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참석하던 길동무들이 개인적인 일로 함께 걷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 빈자리가 느껴진다는 것은 그들의 존재감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거꾸로 얘기하면 그들에게 그만큼 의지하며 걸었다는 뜻이다. 누군가는 돕고, 누군가는 도움을 받으며 함께 걷는다. 그리고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베풀기도 한다. 배운 것을 그대로 따라 하게 된다. 굳이 누군가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할 필요조차 없다. 나의 행동을 보고 누군가는 그대로 따라 하고 있고, 내가 상대방에게 한 언행이 그대로 나에게 돌아오기도 한다. 우리가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한 개인의 언행이 그대로 자신과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오늘 참석하지 못한 길동무들의 빈자리를 느끼며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비단님은 전체 일정 관리, 차량 예약과 식당 검색, 정산 등 중요한 부분을 맡아주고 있다. D님은 분위기 메이커로 전반적인 분위기를 밝고 경쾌하게 만들어 준다. 걷기 전 스트레칭도 나서서 진행하고 후미도 챙겨주며 도움을 주고 있다. 스위치님은 뒤풀이 장소 검색과 정산을 도와주고 있고, 밝고 건강한 웃음으로 분위기를 활기차게 만들어 준다. 그들 외에 모든 참석자들은 각자 스스로 역할을 맡아 즐겁고 건강하게 걷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각자 역할을 잘해주기 때문에 지난 7개월간 아무 일 없이 즐겁게 걸을 수 있었다. 모든 존재는 존재의 의미가 있다.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들 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와 무생물도 각자 태어난 이유가 있다. 심지어는 길 위에 있는 작은 돌멩이 하나도 존재의 이유가 있다. 산에 나무만 있다거나, 흙만 있다거나, 바위만 있다거나, 꽃만 있다면 산이 되지 못한다. 이들이 모여 산을 이룬다. 걷기 마당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만든 산이다. 지금 경기 둘레길을 걷고 있는 길동무들도 서로를 위해 양보하고 배려하며 한 가지 목표인 경기 둘레길 완주를 위해 즐겁게 걷고 있다. 경기 둘레길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준다. 경기 둘레길과 그 길을 걷는 우리가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산이 되고 자연이 된다.
오늘 걸은 경기 둘레길 45코스는 평택 국제 대교를 건넌 후 평택 호반을 걷는 길이다. 중간에 마안산이라는 낮은 산도 오르고 평택호 주변 길도 걷는다. 바람과 햇살이 가득한 날씨는 걷기에 아주 좋은 날씨다. 산길을 오르며 제법 땀이 나기도 하고 호반을 걸으며 눈과 마음이 시원해지기도 한다. 이 길이 지금까지 걸었던 길과 큰 차이점은 길 안내 표식이 가장 잘 되어 있다는 점이다. 길치가 길을 걷는데 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안내가 잘 되어 있는 매우 친절한 길이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은 저절로 만들어진 길이 아니다. 많은 분들의 노고로 만들어진 길이다. 길을 디자인 한 사람이 있고, 길을 만들고 유지 관리하는 사람들 덕분에 걸을 수 있다. 또한 이 길을 걷기 위해서는 자연이 우리에게 걷는 것을 허락해야만 걸을 수 있다. 심한 홍수나 폭풍, 또 폭설과 혹한으로 인해 걸을 수 없는 날도 있다. 언제든 갈 수 있는 길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연의 허락 없이는 길을 걸을 수 없다.
사람과 자연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좀 더 정확한 표현은 자연과 인간은 하나의 존재다. 다만 우리가 그 중요한 사실을 잊고 살고 있을 뿐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늘 베풀고 있다. 마치 부모가 자식들에게 베풀 듯 늘 베풀기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의 고마움을 잊고 자연을 개발하고 극복한다는 오만함으로 자연에게 엄청난 상처를 주고 있다. 자신의 몸에 스스로 상처를 내는 꼴이다. 그 결과 자연은 자정작용의 일환으로 비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기후 변화는 우리 스스로가 초래한 결과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개발한 결과가 다른 방식으로 우리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 낸 자업자득이다.
걷기를 마친 후 뒤풀이에서 쓰레기 얘기가 나왔다. 우리는 각자 준비해 온 음식물을 먹은 후 쓰레기를 들고 오는데 익숙해져 있고, 모두 당연하게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가끔 길을 걷다 보면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쌓여있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보기도 싫거니와 그 결과로 인해 우리와 자손들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나기도 한다. 각자 자신이 만든 쓰레기만 집으로 들고 와도 쓰레기가 쌓일 이유가 없는데 이 사소한 일 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모양이다. 길동무 중 한 명이 걷기 모임 참석 시 비닐봉지를 각자 들고 와서 자신의 쓰레기는 물론이고 주변에 놓여있는 쓰레기를 조금씩이라도 줍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좋은 의견이다.
다른 길동무는 LNT (Leave no trace)를 얘기했다. ‘어떤 흔적도 남기지 말라’는 환경운동 윤리지침이다. 자기가 머물렀던 자리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말고 원래 있었던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떠나는 일이다. 길을 걸으며 걷는 중간 간식을 먹거나 야외에서 식사를 할 때 각자 자신의 쓰레기를 자신이 챙겨 오는 쉬운 일이다. 다소 소극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쉬운 일 한 가지만이라도 제대로 습관화하고 실천한다면 환경 문제는 많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보다 조금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플로깅 (plogging)이 있다. 플로깅은 건강과 환경을 같이 지키는 방법으로 조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행동을 뜻한다. 스웨던어의 ‘플로카 업(plocka upp, 줍다)’과 ‘조가(jogga, 조깅하다)의 합성어다. 우리나라에서는 ’ 줍다 ‘와 ’ 조깅‘을 합성한 ’ 줍깅‘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자신이 만든 쓰레기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도 운동하며 줍는 자신의 건강과 지구의 건강을 동시에 지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이 두 가지 중 어떤 것이 걷기 동호회 성격에 적합할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걷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자신의 쓰레기는 잘 챙겨 오는 사람들이기에 플로깅을 하자고 제안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보다는 지금 잘 실천하고 있는 LNT가 적합할 것 같다. 가끔 야외에서 식사를 한 후에 또는 잠시 쉬며 간식을 먹은 후에 쓰레기를 어느 한 사람이 챙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가끔 다른 친구들에게 내가 먹고 난 후 쓰레기를 넘긴 적도 있다. LNT 운동의 일환으로 각자 자신의 쓰레기는 자신이 챙기는 기본적인 실천을 바로 시작하려고 한다. 각자 쓰레기봉투 하나씩 챙겨 와서 자신의 쓰레기는 자신이 챙겨가는 습관을 만들어 나가면 좋겠다. 그리고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보인다면 걷기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주워오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길동무들의 협조를 부탁한다. 우리의 사소한 습관과 행동 덕분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건강하게 만들고, 우리 후손들에게 건강한 자연을 물려줄 수 있다. 좋은 제안을 해 준 길동무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