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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May 24. 2024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려면?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6살짜리 아들이 있다. 이 아이는 경쟁심이 높아서 뭘 하든 본인이 만족하는 수준에 도달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처음 게임을 접했을 때도 아빠한테 지면 아들의 두 눈에는 금세 분노의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 지더라도 괜찮다, 1등이 중요한 게 아니다 등등 아무리 타일러도 아들은 요지부동이다. 신이 주신 타고난 기질인데 어찌 인간인 내가 바꿀 수 있겠는가. 다만 아들의 경쟁심이 선한 영향력으로 잘 발산되도록 코칭할 필요는 있겠다.     


미술을 전공한 지인에게 아이디어를 얻어 나는 아들에게 제안했다. 스케치북을 펼쳤을 때 한쪽 면에는 달력을 붙여줄 테니 다른 쪽 면에는 그림을 그려서 세상에서 유일한 달력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묻고 흔쾌히 OK 사인을 받았다.     


아들은 현재 1월부터 5월까지 총 다섯 개의 작품을 완성했다. 매월 나는 집에서 아들의 작품 전시회를 열어준다. 벽에 그림을 걸어놓고 꼬마 화백을 모셔서 작품 설명을 듣는 것이다. 이때 영상 촬영까지 해주면 아들의 자존감은 하늘로 솟구친다.     





아들아, 실제 낚시는 게임이랑 달라. 빨리 잡히지도 않고 쉽게 잡히지도 않아. 어쩌면 한 마리도 못 잡을 수 있어.   



꼬마 화백의 진심을 담은 5월 작품 덕분에 5월에 낚시를 다녀왔다. 승부욕이 남다른 아들이 오늘의 낚시왕은 자기가 될 거라며 잔뜩 들떠있길래 나는 실망하지 않도록 정신 교육을 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무한 체력의 초록띠 태권 소년인 아들조차도 대자로 뻗을 정도로 고된 하루였지만, 조과를 떠올리면 언제든 또 떠날 것 같다. 신기한 건 실제로 아들이 3마리, 내가 1마리 잡아서 그림과 똑같은 조과가 나왔다는 사실! 소오오오름!!      


아들은 모두 참돔이었던 반면 나는 귀하디귀한 돌돔을 낚았다. 우리 집 낚시왕은 아들이, 낚시터 조과왕은 내가 차지했다. 주인 왈, 횟집에서 먹으면 돌돔은 kg당 20만 원이란다.     


생초보라 어떤 장비가 필요한지도 모르고 맨몸으로 가서 낚싯대만 빌렸는데 옆에 있던 다른 일행 덕분에 뜰채, 어망, 멀티플라이어는 꼭 챙겨야 한다는 걸 배웠다. 그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돌돔은 전설의 물고기인 줄 알고 돌아왔을 것이다. (정작 그분들은 그때까지 한 마리도 못 잡으셔서 먹을 거 챙겨드림ㅠㅠ)   




 

낚싯대를 처음 잡아보는 아들에게 참돔 세 마리가 찾아온 것을 보고 아들을 얕봤던 내가 부끄러웠다. 역시 내 수준에서 멋대로 앞서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물고기들도 아는 걸까? 자연에 가까운 아이의 순수함이 담긴 그 손길을 말이다.      


사실 내가 돌돔을, 아니 돌돔이 나를 찾아올 수 있었던 것도 앞서 세 마리를 잡은 아들의 낚시법을 유심히 관찰한 덕분이었다. (아내는 내가 그날 입은 은갈치 같은 옷 덕분에 물고기가 착각하고 온 거라고 놀린다. 쳇!)     

낚시터 관계자가 처음엔 꼬마 낚시왕 아들만 열심히 취재했는데 내가 돌돔을 잡자 순식간에 나를 VIP로 추켜세웠다. 게다가 3만 원에 판매하는 원줄도 돌돔 이벤트 사은품으로 주는 것이 아닌가. 화려한 장비를 갖춘 양옆의 다른 일행들에게 미안해질 정도로 아들은 기뻐했다.      


고수는 장비를 탓하지 않는다는데 초보는 탓할 것조차 없으니 마냥 즐거울 뿐이다. 아이의 찐 웃음을 보면 나는 우주에서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 된다. 우리는 잡은 물고기를 모두 회로 떠서 양손 가득 들고 처가댁으로 향했다. 한상 가득한 회와 함께 찐 웃음이 가득한 식탁이 되었다. 




[이학기 반장 연재]

월 : 이학기 스쿨의 월요일 진로반
화 : 이학기 스쿨의 화요일 독서반
수 : 이학기 스쿨의 수요일 작가반
목 : 이학기 스쿨의 목요일 직장반
금 : 이학기 스쿨의 금요일 고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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