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장난
지호의 마인드컨트롤 비법이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넌 우울할 때 웃긴 걸 봐? 아님 힐링되는 걸 봐?”
“우울하면 스탠드업 코미디도 안 웃겨. 난 그럴 때 법륜스님을 봐.”
법륜스님은 항상 본질을 해답으로 제시하신다. 가령, “결혼 생활이 괴로운데 어떡할까요?”
하면 “이혼하면 되죠. 아니면 참고 사세요.” 들으면 그게 뭐야, 기가 차기도 하지만 곱씹을수록 그것이 정답인 것이다. 지호는 좀 더 설명을 내게 맞춰 잘 해주는 버전의 스님이다. 자칭 법륜스님의 ‘수제자’라고 하며 ‘공즉시색 색즉시공’을 외친다. 그러면서 내 머리에 손을 얹는다. “중생이여...”
지호는 알아갈수록 스님급 마인드를 가졌다. 1년에 화를 내는 적이 한두 번 정도고 그것도 미약하게 낸다. 본인의 사리사욕과 분노, 어리석음을 인지하고 조절해 낸다. (불교에서 ‘삼독’- 탐, 진, 치) 타인을 자신이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화가 안 나는 거다. 그래서 마음속 깊이 꼬인 데도 억울함도 없다.
화를 낼 때면 생명체가 아닌 무생물인 기계에만 낸다. 컴퓨터나 게임이 잘 안될 때… 나중에 지금보다 더 AI의 시대가 될 때, 기강을 잘 잡아줄 인재인 것이다.
나는 스님의 반대, 화님이다. 욕심도 어리석음도 있고 부당한 것에 분노를 잘 느낀다. 화난 걸 티 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속으로 참는다. 연락을 씹거나 나를 무시하는 친구, 부당하게 업무 지시하던 상사, 대중교통에서 젊은 여자라고 툭 치고 지나가는 어른들에 화가 많이 쌓인다. 쌓아두다 보니 화병이 폭발 직전이 된다. 어떤 이는 내 성향이 예민하고 부당한 걸 못 견디니 마음 수련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인생의 진리는 고통에 매여있지 않고 내려놓는 것이다. 모두 알지만 실천을 못 하는 사람이 98%쯤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인생이 고통인 것 아닐까? 나는 그 98% 중에서도 심한 편인데 다행히 2%에 드는 희귀한 인간의 힘을 빌려 마음 수련을 하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주로 내가 화를 내거나 우울해하면 지호가 달래주는 패턴이 되어 미안하긴 하지만. 지호는 무작정 위로하고 내 편만 들기보다는, 내가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도와주는 균형감 있는 스승이다. 원인 제공자에 분노하기보다 그 분노가 건드려지는 내 마음이 관건이라고, 그 트리거를 파악해 보자고 한다. 처음엔 내 편에서 공감을 덜 해주는 것이 서운하기도 했지만 마음을 고쳐먹었다. 간신 말고 충신처럼, 쓴소리도 할 수 있는 바른 사람을 곁에 두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까.
“안 불행한 게 바로 행복한 거야. 너무 좋은 감정, 싫은 감정이 극단으로 안 가게 연습하는 게 필요해.” 심호흡을 시키고 달래준다.
동작으로 하는 훈련도 있다. 고통은 ‘놓으면 된다’는 명제에 의거한 것. 동작과 말을 같이 하면 더 효과가 있다고.
“우울과 고통을 놓으라, 고통 멈춰! 고통 놓으라우.”
말투는 좀 이상하지만 주먹을 쥐었다 펴는 동작을 무슨 구호 캠페인처럼 고안해 내서 알려준다. 그 정도 하면 나는 어이없어서라도 불안과 화를 멈추고 웃게 된다.
“이거 정말 효과 있다! 캠페인으로 유튜브에 올려볼까?”
물론 지호는 속세에 관심이 없어 유튜브 출연을 거절한다.
반대로 내가 지호를 도와줄 때도 가끔은 있었다. 그도 사회 초년생으로서 회사에서 힘들 때가 있었다. 한창 자존감이 깎이고 있을 때 나는 그에게 기운과 웃음을 주고 직장 짬밥에서 나온 경험치도 말해주었다. “이미 일어난 일이야.” 라거나 “점심때 너만의 시간을 가져.” 같은 것. 그는 나 덕분에 그 기간을 버틸 수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우리의 마인드컨트롤 법 중 하나는 힘들 때 우주를 생각하는 것이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말했던 ‘창백한 푸른 점, 지구’. 작은 점에서 사는 먼지만 한 우리가 지지고 볶고 해봤자 금방 죽고 사라질 것이다. 모든 건 ‘공’에 가까우니 집착할 필요 없다는 불교 사상과 맞닿아있다. 무수한 별들과 우주의 이미지를 눈을 감고 떠올려본다. 지호는 더 나아가 칼 세이건은 성인이 될 만하다며, 그의 저작 <코스모스>는 경전 같다고도 했다. 쓰고 보니 새로운 사이비교 창시자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우주까지 가야 인생을 버틸 수 있다.
저번엔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이런 말을 해줬다.
“언니, 남친 만나고 나서 좀 달라졌어. 전보다 좀 더 유순해지고 남을 배려하는 센스가 더 생겼달까? 좋은 영향을 받는 것 같아. “
“그래? 신기하다.”
생각해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대체 이전엔 내가 어땠길래… 나랑 친구 해준 게 고마워져서 친구에게 술을 더 따라줬다. 내 잔에 술을 따르면서는 지호 스님에게 마음속으로 합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