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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Oct 10. 2020

일하면서 만나게 된 의외의 흥미

04

  앞서 나는 일하다 우연히 ‘그림’에 대한 흥미를 발견했다고 했다. 정말 우연이었다. 그전까지는 아주 가끔 그림을 끄적거렸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타인의 그림 중에 간단한 그림을 따라 그려보는 정도였다.

     

  2년 전, 당시 직장에서 하던 일 중에는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는 것도 있었다. 그중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이용객의 추천으로 ‘그림책 따라 그리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 수업을 통해 다양한 그림 기법과 재료들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100 여권의 그림책을 골라서 행사장소에 날랐지만 힘들지 않았고, 써본 적 없던 재료들도 준비하며 설렜다. 몸은 좀 고생했어도 이때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다.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업 때는 그림책을 주로 탐구했다. 그림책은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장르다.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그림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강사님의 안내와 함께 그림책에서 사용된 그림 재료를 파악하고 따라 그렸다. 이때 오일 파스텔이라는 재료도 알게 됐다. 그림은 전공자만 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강사님도 나를 포함한 수강생 모두, 미술 전공자가 아니었다. 수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매시간 결과물이 쌓였고, 그걸 한데 모아 전시회를 진행했다. 전시장 벽에 그림들을 걸어 놓으니 뿌듯했다. 얼마 전까지는 평생 이렇게 진지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전시회가 끝난 후 그림 동아리를 만들어서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동아리에 참가할 때마다 동료들을 독려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전시회 동영상을 만들어 도서관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앞선 계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림책을 한 권 만들었다. 그림책을 기획하고 만든 이야기는 뒤에 자세히 하겠지만, 평범한 30대 직장인이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수강하며 그림책을 만들었다. 무려 30페이지짜리였다.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내 그림책 「갈기 없는 사자」는 주관 기관이었던 도서관에 한 권 소장되어있고, 다른 지역 도서관 유튜브 채널에 낭독 영상이 업로드되어 있다. 아주 적은 기회가 다른 기회를 만들고, 그 기회를 잡은 나는 더 많은 기회를 만나게 됐다. 그 덕에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됐고, 그림책을 만들었으며, 퇴사도 했다. 이제 정말 나는 2년 전과는 다른 사람이다.

 


아직도 나태하고 소심하고 
뭐 하나 시작하려면 
엄청나게 뜸 들이는 사람이지만,

조금은 용기 내서 시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림 위를 걷는 고양이처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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