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장난
나는 지호보다 3살 더 많으니 경력과 이직 경험도 좀 더 많았다. 면접을 많이 본 입장에서 그에게 팁을 말해준 적이 있다.
“안달복달하면 소개팅도 잘 안되잖아? 그것처럼 너무 간절해 보여도 오히려 매력이 떨어질 수 있어. 진정성을 보이되 이 회사가 나랑 잘 맞나 볼까? 이런 태도도 필요해. 가끔 역질문도 하면서. 회사와 결이 맞으면 합격하는 거고, 그 이상 리소스를 많이 들일 필요는 없어. 그럼 더 불안해지니까. 맞는 회사는 평생 찾아가는 것 같아.”
면접도 연애처럼 노력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서류로 드러나는 조건보다 불명확한 어떤 것이 당락의 이유가 된다. 운, 분위기, 결, 취향 같은 것. 우린 가끔은 우리가 을이었던 상황을 전복하고, 엄숙한 상황에서 웃긴 짓을 하는 상상을 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쉽게 통쾌해졌다. 현실에서는 갑을 관계에 굴복했지만…
면접 질문 중에 특히 단점을 물을 때 ‘진짜 단점’을 말할 수 없다는 게 가장 난감했다. 지호는 그걸 갖고 농담했다.
“면접관이 묻고 내가 대답하는 거야. 단점은요? ‘장점이 없는 거요.’
장점은요? ‘단점을 아는 거요.’ “
“흠… 모순 같은데?”
“그럼 ‘패러독스 패러독스’ 노래 부르며 면접장을 나가는 거지. 그 노래에 중독된 면접관이 ‘저 친구 2차 면접 때 한 번 더 보지.’”
연애 상대를 구하는 것도 면접과 비슷하다. 1차, 2차, 최종 면접. 절차도 중요하지만, 입사 이후가 사실 더 중요하기도 하다. 입사(연애 혹은 결혼)하려고 지나치게 자기 어필을 하면 입사 후 기대와 다른 모습이 보이게 되고, 남을 실망하게 한다. 뭐든 잘 한다길래 뽑아놨더니 아닌 것이다. 반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소탈하게 어필하면 입사 후에도 신뢰를 얻는다.
그러려면 면접에서 오바하지 않아야 하고, 잘 보이려는 욕심과 불안을 조절해야 한다. 면접은 썸 기간이고, 연애는 수습 기간으로도 볼 수 있다. 결혼할 때까지는 정규직으로의 전환이 끝나지 않는 기분이었다. 수습 기간에 잘리지 않을까 불안했다. 물론 나도 상대를 자를 수 있겠지만. 나는 면접과 수습 기간에 거의 장점 위주로 어필하고 단점을 숨기는 오바를 저질렀다. ‘진짜’ 단점보다 ‘가짜’ 단점들로 눈속임했다. 그 벌로 지금도 날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하고 있다.
반면 지호는 조금 달랐다. 그도 물론 잘 보이려는 마음이 있지만, 스스로에 대해 잘 알았다. 겸손해도 충분히 어필될 거라는 자기 확신과 안정감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는 자기 단점도 솔직히 말하는 편이었다. 겪어보니 아주 사소한 단점이었고, 사귀고 보니 그 이상의 단점은 없었다. 겸손한 사람에게서 장점을 알아가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정규직 전환은 서로가 파악한 장단점이 맞나 점검해 보는 절차다. 그 사람이 왜 좋은지, 어떻게 좋은 사람인지 풍부하고 뾰족하게 설명할수록 서로에 대한 애정도 솟는다. 나는 면접 질문하듯이 자주 물었다. “내가 왜 좋아?”. 그가 나에 대해 발견해 준 장점들은 세심해서 나조차 발견 못 하던 것들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원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명확히 말해서, 텐션이 딱 적당해서, 물질적인 것보다 배우고 정신적인 걸 좋아해서, 고마워 미안해 등 표현을 잘해서, 감정 기복은 있지만 오래 안 가고 뒤끝이 없어서, 자기계발을 열심히 해서, 곱슬머리와 눈썹 진한 게 좋아서, 자연과 낭만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도 깊이가 있어서.’
음, 합격. 우리는 서로의 면접자와 면접관이 된 후, 최종 전환(결혼)이 되었다. 결정할 때 장단점을 종이에 써가며 따지게 되진 않았다. 나와 결이 맞는지 분위기와 느낌이 크게 작용했다. 회사도 결국 그것 -느낌, 타이밍-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그건 대체로 맞을 확률이 높다.
민정 : 내 장점이 뭐야?
지호 : 예쁜데 덕후 기질이 있어.
민정 : 로맨틱하지 않아... 컷하고 다시!
지호 : 마음 따뜻한데 쿨한 온도의 완벽한 조화?
민정 : 좋아. 합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