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둘레길 2코스는 문수산성 입구에서 애기봉 입구까지 가는 길이다. 초입부터 오르막길인 이 길을 몸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오르니 땀이 나고 숨도 차오른다. 모든 일이 익숙해지는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듯 몸이 편안하게 걷기 위해서도 시간과 땀을 필요로 한다. 힘들게 오르며 몸이 서서히 산길에 익숙해진다. 호흡도 편안해지고 몸도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산에 오르기 위한 일종의 신고식을 치른 셈이다. 자연은 늘 우리를 품어주고받아주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한다. 바로 땀과 노력과 시간이다. 산에 오르는 사람은 자연의 품에 안기기 위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한다. 그리고 하산 후에 자연이 베풀어 준 사랑에 감사하며 다시 자연을 찾는다. 누군가는 내려 올 길을 왜 올라가느냐고 질문하기도 한다. 그 답은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지만, 올라 본 사람만이 대답할 수 있다. 설탕이 얼마나 단지 먹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듯이.
문수산성 입구까지 가기 위해 합정역에서 모여 3000번 버스를 타고 90분 정도 이동한다. 합정역에 도착해서 잠시 몸을 풀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서 “걷기 마당?”이라고 묻는다. 대답 대신 “경기 둘레길?”로 다시 묻는다. 그리고 서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한다. 마치 스파이들이 암호로 접선하는 모습과 같다. 나만의 상상인가? 그리고 바로 길동무가 되어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눈다. 비록 처음 만난 낯선 사람이지만, 동호회에서 만나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매우 희귀한 인연이다. 8,000여 명이 모인 동호회 회원 중 같은 길을 걷기 위해 2022년 6월 3일 오전 9시에 합정역에서 만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벼락 맞거나 로또에 당첨될 확률처럼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살면서 일상의 귀한 인연에 대한 감사함을 자꾸 잊게 된다.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은 곰곰이 새겨볼 만한 말이다.
출발 지점까지 버스로 이동하면서 마음이 설렌다. 서울을 벗어나는 설렘도 있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넘게 여행하는 설렘도 있고, 걸을 길에 대한 설렘도 있다. 걷기는 설렘으로 시작해서 자연의 선물을 받는 감사함으로 끝난다. 그리고 끝은 다시 시작으로 이어진다. 오랜만에 버스 안에서 졸기도 하고 가끔 바깥 풍경도 구경한다. 길을 걷는다는 설렘과 편안한 마음으로 몸과 마음의 모든 근육이 한없이 이완된다. 그리고 가슴에는 뭔가 충만한 느낌으로 가득하다. 텅 빈 충만이 이런 느낌일까? 박력 넘치는 기사님의 운전하는 모습도 불안하기보다는 오히려 스릴로 느껴진다. 같은 상황도 마음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어떤 상황으로 인해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온다면, 그 감정은 상황이 만든 것이 아니고 자신의 마음이 만든 것임을 알아차리고 마음을 다스릴 필요가 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자각하며 꾸준히 연습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길치인 사람이 무슨 배짱으로 경기 둘레길을 안내한다고 나선 것인지 아직도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길 안내자로 맨 앞에서 걷고 있지만 늘 루트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헤매고 있다. 뒤에서 따라오는 길동무가 길을 잘못 들었다고 알려주며 바른 길로 안내해 준 덕분에 오늘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직진만 하고 걷다가 길동무들의 지시에 따라 방향을 바꾸어 걷는 자신이 마치 남을 믿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같다. 다소 허술하고 어리석고 못나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편안한 삶이다. 겉은 안내자이지만, 속은 추종자이다. 그러니 길동무를 위해 길 안내를 하고 있고 봉사한다며 우쭐 댈 필요가 전혀 없다. 참석자들 덕분에 이 길을 무사히 걷고 있기에 감사함을 느끼며 걷는다. 오히려 그분들이 나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 길을 못 찾고 다른 길로 빠지는 길 안내자라는 사실을 두 번 만에 길동무들에게 각인시켜 준 덕분에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길동무들이 길 안내자를 대신해서 신경 쓰며 걷는다.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워낙 길치여서 자연스럽게 다른 길을 걷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바꾸려는 노력보다는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한 태도다. 너무 뻔뻔한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굳이 감출 필요가 없다. 오히려 솔직하게 인정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도움을 받는 것이 편하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 부족한 모습을 보일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도 있다. 길을 걸으며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타인의 부족한 부분을 받아들이며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함께 걸은 ’ 양똥이님' 덕분에 오늘 코스를 무사히 걸을 수 있었다고 길동무들이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조금 서운하긴 하지만 맞는 말이다. 길도 못 찾는 길 안내자가 서운하다고 느끼니 이 또한 매우 뻔뻔한 생각이다. 아마 내가 길을 안내했다면 지금 이 시간에도 힘들게 다른 길을 헤매며 걷고 있을 것이다. ‘양똥이’님이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경기 둘레길 외에도 많은 길을 걸었고, 길 조성 자문역할을 하는 그는 길 전문가다. 어떤 길을 물어도 막힘없이 대답하고 심지어 몇 코스이고, 거리와 교통편, 길의 모습과 환경에 대해서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길에 대한 모든 정보를 마치 사진 찍어 머릿속에 보관하고 다니는 것 같다. 길을 걸어도 그 길이 몇 코스 인지도 모르고, 심지어 가봤던 길도 헤매는 내게 '양똥이님'은 매우 신기하게 보인다.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는 분명하다. 이는 단순이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다. 전문가가 되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나는 그저 길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다. 길동무들은 내가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 1코스 걸을 때에도, 또 오늘 2코스를 걸을 때도 늘 누군가가 함께 걸으며 도움을 주었다. 덕분에 편안하고 무사하게 걸을 수 있었다. 길치이며 지도조차 못 보는 길 안내자를 걱정하고 함께 걷는 길동무들을 위해 '양똥이님'이 일부러 참석해서 도움을 주고 있다. 머리를 긁적이고 숙이며 감사함을 전한다. 앞으로도 이 길을 마칠 때까지 누군가가 참석해서 도움을 주리라는 굳은 믿음을 갖고 길 안내자 역할을 할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한다면 길 안내자가 아니고 길을 함께 걷자는 공지를 올리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
“문수산성은 조선 숙종 20년(1694년)에 축조된 대표적 산성으로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과 치열한 격전을 치른 국방유적 (사적 제138호)이며 서해와 강화, 인천, 파주 등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출처:경기 둘레길 안내 자료) 길을 걸으며 코스 내에 있는 유적지에 대한 약간의 공부를 하는 것도 걷는 재미 중 하나다. 문수산성 초입의 오르막은 비록 거칠기는 하지만 길은 예쁘다. 문수산 (376m)은 높은 산은 아니지만 강화해협의 풍광을 보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성벽을 걸으며 걸려있는 휘장도 보고 성 아래 마을의 풍경을 보며 걷는다. 산길을 내려오면 그다음부터 대로를 걷는다. 오늘은 올해 들어 가장 더운 날씨라고 한다. 햇빛을 피할 곳이 없는 길이지만, 가끔 불어오는 바람은 발걸음을 경쾌하게 만들어 준다. 조강 저수지에 낚시터가 있는데, 요즘은 낚시를 하지 않는지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쓰레기만 잔뜩 쌓여있다. 보기 싫다. 쓰레기를 길 위에 마구 버리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자신의 쓰레기만 각자 들고 오면 되는데 이 사소한 일이 그만큼 하기 힘든 일인가?
2코스 끝나는 지점에서 스탬프를 찍은 후 한재당을 지나 버스 정류장까지 1.2km 정도를 걸어 내려왔다. 도로 확장 공사가 한창이다. 버스가 도착하기까지 약 30분 정도를 기다렸다. ‘양똥이님'의 전문가적 판단 덕분에 먼저 오는 반대 방향 버스를 타고 군하리 한우마을에서 하차했다. 내리자마자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식당을 찾는다. 긴 항해 끝에 육지를 찾듯 애타게 찾고 또 찾는다. 문을 연 맥주 집 한 곳을 어렵게 발견해서 들어가 맥주를 마신다. 땀 흘린 후 마시는 시원한 생맥주의 유혹은 너무 달콤하다. 이런 유혹 때문에 걷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유혹은 다시 길을 걷게 만든다. ‘왜 걷느냐? “라고 묻는다면 이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시원한 생맥주 한잔 마시는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
길이 있어서 걷는다. 걸을 수 있어서 걷는다. 길동무들이 있어서 걷는다. 그리고 시원한 맥주의 유혹에 빠져 걷고 또 걷는다. 길을 걸으며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세상을 열정적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다시 자연을 찾아 걷는다. 내가 걷는 이유이다. 오늘 함께 걸은 길동무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특히 길 안내를 해 준 ‘양똥이님'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걸었고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