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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Oct 29. 2020

그림 위를 걷는 고양이처럼 산다

26. 글을 마치며


  몇 년 전 처음 오일파스텔을 잡았던 때가 생각난다. 어떻게 쥐고 그려야 할지도 잘 몰랐던 그때. 조심스럽게 그었던 선 하나가 지금은 나만의 그림이 되었다. 사람마다 운명적인 순간은 꼭 찾아오게 마련이다. 내게 그 순간은 그때가 아닐까 싶다. 처음 오일 파스텔 그림을 완성했던 그 날이 잊히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함께 그렸고 감상을 나눴던 그 자리, 분위기. 정말 고마운 기억이 아닐 수 없다.      


  그로부터 시간이 꽤 흐른 지금, 그림과 나에 대해 매일 생각한다. 긍정과 부정의 끊임 없는 소용돌이 속에서 고요한 나를 발견한다. 한쪽에 쏠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여기저기 헤엄칠지언정 가라앉지 않으려고 한다. 한쪽 팔씩 휘젓고, 조금씩 숨 쉬어 가며 어딘지 모를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지는 지금. 이런 지금이 모여 항로가 되겠지. 그 모습을 고요하게 위에서 지켜보는 또 다른 내가 있다. 나는 나를 응원한다. 그리고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우리는 나아갈 것이다. 아주 조금씩 용기 있게.     


  나와 언니의 작은 공간에 드나드는 고양이들을 유심히 관찰한다. 그들의 움직임과 발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정형화되지 않은 발짓과 눈빛 모두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자유로움을 타고난 재능처럼 가진 고양이들에게서 내 모습을 본다. 그들이 발바닥에 물감을 묻힌 채로 캔버스 위를 걷는다면 어떤 작품이 그려질까? 생각지도 못한 멋진 작품에 고양이가 부러워질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렇게 자유롭게 생각하며 캔버스 위를 뛰놀고 싶다. 고양이가 그리는 캔버스처럼 멋진 내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나 대신 열심히 캔버스를 노니는 노란 고양이 한 마리도 열심히 그렸다. 나를 닮고 당신을 닮았을지도 모르는 고양이는 즐겁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며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우리 모습 그대로다. 우리는 늘 멋지기만 할 수 없다. 축 늘어져 기운 없을 때도 많다. 하지만 이런 것을 유머러스하게 웃으며 넘길 줄도 안다. 그림 속 고양이는 우리를 닮았다.     


  올해 코로나가 발병하며 나도 주변도 너무 지쳐갔다. 그 와중에 스스로 정한 삶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안정감과는 먼 삶을 살며 나는 언저리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주변부의 삶, 방황하는 사람, 염려를 부추기는 누군가의 지인.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는 삶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내 모습, 누구의 내가 아닌, 나의 나. 그래서 요즘은 조용히 혼자 생각하고 글을 쓰는 시간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 나를 잃어버린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나의 미흡하고 미완 된 문장들이 또다시 쓰러질 내게도 당신에게도 등불이 되었으면 좋겠다. 혼란 속에서도 눈 감고 손을 뻗어 잡을 수 있는 좋은 친구 말이다.      


  이 글을 통해 내 마음속 고양이 한 마리가 캔버스 위에서 자유롭게 뛰놀 수 있기를, 나와 내일을 상상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의 빈칸들을 많이 만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림 위를 걷는 고양이처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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