지만,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고.





큰 도깨비는 손에 굳은살이 없다는 이유로 바보 나라에서 돼지 취급을 당하자 복수심에 불탔다. 손으로 일하는 사람은 바보라며 머리를 써서 일해야 똑똑한 사람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요즘 성공팔이 유튜버들의 폰지 사기와 놀랍도록 닮았다. 그들이 바로 이 시대에 성공 포르노를 양산하는 큰 도깨비가 아닌가 싶다. "가난은 정신병"이라고 말하며 단기간에 큰돈을 벌지 못하면 정신병자라는 프레임을 만든다.


사기꾼들은 노동자를 개돼지 취급하면서 개나 소나 경제적 자유라는 신기루를 좇도록 종용한다. 진짜 부자라면 무슨 돈이 더 필요해서 성공팔이를 하고 강의 팔이를 하는 걸까? 홍익인간의 뜻을 명분으로 내세울 거면 <세이노의 가르침>의 저자 세이노처럼 값없이 나누는 진심이 전달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손보다 머리로 일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중략) 하지만 머리로 일하는 게 절대 쉬운 것은 아닙니다. (중략) 어떤 때는 머리가 쪼개질 정도로 어렵답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자신을 괴롭히는 건가요? 머리가 쪼개지는데 그게 쉬운 일인가요? 차라리 쉬운 일을 손이 부르트도록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 톨스토이 단편선, <바보 이반>, 문예출판사, 152쪽


얼마 전에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옛날에는 시골 어른들이 사계절 내내 새끼 꼬고 농사짓고 장사하고 사냥하며 살았단다. 먹고살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습득했고 손이 부르트도록 일했단다. 그런데 요즘은 젊은 세대 사이에 일하는 것 자체를 터부시하는 문화가 퍼져서 걱정이란다. 꼰대 같은 말일 수도 있지만, 곱씹어 볼 가치가 있다.


앞으로 '근근이 먹고사는 시대'가 도래하기 때문이다. 송길영 작가는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를 통해 AI가 수익성 높은 사업들을 대체하면 우리는 조금 벌어 나눠먹는 작은 마을을 이루며 살 거라고 예측했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면서 근근이 먹고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강조했다. 지금 우리는 성공 포르노 중독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손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일하려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장착해야 한다. 애호만 좇다가는 생존에 쫓기게 될 테니까.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은 짧은 동화이지만, 긴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바보 이반이 우리에게 묻는다. 이 시대의 진짜 바보는 누구인가?





[이학기 반장 연재]

월 : 이학기 스쿨의 월요일 진로반
화 : 이학기 스쿨의 화요일 독서반
수 : 이학기 스쿨의 수요일 작가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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