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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Apr 16. 2024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을 포용하려면

유이월, <찬란한 타인들>


유이월 작가는 팔색조의 매력을 지녔다. 문학을 전공했지만, 쇼핑몰을 운영하며 철저히 장사꾼으로서 기지를 발휘하여 고객을 매혹한다. 그러다 글을 쓸 땐 철저히 전공에 충실한 작가로서 오색찬란한 글로 독자를 매료한다. 극과 극을 연결하는 그녀의 매력에 이끌려 <찬란한 타인들>을 읽었다.


<찬란한 타인들>은 30편의 초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그중 <강아지 모리>가장 짧은 글지만, 운이 가장 길게 남았다. 짧은 만큼 줄거리도 짧다. 모리라는 강아지를 키우던 주인은 '더 이상 키울 수가 없어서' 수십 마일이 떨어진 곳에 모리를 버릴 수밖에 없지만, 귀신같이 찾아오는 모리를 기다린다는 내용이다.


헤밍웨이는 여섯 단어로도 소설을 썼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지만, 실제로 500자도 안 되는 소설은 처음 읽어봤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의 냉정함과 따듯함, 강아지의 영리함과 어리석음이 묘하게 뒤섞이며 팝콘이 톡톡 터지듯 내 안의 기억이 불현듯이 자라났다.


그냥 콩! 쥐어박았는데 그대로 캑! 쓰러지더라고요.


순간 식초 한 사발을 들이킨 듯 시신경이 타들어 가는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한창 무르익던 상견례 자리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왜 하필 그때 그런 말을 꺼냈을까? 심지어 술 한잔도 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말이다.     


외아들로 자란 나는 늘 외로웠다. 초등학생 때 엄마를 끈질기게 졸라 반려견 한 마리를 입양했다. 하얀 토이 푸들의 이름은 ‘하니’였다. 부모님의 냉전으로 북극 같던 우리 집에 벚꽃처럼 찾아온 하니가 고마웠다. 내 팔을 베개 삼아 잠들 때까지 하니는 하루종일 그림자처럼 나를 따랐다. 반려견 입양을 반대했던 엄마도 내게 귀여운 동생이 생겼다며 미소 지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달랐다. 내가 하니를 사랑할수록 아버지는 하니를 증오했다. 급기야 아버지는 하니를 때리기까지 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아버지를 보며 나는 혼란스러웠다. 나를 끔찍이 아껴주는 아버지가 어떻게 내 동생한테는 끔찍한 짓을 할 수 있을까? 잘못하다간 나도 개같이 얻어맞는 건 아닐까? 하니가 맞으면 내 마음도 함께 멍들었다. 아버지 눈치를 살피다 내가 먼저 하니를 때리기도 했다. 어차피 맞아야 한다면 아버지보다는 내 손이 낫겠다 싶었다. 미안함에 심장이 아렸다.     


아버지는 기어이 우리 형제를 격리했다. 침대에서 함께 자지 못하도록 하니를 거실에 목줄로 묶어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내가 일어나면 목줄이 마구 날뛰는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거실에 나가보니 아버지와 하니가 없었다. 놀라서 엄마에게 묻자 더 놀라운 답변이 돌아왔다. “아빠가 웬일인지 하니를 데리고 산책하러 가는 것 같더라. 이제 좀 예뻐하려나 봐. 걱정하지 말고 학교 잘 다녀와.” 믿기 힘들었지만, 믿고 싶은 말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하니가 보고 싶어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꼬리를 흔들며 미친 듯이 달려오는 하니를 상상하며 문을 열었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현관에 멀뚱히 서 있으니 적막이 미친 듯이 내게 달려들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엄마가 집에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니가 어디 있냐며 닦달하는 내게 엄마는 어렵사리 입을 뗐다. “놀라지 말고 잘 들어. 새벽에 하니가 갑자기 움직이질 않는 거야. 네가 알면 난리가 날까 봐 학교 갈 때까지 베란다에 숨겨놨었어.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뭘 잘못 먹어서 장이 꼬인 거라고 하더라. 엄마가 묻어주고 왔어.”     


하니를 잃었는데 세상은 잔인하리만치 침착했다. 날은 또 왜 그렇게 맑던지. 새파란 하늘에 새하얀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있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언제나 느긋해 보였던 구름이 사실은 조급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아차렸다. 어디론가 달려가는 구름들 사이로 저 멀리서 구름 하나가 유독 미친 듯이 달려왔다. 하니였다. 두 눈을 의심했지만, 분명 하니였다. 갑자기 두 눈에 차오르는 뜨거움에 ‘하니 구름’이 일렁였다. 더럽게 아름다운 날이었다.     



상견례 자리에서 장모님이 키우던 반려견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았다면 아버지도 굳이 하니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지금까지도 나는 장이 꼬여서 죽은 하니가 하늘로 가서 구름이 된  알고 살았을 거다. 아버지는 내게 못 가게 하려고 묶어둔 하니가 밤새 낑낑대며 내게 가려는 모습이 얄미웠단다. 순간 꿀밤을 콩! 쥐어박았는데 급소를 맞았는지 캑! 죽어버렸단다.


아버지는 종류와 크기에 상관없이 세상 모든 개를 똥개로 인식하고 있었다. 똥개가 아들에게 병균이라도 옮길까 봐 애가 탔다고 했다. 말인지 방귀인지. 상견례 자리만 아니었다면 나는 그때 아버지에게 어떤 말을 쏟아부었을까? 상견례를 기점으로 내 안에 간신히 봉인되어 있었분노가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아버지와의 용광로 같았던 갈등으로 점철된 시간을 한참 보낸 후에야 나는 과거의 상처를 애도하며 떠나보냈다. 상처를 '더 이상 키울 없어서'였다. 소설을 읽으며 느닷없이 떠오른 그때의 용광로 같았던 마음이 유이월 작가의 담금질로 급랭될 수 있었다.


"내 글은 아이러니에 대한 각종 예찬이다. 세상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훨씬 많고, 순수한 감정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누굴 사랑하면서 동시에 미워하기도 하고, 어떤 것을 바라면서 동시에 바라지 않기도 한다. (중략) 또한 이해할 수 없는 타인들을, 나는 아이러니의 은혜로 포용한다."

- 유이월, <찬란한 타인들>, 180쪽


그렇다. 삶 자체가 아이러니의 향연이 아니던가. 인간은 탄생과 동시에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아이러니한 존재이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도 전부 아이러니의 결정체일 뿐이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는데 타인인들 이해할 수 있으랴. 아이러니하지만, 우리는 아이러니하기에 연대할 수 있다. 작가의 말처럼 이해할 수 없는 타인들을 아이러니의 은혜로 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십 마일을 달려와 주인에게 안긴 강아지 모리의 모습이 마치 구름이 되어 내게 달려왔던 하니 같았다. 너의 삶도 나의 삶도 참 아이러니 하구나.




[이학기 반장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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