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변화를 실감하며 걷는다. 햇빛과 날씨를 통해서 변화를 체감하기도 하지만, 물을 마시는 양을 통해서도 체감할 수 있다. 한 여름에는 세 통의 물을 들고 다녀도 물이 부족했는데, 이제는 700mm 한 통으로 충분하다. 운동량은 같아도 몸이 느끼는 갈증은 날씨에 따라 매우 다르다. 물 대신 간식과 과일을 먹으며 몸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충전하기도 한다. 옷 역시 계절의 변화를 반영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얇은 티 한 장 입고 걸었는데, 이제는 긴팔 티 위에 기능성 점퍼를 입고 걷는다. 걸으며 생긴 몸의 열과 땀으로 겉옷을 벗고 걷기도 하지만, 잠시 쉴 때는 점퍼를 다시 입는다. 체온을 유지하는 것도 건강한 걷기를 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옷을 준비하고, 챙겨 입고, 날씨와 몸의 상태에 따라 입거나 벗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없다. 불편함을 감내하는 노력도 건강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방법이다. 이런 노고 덕분에 건강을 지킬 수 있다.
건강은 불편함을 견뎌내는 것에 대한 보상이다. 춥다고 또는 덥다고 움직이지 않고 방 안에만 머무르게 되면 감기나 냉방병 등이 찾아올 수도 있다. 몸을 많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건강을 더 잘 챙길 수 있다. 옛 어른들은 몸을 불편할 정도로 많이 움직이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른들의 일상적인 말씀에는 오랜 경험과 지혜가 담겨 있다. 몸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의미는 일부러 몸을 혹사시키라는 뜻이 아니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몸을 많이 움직이라는 뜻이다. 집 안에서도 움직이지 않으면 몸에 한기를 느껴 옷을 껴입게 되지만, 청소를 하거나 집안 정리를 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면 금방 땀이 나고 몸에 열이 발생한다. 열기는 활기를 만들어준다. 몸의 활기는 마음의 활기를 만들어 준다. 결국 몸을 움직이면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된다. 매우 쉽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건강법이다. 옛 어른께서 말씀하신 건강의 비결이 있다. “몸은 바쁘게 움직이고, 마음은 늘 평온하게 유지하라.” 이 말씀은 심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명언이다. 평상시에 우리는 몸은 움직이지 않고 머릿속만 바쁘게 움직인다. 현대병의 주원인이 바로 이것이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신체 건강에 문제가 발생하고, 마음속은 쓸데없는 생각으로 가득하니 마음 건강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걷는 것은 중력을 거슬러가며 몸을 움직이는 행동이다. 경험에 의하면 두 시간 이상 걸으면 웬만한 고민거리를 들고 다니는 것조차 불편해져서 쓸데없는 생각들은 저절로 떨어져 나간다. ‘Sound body, Sound mind.'를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걷기다.
일찍 나오는 것이 불편해서, 더운 것이 싫고 추위 때문에 나가기 싫어서, 밖에 나가 걷는 것이 귀찮아서 집 안에만 머물다 보면 몸은 저절로 허약해지고 질병에 노출되기 쉽다. 몸의 귀찮음과 불편함을 빨리 알아차리고 몸의 주인으로서 몸에게 움직이라고 명령을 내려야 한다. 몸을 귀찮게 만들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굳이 일찍 나가서 차를 타고 이동한 후 먼 곳까지 가서 걸을 필요가 있느냐라는 얘기를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편이다. 걷기족(族)의 생활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매주 토요일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차를 타고 소풍 가는 마음으로 즐겁게 이동하고, 차 안에서 수다를 떨고, 내려서 자연 경치를 감상하며 즐겁게 걷는다. 자주 만나니 친구가 되고, 할 말도 많아지고, 아끼는 마음도 생긴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고 길에 대해 또는 개인적인 상황에 대해 얘기하는 즐거움 또한 걷기의 큰 즐거움이다.
'Out of sight, out of mind, '라는 말이 있다. 안 보면 잊게 된다는 의미다. 아무리 예전에 친했던 친구들도 오랜만에 만나면 할 얘기도 별로 없고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한다. 자주 보는 사람들과는 만날수록 할 얘기가 더욱 많아지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며 좋은 우정을 나눌 수 있게 된다. 길도 마찬가지다. 길도 자주 걷다 보면 정이 든다. 같은 길도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또 누구와 함께 걷느냐에 따라 다른 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길은 추억이 된다. 길 자체가 주는 추억도 있고, 함께 걸었던 길동무들이 만들어 준 추억도 있다. 새로운 길을 만나는 설렘도 좋다. 마치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설렘처럼. 설렘은 약간의 긴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이런 긴장은 긍정적인 스트레스로 작용해서 몸과 마음에 활력을 만들어 준다.
경기 둘레길 39길을 걸으며 용설호수를 만난다. 낚시터로 유명한 곳인 듯 많은 좌대와 부교가 있고, 낚시꾼들이 여러 대의 낚싯대를 호수에 던져놓고 물고기를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 최소한 대여섯 개의 낚싯대를 던져놓고 있다. 한 대로 잡는 물고기의 양에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강태공이 갑자기 보고 싶어 진다. 바늘 없는 낚싯대를 띄워놓고 세월을 건져 올리는 여유로움과 지혜가 그립다. 낚시를 하며 조용히 물소리와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자신과 대화를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안타깝다. 낚시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기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호숫가 주변 길은 예쁘게 조성되어 있고 중간중간 꽃길도 조성되어 있다. 꽃들이 반갑게 우리를 환영하고, 우리는 그들의 환영에 웃으며 화답하고 꽃과 함께 사진도 찍으며 추억을 남긴다.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인 채 바람에 출렁이며 황금물결을 만들 내는 곳도 있고, 이미 추수를 마친 곳도 있다. 지나는 길에 벼들이 모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며 근처에 계신 한 농부에게 그 이유를 여쭤보았다. ‘힘들어서 쓰러져 있어요.’라고 씁쓸하게 웃으시며 대답하신다. 처음에는 농담으로 하신 말씀인지 알고 같이 따라 웃었다. “혹시 비 때문인가요?”라고 여쭈니, 그렇다고 하신다. 그 농부의 얼굴에서 순간적으로 안타까움과 절망감이 느껴진다. 일 년 내내 고생하신 모든 노고가 수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 벼들의 낱알들을 상품화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분의 웃음 속에는 울음과 포기가 담겨있다. 절망감이 배어있는 웃는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절망감이 오래 남아있지 않고, 빨리 일상으로 회복하시길 기원한다. 그분들 앞을 철없이 웃으며 걷고 있는 자신이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자연의 이치를 따르면 흥한다고 하는 명심보감의 구절은 이분들에게는 매우 받아들이기 힘든 이론에 불과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것과 기꺼이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따르는 것에는 같은 ‘따름’이지만, 매우 다른 ‘따름’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씀도 역시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것이다. 지금 겪는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시고 앞으로 늘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기원한다.
예상보다 오늘 길을 빨리 마쳤다. 모두 속도를 잘 유지하며 걸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칠장사 앞에서 단체 사진 한 장 찍고 승차한 후 합정역에 도착하니 5시 10분, 두 시간 꼬박 걸려 도착했다. 왕복 네 시간을 차로 이동하고, 5시간 걷고 합정역에 도착했다. 참석자 중 단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모두 뒤풀이에 참석해서 즐거운 대화를 이어갔다. 한 여름에는 걷기 마친 후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의 즐거움을 만끽했는데, 날씨가 조금 쌀쌀해지니 이제는 맥주보다는 따뜻한 음식이 더 그립다. 삼겹살과 김치찌개를 안주 삼아 함께 술 한 잔 나누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우정을 다진다. 음식도 날씨에 맞는 궁합이 있는 것 같다. 옷도 날씨에 따라 변하고 선호하는 음식도 계절에 따라 변한다. 변화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걸으며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