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교육개발원과 진로와소명연구소에서 두 차례나 나의 직업적 소명 가설이 '작가'로 나온 걸 보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글밥을 먹고사는 사람이라... 육아휴직 중이라 벌이는 없고 육아는 해야 하고 글도 쓰고 싶은데 뭔가 방법이 없을까? 답답한 마음에 며칠간 인터넷에서 표류하다 우연히 오마이뉴스를 알게 되었다.
오마이뉴스에는 시민 기자 제도가 있어 일반 시민도 기사를 쓸 수 있고 채택되면 원고료까지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육아휴직 전에 이미 자유기고가 과정을 수료했기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특이한 점은 소시민의 일상도 생활 기사로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마침 처음으로 육아빠가 된 데다 전원주택에 살고 있었으니 생활 기사로 쓸 수 있는 소재는 지천에 널려있었다. 17시간 동안 아내와 모든 과정을 함께 한 자연주의 출산, 육아의 기쁨과 고충, 매일 마주친 돈벌레와 어쩌다 마주친 쥐, 마당에 핀 벚꽃과 텃밭에 돋아난 상추 등 일상을 콘텐츠로 만드는 일상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3천 원, 5천 원 소소하게 원고료가 들어오다 한 번은 메인 기사에 채택되어 3만 원인가 5만 원인가도 받아봤다. (물론 채택되지 않은 기사가 훨씬 더 많았다.) 머리털 나고 처음 글로 돈을 벌어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6개월의 육아휴직 중 남은 시간은 5개월, 이제는 진짜로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쉽게 얻을 수 없는 덩어리 시간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SNS를 보다가 한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책을 10권 넘게 쓴 전업 작가가 운영하는 책 쓰기 과정이었다. 전화를 걸어 비용을 문의했다가 그만 뜨헉 하고 말았다. "600만 원인데 신청자가 많아서 조만간 800만 원으로 올라갈 예정입니다." 600만 원에 한 번, 신청자가 많다는 말에 또 한 번 놀랐다. 당시 2018년 시세였으니 요즘은 기본 1,000만 원부터 시작한다고 들었다.
외벌이 가장이었던 내가 육아휴직을 하는 상황이라 벌이도 없는데 600만 원이나 되는 돈을 쓴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며칠을 끙끙 앓다가 아내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오빠가 원하면 해요. 얼마나 많이 알아봤겠어요." 600만 원보다 더 놀라운 답변이 돌아왔다. 나를 지지해 주는 아내 덕분에 의외로 쉽게 고민이 해결되었다.
나는 생애 첫 책 쓰기에 도전했다. 그 치열했던 과정을 담아 얼마 전 수요일 연재에 올렸던 '책 쓰기 8. 초고를 쓰는 고초를 극복하자'(https://brunch.co.kr/@cpotss2023/292)의 일부를 소개한다.
2018년 여름, 나는 A4 2.5페이지로 된 목차 한 개를 쓰는데 3~8시간이 걸렸다. 왜 이렇게 격차가 컸냐고? 사전에 자료조사가 잘 되어있는 목차는 평균 3시간, 처음부터 자료조사를 하며 써야 했던 목차는 평균 8시간이 걸렸다. 자료조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 나는가?
나는 큰 마음을 먹고 육아휴직 때 책을 썼기 때문에 하루에 최대 8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물론 100일도 안 된 아이의 육아빠가 되었기에 아내가 직장에 가고 나면 나 혼자 아이를 돌보다 멘붕에 빠지기 일쑤였다. 목청껏 울어 젖히는 아이를 겨우 달래서 아기 띠를 한 채 아이와 한 몸이 되어 초고를 쓰기도 했다. 그러다 예민해져서 아내와 다투기라도 한 날에는 글이 도무지 써지지 않아 난감했다. 초고를 완성하려면 매일매일을 수도자처럼 경건한 마음을 유지하려 애써야만 했다.
초고 완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려주겠다. 책 한 권을 쓰기까지 보통 얼마나 걸린다고 생각하는가? 주변에 물어보면 최소 1~2년 이상이라는 답변이 지배적이다. 아니다. 책 쓰기는 3~4개월 안에 승부를 봐야 완성할 수 있다. (물론 다양한 케이스가 있을 수 있으나 내 경험과 거금을 주고 책 쓰기 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토대로 말하는 것이다.) 목차를 완성하기까지 1~1.5개월, 초고를 완성하기까지 1.5~2개월의 기간을 데드라인으로 잡아야 한다. 더 길어지면 체력도 떨어지고 의지도 약해져서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당시 나는 하루에 목차 한 개씩, 총 40일 동안 40개의 목차를 완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100년 만에 찾아온 폭염을 기록했던 그 여름, 나는 육아를 병행하며 하루에 3~8시간씩(8시간씩 쓰는 날이 훨씬 더 많았다는 것은 안 비밀) 목차 하나씩을 썼고 진짜로 40일 만에 초고를 완성했다. 그러자 가을이 찾아왔다. 말도 안 된다고? 절박하니까 다 되더라. 가장인 내가 육아휴직을 하는 바람에 벌이도 없는데 거금을 들여 책 쓰기 학원까지 등록해 버린 상황이었다. 아내와 아이 앞에 떳떳하려면 한 가지 방법뿐이었다. 진짜로 책을 쓰는 것이었다.
돌아보면 책 쓰기 학원에 들인 거금만큼 확실한 동기부여도 없었다. 돈이 아까워서라도 나는 기필코 목표 달성을 해내야만 했다. (무료로 알려주는 나의 책 쓰기 노하우가 사실 얼마나 동기부여가 될지는 모르겠다. 누차 강조하지만, 실제로 1,000만 원을 투자한 것처럼 생생하게 절박함을 느껴가며 책 쓰기에 임하길 권한다.) 또한 육아휴직 6개월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책 쓰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도 내겐 강력한 동력이 되었다.
'하고 싶다'로 시작해 '해야 한다'로 책 쓰기를 마무리하니 어느덧 육아휴직의 끝자락이 가까워졌다. 솔직히 책 한 권을 내면 인생 역전이 될 줄 알고 소중한 시간과 돈을 들였다. 하지만 하루에 약 170종의 신간이 쏟아지는 출판 업게에서 초보가 처음 쓴 원고를 채택해 줄 정신 나간 출판사는 없었다. 냉혹한 현실을 체감한 나는 낙담했다.
하지만 아내는 결과가 아닌 과정을 칭찬해 주었다. 내가 얼마나 진심으로 몰입했는지 곁에서 지켜본 아내는 나를 토닥였다. 책을 내고 작가가 되어 회사에 보란 듯이 사표를 던지고 싶었는데 복직 날짜가 점점 코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쿠팡이었다.
꿈같았던 육아휴직 6개월 동안 나는 마음껏 꿈을 꾸었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했다. '그래, 나는 가장이다. 나의 3차 소명은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이다.' 책은 취미의 영역으로 남겨두기로 하고 다시 본래의 세일즈 커리어를 살려 연봉을 높이는 길을 선택했다.
[이학기 반장 연재]
월 : 이학기 스쿨의 월요일 진로반
화 : 이학기 스쿨의 화요일 독서반
수 : 이학기 스쿨의 수요일 작가반
목 : 이학기 스쿨의 목요일 직장반
금 : 이학기 스쿨의 금요일 고민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