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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둘레길을 시작하며

by 걷고 May 09. 2022

 최근에 TV에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영화를 우연히 시청하게 되었다. 아주 오래전에 봤던 영화인데, 마치 처음 보는 영화처럼 모든 장면과 내용이 새롭다.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대사, “작은 균형을 무너뜨려야 더 큰 균형을 잡을 수 있다”가 기억에 남는다. 작은 균형이란 스스로 만들어 놓은 하나의 틀이다. 우리는 자신의 틀을 만들고 그 틀 안에 갇혀서 안정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 틀로 세상과 사람, 상황을 바라보고, 판단하고, 결정하며 살아간다. 살아가기 위해서 또는 생존하기 위해서 만든 자신의 틀이 성(城)이 되어 자신을 지켜준다. 하지만, 그 틀 안에만 갇혀 산다면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키워나갈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틀을 깨고 나와야만 더 큰 세상을 경험하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정체성은 생존의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더 큰 자신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체성을 부술 필요가 있다. 정체성이라는 벽이 무너지면 '나'와 '남'이라는 경계가 사라지고 온 세상과 자신이 하나가 되는 자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경기 둘레길을 걷기로 한 이유도 바로 ‘작은 나’의 틀을 부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함께 어떤 일을 도모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혼자서 무언가를 시작하고 꾸준히 지속하는 일은 조금 익숙해져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은 여전히 불편하고 어렵다. 나와 다른 생각과 행동 패턴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지 못해서 불편하고 불쾌할 때가 제법 있다. 소심한 성격으로 갈등을 말로 편안하게 풀어내는 용기가 없어서 마음속 침전물로 남아 있기도 한다. 이 침전물이 외부 자극과 마주치게 될 때 갑자기 끓어오르며 자신과 주변사람들을 힘들게 만든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조금씩 극복해 나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과 함께 어떤 일을 도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말로 갈등을 풀어내지는 못하지만, 세월을 통해 갈등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가 생겼고,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는 연습을 꾸준히 한 결과 불편함은 많이 사라졌다. 나 자신의 의견이 맞는다고 주장할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들여도 삶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늦었지만 이제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이 역시 나의 틀을 없애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성과다. 나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강하게 주장하거나 반드시 관철시켜야만 되는 일은 일상생활 속에서 거의 없어 보인다.

   

 이번 주 금요일인 2022년 5월 13일부터 매주 걷기 동호회인 ‘걷기 마당’의 길 안내자로 경기 둘레길을 진행하며 회원들과 함께 걷는다. “경기 둘레길은 경기도 외곽을 한 바퀴 돌아 원점 회귀하는 총길이 860km의 순환 둘레길로 경기도와 15개 시, 군이 협력하여 조성한 사람, 문화, 자연이 함께하는 길입니다. 둘레길은 총 60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으며 길의 특징을 담아 4개의 권역으로 나눠집니다.” (경기 둘레길 홈 페이지)  총 60개의 코스, 860km에 달하는 이 길은 매주 걸어도 1년 이상 걸리는 긴 여정이다. 사전 답사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길 안내자로 걷기를 진행을 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설렘,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을 느낀다. 이 길을 시작으로 코리아 둘레길도 걷고 싶고, 아직 남아있는 지리산 둘레길도 마무리하고 싶다. 제주 올레길도 완주하고, 우리나라의 구석구석에 조성된 길을 가능한 한 많이 걸으며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다. 그리고 나이 더 들기 전에 다시 한번 산티아고 길을 걷고 싶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평생 쌓아 놓은 마음의 성벽을 길을 걸으며 허물고 싶다. 사람들과 자연, 주어진 환경과 하나가 되는 자유인이 되고 싶다.     


 안내자가 되기로 한 이유는 세 가지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걷고 싶기 때문이다. 이 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구간도 놓치지 않고 걷고 싶다.  두 번째 이유는 혼자 걸으면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길 안내자를 자청했다. 책임을 맡으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마무리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 이유는 혼자 걷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낯선 길을 혼자 걸으면 괜한 두려움이 몰려오기도 한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정확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길 안내자로 걸으면 책임감과 길동무들 덕분에 완보할 수 있고, 함께 걸으면 홀로 걷는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에 길 안내자를 자청한 것이다.   

   

  사찰을 ‘선불장(選佛場)이라고도 한다. 부처를 뽑는 장소라는 의미이다. 사찰 내에는 수많은 수행자와 신도들이 모여 함께 살고 있다. 따라서 수많은 상황들이 발생한다.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마음공부의 소재로 만들어 가는지 배우고 시험하는 장소가 바로 사찰이다. 우리네 삶의 현장도 선불장이고, 함께 걷는 길도 선불장이다. 경기 둘레길을 홀로 걷는 것이 아니고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걷는다. 출발 지점부터 종료 지점까지, 시작부터 마무리할 때까지 참석하는 회원이 즐겁게 걷고 아무 사고 없이 마치는 것이 길 안내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다. 길을 걷는 과정에서 수많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고, 참석자들 간의 갈등도 발생할 수 있다. 예기치 못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이끌어야만 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내 안에 도사리고 있었던 수많은 감정들이 올라올 수도 있고, 그로 인해 나와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 길을 걸으며 또 이끌며 발생하는 수많은 상황을 통해서 자신의 틀을 깨며 조금 더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것도 길 안내자로 사람들을 이끌며 걷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한 담금질을 하는 과정이다. 결국 다른 사람을 위해 길 안내를 하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을 위한 일이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이기적인 마음을 극복해 가는 과정이 바로 경기 둘레길을 길 안내자로 진행하며 함께 걷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길은 그저 이동을 위한 단순한 길일 수도 있고, 마음공부의 수단이 될 수도 있고, 건강을 챙기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함께 걷는다는 것은 혼자 걷는 것과는 다르다. 같이 걷는 동료들에 대한 배려와 자신을 낮추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혼자 먼저 도착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함께 모두 도착해야만 끝나는 것이다. 나의 즐거움과 힘든 일이 길동무의 것이 되며, 동시에 길동무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 된다. 결국 길동무가 나 자신이 되는 일이다. 나와 길동무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자신을 버리고 낮추며, 함께 눈높이를 맞춰 걸으며 ‘너와 나’의 구별이 사라진 ‘우리’가 되는 일이다. 경기 둘레길을 모두 마치는 데 1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될 것이다. 매주 걸을 계획을 갖고 있지만,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잠시 멈출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길을 완보할 것이다. 완보한 후 지난 여정을 돌이켜보며 함께 어깨동무하고 춤추며 웃고 싶다. 그리고 길을 마친 후에 한 권의 책으로 발간해서 함께 걸었던 길동무들과 함께 추억을 간직하고 싶다.    

  

 얼마 전에 입적하신 틱낫한 스님은 ‘마음엔 평화가, 얼굴엔 미소가 깃들기를’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 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이 ‘한 걸음에 평화가, 한 걸음에 미소가 깃들기를’이라는 마음가짐으로 걷기를 바란다. 그리고 길 마칠 즈음 ‘마음엔 평화가, 얼굴엔 미소’가 가득한 우리들이 되기를 바란다. 자신의 틀을 깨고, ‘나와 너’가 ‘우리’가 되는 평화와 미소가 가득한 길이 되길 마음 모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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