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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Oct 07. 2020

글과 그림, 이제 시작합니다

01

  그림이 너무 좋은데 그냥 좋다고 말하면 와 닿지 않으니 나의 이야기에 빗대어 말해보려고 한다. 작년 말, 소위 말해 미치지 않고서야 정년 보장되는 공기업에서 퇴사한 뒤 무보수의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려 한 진짜 이유 말이다.     


  아마 지금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삶의 책임들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나는 자발적 퇴사라는 큰 변화를 겪고 난 뒤에야 일과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유지한 채로 이런 고민에 대해 깊이 생각한 뒤 길을 찾는다면, 현재의 책임과 능력을 공고히 한 채로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게 회사원이던, 그림을 그리던, 자영업이던 모두 나의 마음을 담아 한다면 ‘나다운’ 거니까 말이다.     


  사람은 견딜 수 없이 힘들고 난 뒤에야 바닥 친 곡선이 상승하듯 삶의 주도권을 다시 쥘 수 있는 것 같다. 삶에 대한 의지를 잃어버렸을 때, 지금 눈 감고 딱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뜬 눈으로 그런 새벽을 맞이할 때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를 때가 많다. 나는 그때가 자신에게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죽을 만큼 힘들 때가 돼서야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기 때문이다.     


  분명하진 않지만, 왠지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직감. 이때부터가 시작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극단적이지만 회사를 나왔다. 9개월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썩 잘 지내고 있고 굶어 죽지도 않았으며 마음의 병이 나아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이렇게 마음이 맑은 적이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이 모든 과정이 무조건 ‘그림 덕분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소중한 주변 사람들을 인식하기 시작한 게 맞다. 늘 바닥 쳤던 자존감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내가 ‘끈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하지 못해 성격 탓만 하며 살아왔던 지난날. 알고 보니 집중할만한 대상을 만나지 못한 거였다.     


  나는 이제 그림 그리며 사는 사람이 되었다. 직급도, 직책도, 소속도 불명확하지만, 삶의 찬란함에 대해 아주 조금은 맛본 사람이다. 아직 가야 할 길은 멀어도 그림으로 나 자신과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작은 기쁨을 선사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그림 위를 사뿐사뿐 걷는 고양이처럼,
 내 발자국을 흰 캔버스에
마음대로 콕콕 찍어보는
그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림 위를 걷는 고양이처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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