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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Jun 08. 2024

너 재입사 안 할래?


너 재입사 안 할래? 요즘 회사에서 사람을 찾더라고. 너라면 바로 합격일 텐데.


영주로 내려가는 길에 그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현재 프리랜서라고 포장했지만, 백수나 다름없다는 걸 간파한 그가 달콤한 제안을 했다. 


그는 첫 직장 입사 동기다. 15년 동안 한 직장에 뿌리내린 그는 현재 영주에서 사과 산지 MD로 일한다. 회사 전체 사과 매출이 그의 손에 달려있다.


2009년에 처음 만난 우리가 사실 동기에서 친구로 거듭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내가 이직하고 아이 둘의 아빠가 되었을 때 그는 이미 아이 셋의 아빠였다. 통나무를 어깨에 메고 “전우야, 사랑한다!”를 외치는 훈련병처럼 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우리는 어느새 서로를 격려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하하, 네 직속 부하로 들어갈 수 있다면 생각해볼게.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 돈은 못 벌어도 요즘 잠들 때마다 얼마나 행복한데.”


“너 아직 배가 덜 고팠구나? 네가 직속으로 들어오면 나보고 그만두라는 말이네. 흐흐.”


내가 망설임 없이(억대 연봉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5초 정도 망설이긴 했지만) 거절하자 그가 놀란 눈치였다. 그를 보러 가는 길에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으니(누가 뽑아준대) 룰루랄라였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펼쳐진 풍경에 홍채가 초록빛으로 물들고 살짝 내린 창문 사이로 연둣빛 바람이 들어와 나를 휘감았다.(헐크로 변하는 거 아님)





녹색 기쁨에 취한 채 그를 만났다. 2년만이었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다가오는 그의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을 보니 제법 베테랑 농부 같았다. 짜식, 사과 매출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만.


“엥? 너 얼굴이 왜 이렇게 좋아졌냐? 심지어 귀티가 난다고 해야 하나. 무슨 일이지?”


내가 진짜 헐크로 변한 것도 아닌데 그는 놀란 눈으로 나를 뜯어보았다. 내가 퇴사하고 마땅한 일도 없이 지내니 분명 얼굴이 썩어있을 거라고 예상했단다. 그래서 재입사 이야기도 꺼낸 건데 안색이 좋고 편안해 보여서 놀랐단다.(후후, 점을 빼긴 했지)


그는 나를 위로해줄려고 했는데 오히려 그가 나에게 위로받았단다. 그는 내게 소고기도 사주고 숙소도 잡아주었다.(사랑한다 친구야) 그는 일도 잘하고 재테크에도 능하다. 직장인이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에 가깝다. 하지만 그는 나를 부러워했다.(나도 네가 부러우니 쌤쌤)





“머리로는 안 죽는다는 거 알거든. 하지만 나는 직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어.”


“마치 번지점프 같은 게 아닐까? 뛰어도 안 죽는 거 알지만 두려워서 못 뛰잖아. 그래도 너는 굳이 안 뛰어도 될 정도로 치열하게 잘 살아왔잖아. 나는 어쩌다가 떨어졌는데 이 출렁거림이 좋아서 사는 거고. 근데 겁나 재밌긴 해.”


분명 좀전까지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서문을 읽고 있었는데 에피소드가 떠올라 쓰다 보니 어느새 길어졌다.(아직 본문은 읽지도 못했는데) 나는 마흔에 평생을 글 쓰는 사람으로 살기로 결단했다. 뜬금없이 스스로 삶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무모한 짓일 수 있다는 거 인정한다. 


하지만 나탈리 골드버그는 말한다.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한 사람은 이미 안정적인 삶에 들어섰다고 말이다. 그러니 삶에서 안정성을 확보하려고 심히 발버둥 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한문화, 16쪽



[이학기 반장 연재]

월 : 이학기 스쿨의 월요일 진로반
화 : 이학기 스쿨의 화요일 독서반
수 : 이학기 스쿨의 수요일 작가반(끝)
목 : 이학기 스쿨의 목요일 직장반
금 : 이학기 스쿨의 금요일 고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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