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장난
데이트 비용 논란은 언제나 있어왔다. 요즘엔 갈수록 반반 맞춰내는 것에 집착하는 것 같다. 절대 손해를 안 보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남녀를 떠나 더 많이 버는 쪽이 더 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남녀 임금 차이가 있으니 거의 남자가 더 내면 좋다. 어느 문화권에서나 남성이 구애하기 위해 경제력을 과시하는 건 보편적인 문화이기도 하고. 여자 쪽이 염치가 있으면 알아서 어느 정도 부담할 것이다. 물론 여자가 더 벌고 여유가 있으면 더 내도 좋을 것이다. 둘이 만족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핵심은 상대가 내게 돈을 아낀다는 생각이 안 들게 해야 한다. 일단 먼저 안 아끼는 모습을 보여줘야 신뢰가 간다. 그럼 상대도 그만큼 내고 싶은 마음이 자연히 든다. 사랑도 처음부터 재지 말고 듬뿍 줘야 서로 주고받게 되는 것처럼.
이렇게 말하니 돈 갈등이 없었을 것 같지만 우리도 싸운 적이 있다. 돈 가지고 서운한 소리를 몇 번 하고 울기도 했다. 둘의 소비 성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먼저 지호는 태생적으로 짠돌이다. 그가 아플 때면 꼭 ‘안아키’ 집단을 보는 것 같다. 병원비가 아까워 병원도 잘 안 가고 건강 검진도 잘 안 한다. 최애 어플은 당근 마켓, 쇼핑 장소는 다이소, 메뉴는 김밥이나 햄버거다. 미뢰가 발달하지 않았는지 미식 욕구도 없어서 그렇다. 관리비도 아끼려고 난방을 줄이며, 꾸밈 욕구도 별로 없어 옷도 기본으로만 깔끔하게 돌려 입는다.
그의 알뜰(궁상)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어느 날 그는 회사 휴게실에서 남은 밥을 먹고 있었다. 약간 이상한 맛을 느꼈으나 관성처럼 계속 먹었다. 지나가다 그 모습을 본 동료가 말했다. “어머, 그 보라색 쉰 밥을 왜 먹고 있어요!?” 즉시 지호 얼굴이 밥 색깔처럼 보라색이 되면서 수치심을 느꼈다고. 이제 쉰 밥은 안 먹기로 했다.
처음에 나는 내게 돈을 안 쓰는 줄 오해하고 서운해했다. “어떻게 먹는 걸 아껴? 먹는 거로 눈치 주고 엉엉.” (먹는 데 아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거였다…) 내가 우는 걸 보고 지호는 마음 아파하며 먹는 걸로 아까워하지 않겠다고 사과했다. 지금 와선 내게는 정말 후하게 쓰는 거였구나 이해가 된다. 그 입장에서는 나와 격차를 많이 느꼈을 것이다. 소비 습관이 너무 달랐으니.
나는 그와 달리 먹고 꾸미는데 잘 안 아끼는 집에서 자랐고, 월급 대부분을 먹고 입고 배우고 여행하는 데 쓰는 욜로족에 가까웠다. 건강에 신경도 많이 썼고 쉰 밥 따위 먹지 않았다. 월급도 적으면서 소비가 많은 편이었다.
중요한 건 다른 곳에서 돈을 아끼고 애인에게 쓰느냐, 아니면 애인에게 아끼고 자기나 지인들한텐 쓰느냐다. 전자면 원래 알뜰한 사람인데 나를 위해 노력하는구나 생각이 되어 서운하지 않다. 오히려 알뜰한 사람이라 좋은 거다. 후자면 진짜 쫌생이니까 이별해야 된다.
누가 내게 아까워하는 걸 느껴지면 비참하고 싫어진다. 신기한 건 지호는 내가 본 중 가장 알뜰한 축이면서도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게 해준다. 그가 유일하게 덜 아끼는 소비처가 나와 데이트 때 쓰는 돈이어서다. 내 선물을 사려고 자기 밥값을 아끼는 사람이라서. “민정이한테 쓸 돈은 많아. 나 혼자 잘 땐 찜질방에서 자는데 너랑 여행 갈 땐 신경 쓰지.”라고 말해주어서.
서로의 성향을 이해하고 나서는, 실제 소비 습관을 맞춰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는 더 쓰고 나는 덜 쓰고. 데이트비를 아끼는 것이 가끔 답답하기도 했지만, 취미에 돈을 막 쓰는 남자보다 여러모로 알뜰한 남자가 미래 비전을 위해 좋다는 걸 알게 됐다. 결혼할 생각을 하면 지금까지처럼 막 쓸 수도 없었다. 가끔은 내가 제한을 걸 때도 생겼다.
“우리 한 달 데이트 식비를 정해놓고 쓰자. 이번 달은 많이 썼으니까 다음 주엔 떡볶이 사 먹기~”
살다 보니 나도 변하네. 그래, 우리는 (아주 가끔은) 떡볶이로도 행복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