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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Oct 27. 2020

황자매 중 막내 황반달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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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황씨 자매다. 주변에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황자매’라는 소개를 하면 사람들이 곧잘 기억해준다. 강한 느낌이 있는 것 같다. 그중 우리 막내 ‘황반달’이라는 이름이 누군가에게는 촌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반달이는 사실 우리가 공방에서 키우기 시작한 고양이 이름이다. 아예 같이 살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만큼 아직 서로 적응해야 할 일이 많은 우리와 반달이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턱시도 고양이 반달이는 약 10개월 된 청소년 고양이다. 처음 마주친 이후로 폭풍 성장한 탓에 대략적인 나이를 추정할 수 있었다. 첫 만남 당시 까만 얼굴에 흰 반달무늬가 선명해 ‘반달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당사자가 만족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름을 불러주면 가끔 대답도 한다. 반달이는 인상이 좀 흐릿한 편이었다. 다른 고양이들보다 눈이 좀 작고 뚱한 느낌이 강했다. 우리와 친해진 이후로는 손길을 허락해주기 시작했는데 가끔 고양이치고는 무감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다른 고양이들과 달리 반달이는 걷는 소리가 잘 들린다. 뛰는 자세도 살짝 어설프다. 어설프게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문제일지도 모르나 좀 어설프다. 그게 반달이의 매력인 것 같다. (라고 주장한다)       


  반달이는 매일 공방에서 밥을 먹고 갔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 밥을 꼭 줘야 했다. 집사들의 책임감과 노력을 아주 조금 경험해볼 수 있었다. 반달이는 우리에게서만 끼니를 해결하는 것 같았다. 타이밍이 안 맞아 밥을 못 챙겨줬을 때는 어김없이 마른 느낌이 들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동네 다른 고양이들도 많은데 유독, 이 고양이는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오빠 고양이들한테 냥 펀치를 맞기도 하는 거로 봐선 그들 사이에서 인기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 뒤로 반달이는 우리의 사랑을 무럭무럭 먹고 자랐다. 청소년기가 되고 나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쳐다보곤 했다. 간식을 챙겨주시는 고마운 분들도 계셨다. 반달이는 그 뒤로도 공방에 잘 적응했고 그렇게 황자매와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얌전한 고양이 반달이. 그녀가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우리 막내가 되었다.     


  반달이는 내게도 많은 영향을 줬다. 반달이를 보면 자꾸 그림으로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장난삼아 맹한 얼굴을 따라 그렸는데 점차 그림 실력이 발전하면서 연필 소묘 그림도 그리게 됐다. 반달이의 성장과정을 직접 그림으로 남길 수 있어서 행복했다. 애틋한 나의 시선을 듬뿍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스타에 연재하는 웹툰에 반달이 에피소드를 업로드했다. 그 에피소드는 가장 높은 ‘좋아요’ 수를 받았다. 사람들에게 반달이의 귀여움을 알릴 수 있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뒤로도 반달이는 심심찮게 내 뮤즈가 되어 그림에 등장하게 되었다. 물론 언니도 반달이 작품을 여러 개 만들었다. 펠트로 만든 마우스패드도 있고 지갑도 있다. 반달이는 우리 자매에게 작품에 대한 영감을 줬다. 반달이에게 더욱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반달이는 특식 사료를 먹은 뒤 만족하며 잠을 자고 있다. 우리가 점심으로 참치를 먹었다고 소리 내며 울길래 맛있는 밥을 주었다. 고양이는 가끔 사람 말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 무섭기도 하다. 약간 멍한 눈빛으로 모르는 척하면서 우리 이야기를 다 듣고 있는 것 같다. 반달이 이야기는 반달이 없을 때 해야겠다. 우리가 없을 때 어떤 귀여운 복수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림 위를 걷는 고양이처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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