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여행 14일차 _멕시코시티_프리다 칼로 박물관
멕시코의 아침이 밝았다. 간만에 좋은 숙소에서 잠을 자서 아침부터 기분이 상쾌했다. 오히려 숙소에 대한 만족감이 숙면을 하게 했다고나 할까. 멕시코에서의 조식은 입장하기 전에 자리 확인을 하고 좌석으로 안내를 하는 것이 쿠바와 달랐다. 약간 격식이 있다고나 해야 할까. 식당에는 대부분 동양사람, 아니 한국 사람이다. 어제 입국시에 만난 남미를 갔다 오신 팀도 머물고 있었고 많은 한국 분들이 우리와 같은 호텔에 묵으셨다. 필라르 형님과 신나누님이 합석하셨다. 아직도 남은 컵라면을 가지고 오셨다. 어제 한식으로 배불리 먹었어도 컵라면 국물이 당기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오늘은 모든 짐을 싸 가지고 체크 아웃을 해야 한다. 오늘 관광이 끝나고 나면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한다. 한 두 분씩 나오신다. 호텔 내에 기념품을 사는 곳에 아내와 누님들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우리를 안내할 다니엘 장 사장님의 마음과는 달리 예쁜 파우치는 사는 쪽에 관심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다니엘 장 사장님이 계획하신 코스는 3군데이다. 먼저 프리다 칼로 기념관을 갔다가 태양의 피라미드를 보고 반대편에 있은 소미야 미술관까지 보는 것이라고 한다. 멕시코도 인구와 차가 많은 도시라서 이 계획이 잘 되려면 교통상황이 도와주어야 한다. 우리는 멕시코 시티 남부에 있는 프리다칼로 미술관으로 향했다. 가는 중에는 우리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는 가이드님의 설명이 이루어진다.
멕시코는 박물관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박물관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나라보다도 박물관 입장료가 4배 정도 비싸다고 한다. 멕시코는 1905년에 내전으로 혁명전쟁이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은 32년간 장기집권 했어도 국민들은 정치권에 별 관심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부패가 일어나자 학생들을 주축으로 운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멕시코는 문맹률이 약 60%라고 한다.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라고 한다. 멕시코 남자들은 만 20세가 되면 1년간 병역의 의무를 져야 한다고 한다. 특히 멕시코는 해안선이 1만 km미터로 길어서 국방부에 준하는 해군부가 별도로 있다고 한다. 지금의 미국 샌프란시스코가 원래는 멕시코 땅이었다고 한다. 1947년에 미국과 전쟁으로 샌프란시스코를 빼앗기고 샌디에이고까지 국경이 밀렸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과의 국가간의 감정이 좋지 않다고 한다. 아마도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라고 할까.
버스가 멕시코 시티 도심부를 벗어나니 도로 좌우변에는 높은 언덕이 펼쳐지고 거기에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예전에 우리나라 서울의 달동네를 연상하는 분위기였다. 실제 멕시코시티를 벗어나면 달동네 같은 집락촌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집을 유난히 눈에 띄는 색깔로 칠한 집들이 있다. 그 집은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에서 그 집을 당을 표시하는 색깔로 색칠해 준다고 한다. 달동네에 어떤 색깔의 집들이 많이 있느냐에 따라 지지 정당이 우세 여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멕시코시티는 시장이 바뀔 때마다 대중교통의 색상이 바뀐다고 한다. 현재는 버스나 지하철에 핑크색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시장이 여자라고 한다. 참 재미있는 발상이기도 하는데 시장이 바뀔 때마다 차량의 도색을 하면 돈을 지원해주는지는 물어보지를 못했다. 그리고 행정이 최소 단위 기관장은 전부 단임제라고 하며 서민생활에 대한 관심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멕시코도 빈부의 차이가 심하고 자신의 가족만 잘 챙기고 살면 된다는 생각이 있기에 다른 사람을 의식하거나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않는 다고 한다.
버스가 오랜 시간을 달려서 프리다 칼로 미술관에 도착했다. 미술관의 위치는 도심의 한적한 곳에 있는 듯하다. 벌써 우리보다 먼저 와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우선 눈에 보이는 것이 지금까지 보아온 파란 색과는 무언가 다른 독특한 파란색이었다. 프리다 미술관은 푸른 집, 카사 야술(Casa Azul)로 불리는 푸른색은 처음 보는 색상으로 커다랗게 난 초록생 창살 색상과 무척 잘 어울렸다. 프리다 미술관은 프리다가 나고 자랐으며 그의 남편, 디에고와 함께 25년을 살았던 곳이다. 프리다가 47세(1954년)에 죽고 나서 디에고가 1958년에 정부에 기증했다고 한다. 1층은 전시장과 생활공간으로 되어있고 2층은 프리다의 스튜디오와 방이 있다.
멕시코에 오기 전에는 ‘프리다 칼로’와 ‘리베라 디에고’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아니 처음 듣는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멕시코를 대표하는 화가이고 멕시코를 예술적으로 유명하게 하는 대표화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물론 두 사람의 삶도 다른 사람의 삶과는 달랐다. 리베라 디에고는 국민화가로 불리며 마르크스 사회주의자였다고 한다. 멕시코 대통령의 프레스코 벽화를 그릴 정도로 유명하며 아내 프리다 칼로는 18세때 전차와 버스가 부딪히는 사고로 인해 여성으로서 끔찍한 사고를 겪어내고 초현실주의 화가로 남편 리베라 디에고와 함께 멕시코 전톤 문명과 예술을 접목시킨 사람으로 유명하다.
두 사람의 애증관계도 알고 나니 유명하다. 예술가는 다 그렇다고 치부하기에는 그렇지만 리베라 디에고는 여성편력이 있었다. 프리다 칼로가 첫 번째 부인도 아닐 뿐더러 프리다 칼로와 결혼하고 이혼하고 재결합까지 했으며 심지어 프리다 칼로의 여동생을 포함해서 많은 여성들과 염문을 뿌리기도 한 사람이었다. 프리다 칼로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18살에 끔직한 사고를 당하고 휠체어에 의지해서 살았던 여인이 죽기 4년전에는 힘든 병에 걸려서도 골수 이식과 누워서 전시회를 여는 등의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남편 리베라 디에고에 대한 집착적인 사랑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미술관은 미리 예약을 허거나 예약 없이 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가이드가 기다리면서 상인들이 파는 물건을 사도 무방하다고 하나 먹는 것은 사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여기의 길거리 음식은 위생 상태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좋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멕시코 사람이 면역력이 강하다고 한다. 잠시 후에 여왕벌님과 로이스님이 츄러스를 사셨다. 맛을 보라고 하나씩 권하시는데 가이드님의 말이 생각나서 받아먹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 중국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번지고 있는데 말이다. 가이드님이 아마도 ‘천 번’은 같은 기름에 튀겼을 츄러스라고 하니 더욱 먹기에 찜찜하다. 기다리는데 프리다 칼로의 작품으로 만든 짝퉁 스카프를 정품을 파는 미술관 앞에서 판매한다. 저작권이나 이런 개념은 아직은 없는 것 같다. 누님들이 하나씩 마음에 드는 색상으로 구입해서 하나씩 걸치시는데 썩 잘 어울리신다.
이제 우리의 입장 차례가 되었다. 입구는 생각보다 작다. 실제 박물관으로 만든 집이 아니고 개인집이기에 입구가 비좁다. 입구뿐만 아니라 전시되어 있는 곳곳에 해골 또는 이상하게 생긴 형태의 인형이 보인다. 이것은 ‘알레브리헤’라고 하는 예술적 괴물이라고 하다. 멕시코에만 있는 상상속의 동물이라고 한다. 페드로 리나레스가 만든 것인데 종이 인형으로 만들어서 팔게 되었고 갤러리 사장이 디에고와 프리다에게 소개하면서 프리다도 이 인형을 사랑하게 되었다.
입구를 벗어나면 미술관의 포토존이 보인다. 파란색 벽에 붉은 색의 액자 테두리를 한 형태로 진진흙으로 만든 것 같은 두상 인형이 존재하고 디에고와 프리다가 1929-1954년까지 같이 살았다고 써 있는 것 같다. 1층으로 이어진 전시실은 프리다가 생전에 그렸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물론 그가 그린 자신의 자화상과 가족 그림, 그리고 사진과 쓰던 물건들이 잘 전시되어 있다. 여기에 오기 전에 공부를 하고 왔어야 하는 후회가 든다. 쿠바 공부를 하면서 멕시코에 대해서, 특히 프리다에 대한 책을 한 권이라도 읽고 왔다면 더욱 좋았을 것 같은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림이 전시회를 일부러 쫓아다니면서 화풍 위주로 공부를 했지만 프리다 칼로의 그림은 처음 보기 때문이다. 아직 초현실주의자 그림은 접해보지도 않았고 학교에서 배운 미술책에도 소개되지 않은 그림이라서 더욱 난감했다. 안에 놓인 휠체어는 그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이 집에서 생활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프리다는 누워서도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서 침대 위에 거울을 붙여놓고 그렸다고 하니 참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다. 그리고 작업실에 들어서니 잘 정리된 화구나 물감이 얼마 전까지 작업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미술관 곳곳마다 전시되어 있는 소품은 프리다 칼로의 예술 세계를 보여주는 듯 하다. 남성들 보다는 여성분들이 자세히 보시는 것 같다. 전시실을 벗어나니 넓은 정원이 나온다. 넓은 정원 속에 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도 보이고 한 쪽에는 기념품을 파는 상점도 보인다. 상품도 다양한 데 가격이 제법 쎈 편이다. 공부를 하지 않고 오니 오히려 관람시간이 나에게는 남는 편이다. 유일하게 여기에 올 때 공부를 하지 않은 후회가 자꾸만 든다. 돌아가면 늦었지만 멕시코를 대표하는 화가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은 무얼까?
프리다 칼로 미술관을 둘러보고 멕시코 시티로 향하면서 점심 식사를 하러 멕시코 현지 식당으로 향했다. 주차장 크기뿐만 아니라 식당 내부도 매우 넓었다. 뷔페식으로 갖추어진 식당이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실제 입맛에는 별로 맞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볶음 고추장 튜브 2개를 방출했다. 이것이라도 있어야 야채와 밥을 비벼 먹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긴 저녁에 전라도 한식을 먹고 비행기를 탈 수 있으니 점심은 간단히 먹어도 된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