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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이강대 선생님

 

by 걷고 May 14. 2022

 드디어 60개 코스 860km에 달하는 대장정 시작이다. 이틀 전부터 배낭을 다시 꾸리며 내용물을 확인한다. 오래된 비상약은 버리고 새로 준비한다. 비상약 보관함 속에는 근육통 젤, 근육 이완제, 붕대, 상처에 바르는 연고와 일회용 밴드, 지사제 등이 있다. 비옷 겸용 방풍 점퍼와 에너지 바 같은 간식, 혹시 쓸모가 있을 것 같은 끈, 휴대전화 보조 배터리, 충전 용품 등이 들어있다. 배낭 챙기는 모습을 보며 아내는 앞으로 경기 둘레길을 걸으러 나갈 때 점심 식사와 과일을 챙겨주겠다고 한다. 걷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것 같아 우쭐해진다. 60대 중반의 나이에 아내에게 무언가를 인정받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고마운 일이다.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아내 앞에서 배낭 정비를 하며 설렘이 시작된다. 경기 둘레길을 생각하면 산티아고가 떠오른다. 그 이유는 바로 800km라는 거리가 주는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자유로웠고 행복했던 시간이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시간이다. 그만큼 산티아고 길은 단순한 길이 아니고 삶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만큼 의미가 큰 길이다.      


 함께 걸을 길동무들과 구래역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하며 완주를 다짐한다. 참석자들의 얼굴과 몸에서 기대감과 설렘이 느껴진다. 그 설렘이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구래 역에서부터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역에서 시작점인 대명항까지 택시를 이용할 생각이었는데, 택시 승차장에 택시가 없다. 열 명의 인원이 모두 무사히 대명항까지 가야 하는데 택시를 이용할  수 없게 되자 길 안내자로 신경이 쓰이며 동시에 약간의 불안감이 몰려온다. 전국의 교통 상황이 서울과 같다는 착각을 했던 안일함이 문제였다. 마냥 기다릴 수만 없어서 경기 둘레길 안내 책자에 나온 정보대로 버스 정류장에서 대명항까지 60-3번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경기 둘레길을 모두 걸었던 지인은 홈페이지에 나온 교통편보다는 미리 다녀온 사람들의 경험을 검색해서 결정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택시를 타거나 부르는 일도 서울과는 많이 다르다는 조언도 들었다. 그 조언을 흘려들었던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후회감이 몰려오면서 평상시 사람들 말에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든 나쁜 상황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길동무 한 분이 조금 늦게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 조바심을 내고 있었는데, 고맙게도 버스 기사님께서 정류장에서 우리를 위해 기꺼이 기다려주셨다. 다음 버스 도착까지는 30분 이상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다. 운전을 하는 모습도 서울의 기사님들과는 사뭇 다르다. 승객들 개개인을 잘 아시는 듯 승객들과 반갑게 인사도 하고, 정류장과 상관없이 그분들이 편안한 곳에 내려주시기도 하고, 하차 시 태그를 해서 돈을 아끼라며 당부의 말씀을 하기도 한다. 대명항에 내려주시며 즐겁게 걸으라는 인사 말씀도 해 주신다. 서울이 아님을 실감하며 서울은 참 살기 힘든 각박한 동네라는 생각이 든다.     


 대명항에 도착해서 경기 둘레길 시작점까지 찾아가는 길을 몰라 헤매고 있었다. 길동무 중 한 사람이 전에 와 본 적이 있다며 앞장서서 길을 안내한다. 출발부터 길 안내자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역할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리더가 반드시 리더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할 필요가 없다는 뻔뻔한 생각을 하며 스스로 위로한다. 누군가가 리더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따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리더와 추종자의 벽이 무너지면 누구든 앞서 가는 사람이 리더가 되고 뒤따르는 사람은 추종자가 된다. 상황에 따라 리더와 추종자의 입장이 바뀌기도 한다. 걷기 동호회에서 만난 우리는 모두 리더이자 추종자이다. 이 길을 걷기 위해 사전 답사를 할 수도 없었고 하지도 못했다. 따라서 앞으로 이 길을 걸으며 길 위에서 헤맬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길동무들이 모두 힘을 합해 길을 찾고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길치이자 지도조차 잘 못 보는 사람이 이 길의 리더로 자처한 일이 이미 스스로 발등을 찍은 꼴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시작을 해야 이 길을 걷기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걸을 수 있다. 리더라는 생각보다는 동호회에 공지를 올려 함께 걷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면 된다. 리더 또는 길 안내자라는 표현보다는 동호회 카페에 공지를 올리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맞다. 포기하지 않고 완주할 때까지  공지올리고 참석자들과 함께 꾸준히 걸을 수 있는 사람, 이 길에서 포지셔닝 한 나의 정체성이다.  

    

 길을 걷는데 우리 걷는 방향과 반대편에서 한 분이 밝은 미소를 지으시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분의 미소와 여유가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경기관광공사 운영기획팀 김포시 평화누리길 담당관 이강대 선생님이다. 우리들에게 힐링이 되길 바란다고 반갑게 인사를 하신다. 우리도 인사를 드리며 경기 둘레길을 걷는 걷기 동호회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쇄암리 쉼터에서 쉬며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데 이선생님이 오셔서 인원수에 맞게 물과 평화누리길 배지를 선물해 주셨다. 고맙다. 이선생님은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시며 자신의 명함을 한 장 건네주셨다. 혹시 도움을 청할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 명함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처음 나온 한 사람(K)이 뒤쳐져서 선두와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나는 중간에서 속도와 거리를 조절하며 걷고 있었다. 일행 중 잘 걷는 한 사람이 K와 함께 걸으며 후미를 맡아 준 덕분에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K는 쇄암리 쉼터에서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진퇴양난이다. 길동무 중 한 사람이 근육통 이완 젤로 마사지도 해 주고, 근육이완제도 꺼내어 주고, 전해질이 포함된 건강보조제를 물에 타서 마시라고 전해주며 친절하게 응급처치를 해주었다. K는 더 이상 걸을 수 없다고 하며 포기 의사를 밝혔다. 교통편이 큰 문제다. 경기 둘레길 1코스는 철책을 따라 걷는 길로 교통편이 없다. 고민하다 이강대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택시를 부를 수 있는지 여쭤보았다. 택시가 쇄암리 쉼터까지 오지 않는다며 당신이 직접 차를 몰고 와서 택시 탈 수 있는 곳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겠다고 한다. 20분쯤 후에 도착하셔서 K를 택시 타는 곳까지 태워주셨고, 안전하게 택시 태워 보냈다는 문자도 보내주셨다. 감사의 답변을 문자로 드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고, 생전 처음 만난 분 덕분에 무사히 첫 길을 마칠 수 있었다. 세상은 우리의 의지, 기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다. 세상이 운영되는 방식이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이 둘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 물론 아주 드물게 교차되는 지점도 있지만, 아주 짧은 찰나에 불과할 뿐이다. 주어진 상황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노력들은 대부분 허사로 끝나거나 오히려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빨리 서둘러 해결하려다 지치는 경우가 많다. 마음 편안하게 기다리며 에너지를 아끼는 지혜도 필요하다. 그 에너지는 다시 지금 주어진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이 된다. 우연히 만나 큰 도움을 주신 이강대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진행하는 데 문제가 발생해서 모든 참석자들이 함께 이 첫 길을 완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길을 걷는 내내 이선생님이 많이 떠오를 것이고, 어쩌면 연락을 드릴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번거롭게 만들어 드리는 일 때문이 아니고 그분의 점심을 준비해서 함께 먹으며 길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문수산성 앞에서 3000번 버스를 타고 합정역에 내렸다. 식사한 후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며 오늘 걸은 길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자신의 속 얘기를 꺼내놓기도 하며 길동무들과의 우정도 쌓아간다. 각자 의견을 나누며 서로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또한 서로의 얘기를 통해 배우기도 한다. 부모님의 죽음, 그리고 우리의 죽음에 대한 얘기도 나눴다. 죽음은 기다리는 것이 맞을까, 맞이하는 것이 맞을까? 죽음은 선택할 수 있는 일일까? 아니면 하늘의 뜻이니 그 뜻에 따르는 것이 맞을까? 길을 마치고 죽음 얘기를 한다. 길과 인생이 같기 때문이다. 길의 시작과 끝이 있듯이, 인생도 태어남과 죽음이 있다. 반드시 그럴까? 아니다. 길은 애초부터 시작과 끝이 없다. 마찬가지로 삶도 시작과 끝이 없다. 길은 늘 거기에 그대로 있어왔다. 다만 길의 방향, 모습, 크기만 잠시 변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 역시 늘 거기에 그대로 있어왔다. 시간의 흐름 속에 삶과 죽음의 모습으로 잠시 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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