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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키세라믹 Oct 04. 2024

골든타임을 찾아가는 중

딸이 출산하면서 아내는 할머니가 됐습니다.

출산 후에 조리원에서 보내는 동안에 손녀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은 여느 할머니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코로나가 재 유행하면서 조리원을 방문할 수 없어서 조급증은 심했습니다. 딸의 건강도 걱정이 되고 딸을 출산했던 과거와 다르게 제한적인 병원 시스템도 아내의 기준에 마땅치 않았습니다.

미역국은 먹고 있는지 산후조리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딸과 주고받는 카톡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딸은 병원의 의사가 제시한 기준에 충실한 상위 1퍼센트의 모범적인 임산부였습니다. 개월수가 정한 자신의 체중과 태아의 몸무게를 기준에 맞춰갔고 정기검진 때는 진학 상담을 하는 상담교사의 입꼬리를 내려가지 않게 해 주고 왔습니다.


좋아하는 과일도 저울 위에 올라갔다 내려와야 손에  들었습니다. 없어 못 먹던 과일을 내려놓을 때는 태아의 몸무게를 걱정했습니다.

태아도 엄마의 다이어트 덕분에 담당의사의 칭찬을 엄마와 함께 들었으며 태중의 손녀도 상위 1퍼센트의 모범적인 태아로 성장해 갔습니다.


아내는 무엇이든 잘 먹어야 태아에게도 좋다는 평범한 관습대로 사과 반쪽을 권해지만 아내의 딸은 냉정 했습니다. 비난의 화살은 담당의사에게 쏟아졌습니다.

담당의사는 결혼은 했는지, 출산의 경험은 있는지, 그 사람의 혼인 여부보다는 출산여부에 관심이 많았으며 딸을 철저하게 세뇌시킨 진료방식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딸의 몸무게는 태아의 몸무게를 제하면 임신 전과 같아서 아내를 욱하게 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지나친 과욕을 부리는 운동 코치처럼 남의 귀한 딸을 매도할 때는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내 입장은 미안함과 별개로 아내의 편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위에게는 딸을 출산한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과거와 지금은 출산 전 임산부의 진료부터 아이 건강체크까지 모든 시스템이 다른 것을 알면서도 저는 경험치를 자랑거리로 만들었습니다.

출산이 임박해서 통증이 분단위로 짧아지면 우선 집안을 정리하고, 못다 한 설거지를 끝마치고 출산준비물을 챙겨서 병원에 가도 경험상 충분하다고 말했지만 설거지는 했는지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착실한 범생이 딸은 모의고사부터 성적관리를 잘한 덕에  무사히 출산을 했고 저처럼 예쁜 딸을 품에 안았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진학 상담교사에 대한 칭찬에 인색했습니다.


딸은 산후 조리원에서 퇴원하고 산후 관리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위의 출근과 퇴근 전에 딸의 음식과 손녀의 목욕까지 캐어하고 집안일도 도움을 주었습니다.

산후 관리사는 일가사람의 지나친 참견은 지침에 위배되고 자신의 업무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잦은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아내가 머뭇거리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친정엄마의 오래된 관습과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하여 골든 타임이 지나는 것 같아서 또 한 번 조급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딸은 건강하게 산후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친정엄마대신 관리사의 케어를 받으며 삼십여 일 후에 친정 엄마와 감동적인 조우를 했습니다. 하지만 친정엄마의 골든 타임은 효력을 잃었고 색이 바랬습니다. 

딸의 입맛은 엄마가 잘 알고 있어서 무엇이든 먹이려 했지만 미디엄으로 변한 맛을 웰던으로 되돌리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짧은 입맛이지만 그래도 친정엄마의 손맛은 기억하고 있어서 엄마를 찾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딸은 퇴원 후에도 수험생의 생활이 몸에 남아 있어서 결혼은 했는지 출산은 했는지 모를 담당의사의 지침을 

충실하게 지키려고 했습니다.

유축하여 모유를 먹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모유만 먹였으며 섭취의 간격을 정확하게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다만 시간은 우리의 개념에 속하는 것이라서 손녀는 배고픔의 시간을 생체리듬에 적용했기 때문에 배고픈 것을 딸의 시간과 맞추지 못했습니다.


딸은 습관을 들여야 했고 손녀는 35일의 인생으로 엄마의 사정을 이해하기에 아직 어렸습니다. 

친정엄마의 기억 속에는 분명 딸이 울면 먹였고 작은 혀로 물리치면 거두어들였던 기억만 남아 있어서 서둘러 먹이려 했지만 딸은 완강했습니다. 상담교사가 정해준 수유시간을 지키려는 모범적인 딸과 손녀는 그럴수록 더욱 완강하게 대립했습니다. 

아내는 안쓰러웠고 손녀는 그만의 완강한 표현을 크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내의 큰소리가 표정에 그대로 묻어났습니다. 


" 그래 내 딸 배고프니?  지딸 배고프지 "  


불편한 잠자리와 수면부족인 상태로 딸의 집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돌아오는 아내는 피곤한 것을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친정엄마의 지나가버린 골든타임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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