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장난
나는 맛집 탐방에 진심이라 지호를 데리고도 맛집을 꽤 찾아다녔다. 가끔은 웨이팅을 해야 하는 곳도 있었다. 성수동의 한 피자집에서 점심시간에 1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지호는 웨이팅을 싫어하는 타입이라 기다리기 지루해하며 헛소리를 시작했다.
“나 개발자니까 해킹해야겠다. 웨이팅 시스템을.”
“사실 이거 마케팅 아니야? 저기 자리 좀 있는 것 같은데 일부러 기다리게 해서 맛집인 척.”
웨이팅 앱 시스템을 1분마다 폰으로 눌러보며 계속 순서를 확인했다. 요즘 맛집 탐방을 다니려면 예약 및 웨이팅 앱을 까는 건 기본이다. 너무 젊은이 위주에 맞춰진 문화 같긴 하지만 일단 편리하니 대세에 따르고 있다. 내가 지금 몇 번째 순서인지 체크가 되고 차례가 되면 알림도 준다. 그런데 앱 디자인을 잘못한 건지 몰라도, 순서 확인 바로 아래에 ‘예약 취소’ 버튼이 크고 탐스럽게 드러나 있어 누르기 쉬워 보였다. 이러다 손가락 미끄러져서 예약 취소되는 거 아니냐고 웃었다.
“한 팀 남았습니다~ 하는 알림이 뜨는데 수락 버튼 대신 옆에 취소 버튼 누르면? 1시간 기다렸는데 취소되는 엔딩인거지...”
우리는 이상하고 끔찍한 상상을 구체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취소 버튼을 누른다면? 직원에게 실수했으니 봐달라고 떼를 쓰겠지. 그러면 냉정하게 안 된다고 할까? 정 안되면 다른 식당에 가거나 집가서 한껏 우울해하겠지.
웨이팅하면서 요즘 미식 트렌드에 대해서도 논했다. 성수동처럼 핫한 동네엔 무슨무슨 ‘바’가 많이 생겼다. 사실 아주 특별하기보다 이름만 달리한 건데 새롭고 세련되어 보인다. 보통은 술 파는 곳을 바라고 불러왔는데 이젠 별별 곳에 바를 붙인다. 예를 들어 파스타 가게를 파스타 bar라 하고, 오마카세도 bar가 되는 식이다. 보통 술을 같이 팔며 나란히 앉는 바 테이블이 있고, 여러 메뉴를 조금씩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부르는 듯하다.
“사실 모든 메뉴가 bar 가능할 것 같지 않아?”
“맞아. 두부 bar는 어때? 여러 두부 요리를 파는 거지. 피자 포장하는 것처럼 두부도 포장해서 길에서 먹고.”
“이 생각할 듯. 출소했나…?”
그러고도 심심해진 우리는 음식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맨 처음 누가 음식을 발견했을까 상상해 보면 재미있다. 떡볶이를 처음 발명(!)했다고 알려진 사람은 한국 신당동의 마복림 할머님이시다. 그런 식으로 음식마다 누군가 처음 시도를 해본 인간이 있겠지. 수많은 독버섯을 뚫고 식용 버섯을 분류해 낸 최초의 조상은 누굴까? 거의 목숨을 걸고 식량의 가능성을 발견해 낸 사람 말이다. 또 신기한 것은 복어를 처음 먹은 사람이다.
“대체 복어를 먹을 생각을 한 사람은 누굴까? 처음 먹은 사람이 죽고 그다음 사람도 계속 죽는데도 먹을 생각을 했다는 거잖아. 독을 제거하기 전까지. 진짜 신기해.”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걸 신기해하고 있는 지금 우리도 신기하다고. 세상엔 신기한 사람들이 참 많다. 음식이란 목숨을 걸 만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다림 끝에 겨우 식당에 들어갔다. 메뉴판에 화덕 피자 종류가 많아서 피자 bar라도 온 것 같았다. 주문 후 10분 이내에 갓구워져 나온 마르게리따 피자 한 판. 피자를 처음 발명한 사람도 궁금해졌다… 도우는 쫄깃하고 폭신해서 먹으면서도 식욕이 올라오는 듯했다. 웨이팅한 게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이러다 한 판 다 먹겠는데?”
지호는 요즘 시뮬레이션 다이어트를 고안했다고 말해주었다.
“음식을 자제하려면, 시뮬레이션을 해봐. 자린고비처럼 눈으로만 보고 냠냠 먹는 시늉을 하는 거지. 먹고 나서의 포만감, 맛, 기분까지 구체적으로 음미해. 그러면 욕구가 줄어들어. 돈도 아끼고 좋지. 아니면 화장실에서 먹는 상상을 해. 거기서 먹어봐야 진정한 인생의 페이소스를 알 수 있으니까.”
그의 방법대로 피자를 천천히 먹으며 자제하려 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걸 자제하긴힘들어서 결국 다 먹어버렸다. 시뮬레이션 비법이 큰 효과는 없는 모양이었다. 나란히 꺼억거리며 배를 두드리고 있으니 자괴감이 들었다. 둘의 목소리에 힘이 쭉 빠져있었다.
“먹기 전으로 돌아가서 내 뺨을 때리고 싶어...”
“근데 찰싹 뺨 맞으면서도 먹을 것 같아. 아니면 과거의 나를 말리러 간 현재의 나도 맛있어서 같이 먹는 거지.”
음식보다 진기한 헛소리들의 향연에 더 배부른 점심식사였다. 세상에 헛소리 bar가 있다면 우리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