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무국은 좋아하지만, 선지해장국은 싫어하는 사람

세 번째 진담

by 제제

갑자기 초겨울 날씨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넘이선이 때아닌 가을비로 흐릿해지더니, 단풍 구경할 틈도 없이 겨울이 냉큼 찾아왔다. 달력은 아직 10월 말인데, 갑자기 가을을 도둑맞은 기분이다. 하지만 날이 쌀쌀해져서 좋은게 하나 있다.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소고기무국’을 먹기 좋은 계절이라는 점!


어깨와 등으로 찬바람이 스며들어 온몸에 서늘한 기운이 돌 때, 어김없이 엄마에게 요청하는 것이 바로 이 소고기무국이다. 뜨끈하고 칼칼한 국물 한 그릇 먹고 나면 몸도 마음도 후끈 데워지는데, 그래서인지 요맘때는 다양한 국밥을 즐겨 찾게 된다.

며칠 전 그런 이유로 자주 가는 해장국 집에 들렀다. 늘 먹던 뼈다귀해장국을 주문하려다 문득 다른 메뉴가 눈에 들어왔다. 양평해장국, 그러니까 선지가 든 해장국이다. 그러고 보니 선지해장국을 먹은게 언제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을 만큼 아주 오래전에 딱 한 번, 양평 맛집이라던 식당에서 먹은게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내가 왜 이걸 안 먹게 됐지?’ 이유를 떠올려 봤지만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순간 호기심이 일었다. 마침 이번 에세이 소재도 음식에 대한 것이니 한번 먹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호기롭게 주문했다.

뚝배기 그릇에 선지와 우거지가 가득 담긴 해장국이 놓이고, 약간은 비장한 마음으로 숟가락을 들어 국물부터 한 입 떠먹는다. 다행히 그간 먹던 해장국과 엇비슷한 맛이다. ‘오케이, 여기까진 통과.’

이번엔 선지 한 덩어리를 건져서 바라본다. 구멍 자국이 있는 모양새가 얼핏 보면 현무암 같기도 한데 먹기에 거부감이 들거나 하진 않았다. 조심스레 입에 넣어서 씹다 보니 물컹하다기엔 살짝 단단하지만 뭔가 부스러지는 듯한 기묘한 식감과 텁텁한 맛. ‘이거 때문이었구나. 내가 그동안 선지해장국을 안 먹었던 이유.’ 결국 식당을 나설 때까지, 선지는 그릇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분명 뭘 먹긴 먹었는데 먹은거 같지 않은 알맹이 빠진 저녁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며 잠시 이런 생각을 했다. 막연히 먹지 않던 음식도 시간 내어 찬찬히 음미하며 먹어보니, 그것의 어떤 부분이 싫은지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인지 잘 이해할 수 있구나.

그동안 어지간한 음식은 다 맛있게 먹는 편이라

‘난 크게 호불호가 없는 사람’ 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나는 분명 ‘소고기무국을 좋아하고, 선지해장국은 싫어하는’ 그런 사람인 거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좀 웃기다. 그래봐야 음식 취향을 알게된 것뿐인데 이게 뭐 대단한 발견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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