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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Oct 11. 2020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아이는 수동적인 어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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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선생님 말씀만 잘 듣지 말고, 자기 이야기에도 꼭 귀를 기울이라고 말이다.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아이는 학교생활도 편하게 하고, 부모님을 비롯하여 어른들에게 귀염을 받으며 자라난다. 나 또한 그런 아이였다. 선생님 말씀은 곧 법이고 공부를 잘하기 위해 수업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달달 외웠다. 또, 아버지의 오랜 방황으로 가정 형편이 늘 어려워 사교육을 받을 여유가 없었다. 고등학생 때는 당시 시장님에게 편지를 쓰고 등록금을 지원받았다. 나는 이 사실이 부끄럽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선생님 말씀 잘 들으면 칭찬받았고, 학급회장을 하면 교우 관계도 보장됐다. 이 사실을 일찍이 터득한 나는 매년 학급 임원을 했다. 바쁜 엄마는 단 한 번도 학교에 오신 적이 없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학교에 잘 적응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유년 시절을 돌이켜보면 아쉬운 것들이 정말 많다. 너무나도 수동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이라도 내 삶의 주도권을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무언가 되고 싶어 간절히 노력해본 경험도, 코피 흘리며 밤을 지새운 적도 없었다. 하물며 시험 기간에도 항상 12시 전에 잠들기 위해 3주 전부터 공부를 시작했으니, 마음이 편한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대학은 담임 선생님이 정해주신 편안해 보이는 직업을 보장해줄 것 같은 과에 지원했고, 운이 좋아 원하던 학과에 입학했다. 그때는 울면서까지 좋아했지만, 지나고 보면 안정성은커녕 직장생활을 질리게 만들어 준 학문을 배우느라 빌린 나의 대출금이 아깝기까지 하다. 물론 대학 4년은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알아서 어떻게 될 거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 젊음에 기대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과감하게 찾고, 좀 더 삶에 대해 고민했어야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때도 먼저 무언가를 한다기보단 다른 사람이 준 기회를 잡는 데 급급했다.     


  그렇게 30년을 살다 보니 현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정말 재미있고 집중할 대상을 찾았는데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안 하면 죽을 것 같은데 그냥 죽을 것 같은 상태로 버티기만 했다. 용기 내서 무언가 시도해보려고 하면, 하지 말아야 할 수천 개의 이유가 떠올랐다. 이런 갈등이 직장생활하는 내내 7년 동안 나를 괴롭혔다. 아마 그런 이유로 여러 가지 병이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 첫 회사 때는 공황장애, 두 번째 회사에서는 비문증, 임파선염. 전 직장에서는 마음의 병까지 얻었으니 종합 병원도 아니고 총체적 난국이었다. 


  나는 이 모든 병의 근원이 ‘한 번도 나를 돌아보지 않아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금만 내게 관심을 두었어도 돌아서 길을 가지 않았을 텐데. 살면서 단 한 번도 돌본 적 없던 ‘나란 사람’이 견딜 수 없게 되어서야 겨우 시간을 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더는 수동적으로 살고 싶지 않다. 물론 능동적으로 산다는 게 말은 쉽지, 찬 바람이 부는 허허벌판에 벌거벗은 상태로 서 있는 느낌과 같다. 그럴 때면 다시금 죽고 싶을 만큼 힘들겠지만, 이전의 근본 없는 우울감에 자책하며 보내던 시간이 원인을 찾고 자신을 다독이는 시간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삶에 대한 희망을 맛보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도 착한 어른이들이 많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어른들이 더 많다. 나도 그랬고, 그 힘든 시절을 견뎌내기 위해 종잣돈을 모으기도 했다. 그리고 그 돈과 시간을 써가며 내게 집중했다. 무한대로 흔들리고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불안감과 직면한 후 마주한 건, 그냥 나였다. 그림을 좋아하고 가끔 글을 쓰며 행복감을 느끼는 나. 이제 더는 멍하니 하루를 보내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 조금 더 ‘나답게’ 생각하고 일하며, 하루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을 때 미소 지으며 눈감을 수 있는 그런 하루를 보내고 싶다.



[그림 위를 걷는 고양이처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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