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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Oct 29. 2020

혼자서 그림책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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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작은 낙서가 그림책이 된 이후로 끊임없이 그림책을 만들고자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유는 캐릭터와 스토리 모두 있음에도 막상 원화를 그리려고 하면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몰랐던 때야 용감하게 만들었지만, 뭔가 그림에 대해 조금씩 진지해지기 시작하고 나서는 더 잘 그려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렸다. 하물며 그림책은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므로 조금 더 신경 쓰였다. 진도는 나가지 못한 상태로 계속 지지부진하게 시간만 끌었다.      


  그러다 요즈음 그림책 한 권을 완성했다. 언니 방에서 수다를 떨며 놀다가 샤프와 노트에 그림을 끄적였다. 한 장을 완성하니 다음 장이 떠올랐고 그렇게 스토리를 이어가다 보니 28페이지나 완성됐다. 한 편의 그림책이 될 수 있겠다 싶어 책으로 만들어야지 마음만 먹은 채로 세월만 흘러갔다. 시간이 흘러 반년이 지난 어느 날 SNS를 보다 우연히 아트북 페어를 발견했다. 작년에는 다른 북페어에 직접 찾아가 책도 고르고 굿즈를 사기도 했었다. 그런 북페어에 참여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가 문득 잠들어 있던 나의 그림책 스토리보드가 떠올랐다.


  바로 스케치북을 찾아 스토리보드를 들여다봤다. 왠지 이번에는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이 기회라는 느낌도 들었다. 그 뒤로 그림책 콘셉트를 정하고 스토리보드를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열심히 갈고닦은 실력으로 아이패드 그림을 그렸다.                  


  매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던 습관이 들어 그림책을 위한 작업을 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넉넉하지 않은 기간 동안 온종일 작업에 매달렸다. 몇 년 동안 사용하지 않은 출판 프로그램을 독학으로 다시 공부했다. 인쇄 업체를 여러 군데 찾아 가격 비교한 뒤 가장 저렴한 곳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시름시름 앓기도 했으나 기간 내에 작업을 마쳤고, 샘플 책 인쇄를 진행했다. 샘플 책이 배송되던 날, 오매불망 택배 기사님을 기다렸다. 시간이 더디게 갔고 저녁이 다 돼서야 책이 도착했다. 포장지를 벗기고 직접 만든 첫 그림책을 마주한 순간, 기쁨에 폴짝폴짝 제자리 뛰기를 했다. 그리고 원하던 색감과 품질이어서 만족감은 더 컸다.      


  샘플 책을 기다리는 동안 책 소개 글과 이미지를 만들어 뒀다. 우리 공방 블로그와 SNS에 소개 글을 올렸고 많은 분이 축하해주셨다. 시작이 나쁘지 않다. 금손 부모님과 언니도 내 그림책이 재미있다고 해주었다. 그럼 된 거다. 이제 자신감만 가지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조금 더 다듬어서 온라인 북페어에 신청 완료했다. 열심히 준비했기 때문에 결과가 기대되지만, 되지 않더라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바로 독립서점의 문을 두드릴 생각이다.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나의 첫 책이 괄목할만한 성과를 얻지 못해도 괜찮다. 시작은 늘 좋은 거니까. 이런 순간이 있어야 다음 단계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림 위를 걷는 고양이처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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